여자배구팀 '절반 비즈니스석' 때 회장은 호텔 취임식
최근 한국여자배구는 잘 나가고 있다. 홍성진 감독이 이끄는 여자대표팀은 폴란드마저 꺾고 2그룹 1위로 결선(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은 안방에서 열린 3연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어 조별리그 성적 8승1패를 기록, 예선 1위로 결선에 오른 것이다.
여자대표팀의 성적은 이렇게 좋지만, 팀을 둘러싼 주변상황은 열악하다. 프로리그가 인기가 있긴 하지만 협회의 재정상태가 열악해 종종 선수 푸대접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동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구협회는 지난 25일 서울 강남 모 호텔에서 오한남 신임 회장의 취임식을 열었다. 대관료만 1000만 원 가까운 데다 주류 및 식사까지 행사 관련 총 비용이 2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다른 종목 행사도 종종 열리는 곳으로 한국 4대 스포츠로 꼽히는 배구를 총괄하는 수장의 취임식인 만큼 일견 이해가 가는 행사다.
하지만 이 취임식은 여자대표팀의 비행기 '절반 비즈니스석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회장은 호텔에서 호화 취임식을 하는데, 정작 협회의 주체인 선수들은 돈이 없어 2017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라운드에 나서기 위해 체코로 떠나는 대표팀 선수 12명 중 절반만 비즈니스석에 탑승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남자 대표팀과 비교가 되면서 비난이 거세졌다. 세계대회 아시아예선에 나서는 남자 대표팀 14명 전원은 비즈니스석으로 떠나기 때문. 신장이 큰 배구 선수들은 장시간 비행할 경우 근육에 피로가 쌓여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좌석 문제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물론 여자 대표팀의 절반 비즈니스석 탑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초 협회는 여자 대표팀도 오는 9월 세계대회 아시아예선이 열리는 태국행에 비즈니스석을 예약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표팀이 그랑프리 2그룹 예선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여자 대표팀은 태국보다 장거리인 체코행에 대한 비즈니스석을 협회에 요청했다.
협회는 부랴부랴 항공권 확보에 나섰지만 예산이 만만치 않았다. 태국행보다 체코행의 항공료가 더 비싼 데다 여름 휴가 성수기가 겹쳐 금액이 더 높아졌다는 것. 결국 12명 중 6명만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딱한 사정이야 일견 이해가 되지만 하필 이런 시기에 회장의 취임식은 호텔에서 열려 눈총을 받은 것이다. 이는 모두 협회의 자업자득이다. 협회는 그동안 여자 대표팀에 대한 처우 문제로 여러 번 곤경에 처한 바 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당시 매니저, 통역, 팀 닥터가 출입증이 없어 선수단과 동행하지 못해 선수인 김연경이 통역 역할을 도맡았다는 사실이 불거졌다. 대회 이후에는 선수단이 표가 없어 따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면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낸 여자 대표팀이 이른바 '김치찌개 회식'을 한 사실까지 소환되면서 협회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이후 김연경이 사비를 털어 선수들을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간 일화도 알려졌다.
이런 전력 때문에 이번 '절반 비즈니스석 사태'도 협회가 아직 변한 게 없지 않느냐는 비판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비판이 일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호텔 취임식을 강행한 것은 비난을 자초한 꼴이나 다름없다.
배구협회의 열악한 재정 역시 자초한 일이다. 협회는 과거 임태희 회장 시절 강남 도곡동 배구회관을 무리하게 매입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협회 자립기금 70억 원에 은행빚 113억 원을 차입하며 건물을 샀지만 시세가 떨어졌다. 여기에 당시 협회 부회장이 32억 원의 웃돈을 얹어 건물을 산 뒤 뒷돈을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이게 부메랑이 돼 지금까지 대표팀 지원 부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협회는 프로배구를 주관하는 한국배구연맹(KOVO)으로부터 매년 2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항공권 업그레이드로 1억 원을 추가로 받았지만 궁핍한 살림살이는 여전한 실정이다. 배구회관 매각 등을 통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단기간에 상황이 나아질 리 만무하다.
여자대표팀 부동의 공격수 김연경 선수는 오랫동안 터키 프로리그에서 활약하다가 올해는 중국리그로 이적했다.그 이유는 '대표팀 일정과 잘 맞추기 위해서였다'. 선수가 옆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도 이렇게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데, 배구협회는 이런 적극성과 애국심이 있는지 묻고 싶다. 김연경 선수가 김치찌개 회식 뒤 더 맛있는 요리를 선수들에게 사 주었다는 게 이해가 간다. 오죽했으면 선수가 밥을 사겠는가.
온라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