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성폭행 살해범, 편안하게 스리랑카로 되돌아갔다

2017-07-28     임석우


19년 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가 무죄가 확정된 스리랑카인 K(51)씨가 지난 26일 밤 결국 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28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K씨는 지난 26일 밤 11시께 인천공항을 통해 본국인 스리랑카로 강제 출국 조치됐다.


강제 추방 전 K씨는 청주외국인보호소에서 생활하며 재판을 받아왔다. 그의 강제 출국은 대법원의 이 사건 무죄 확정 판결이 난 지 8일 만이다.


K씨는 다른 스리랑카인 공범 2명과 함께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구에서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대학교 1학년생 정모(당시 18세)씨를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특수강도강간)로 지난 2013년 기소됐다. 범행을 저지른지 15년 만이었다.


정씨는 당시 고속도로에서 25t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현장 30여m 떨어진 곳에서 속옷이 발견돼 성폭행이 의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고 수사를 종결했다.


영원히 묻힐 뻔했던 사건의 실체는 2011년 K씨가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입건돼 유전자(DNA) 채취검사를 받으면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2013년 그의 DNA가 15년 전 숨진 정씨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검찰은 재수사 끝에 그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강간죄 공소시효 5년이 2003년에, 특수강간죄 공소시효 10년이 2008년에 각각 지난 데 따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를 택한 것이었다. 결국 검찰의 이런 불가피한 선택이 재판에서 발목이 잡히고 있다. 


1심은 K씨가 정씨 가방 속 현금, 학생증, 책 등을 훔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당시 국내에 머물던 스리랑카인을 전수 조사한 끝에 K씨의 공범으로부터 범행을 전해 들었다는 증인을 찾아 항소심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2심은 K씨의 성폭행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증언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2년여의 심리 끝에 지난 18일 2심 결론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K씨는 2013년 다른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와 2008∼2009년 무면허 운전을 한 별도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돼 강제 추방이 결정됐다.


집행유예가 확정된 외국인은 국내에서 강제 추방된다. K씨의 공범 2명은 이미 2001년과 2005년에 불법체류로 추방된 상태다.


검찰은 스리랑카의 강간죄 공소시효가 20년인 점을 고려해 K씨를 현지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스리랑카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상황이라 K씨의 단죄가 물건너 갈 수도 있다. 


진범을 붙잡았음에도 법제도의 허술함 때문에 범인은 편안하게 비행기를 타고 본국으로 되돌아갔고, 검찰은 그 장면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공소시효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적어도 DNA 증거가 있는 사건에 한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말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영교 의원은 "반인륜적인 강간범들에 대해서는 과학적 증거인 DNA 그리고 쪽 지문(부분 지문) 등이 있다면 우리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밝히고 있다. 


관련 법안도 국회에 발의됐지만 한 차례 폐기됐고, 이번 국회에서 다시 발의된 법안은 국회 법사위에 1년 가까이 계류 중이다.


공소시효에 대한 '타협안'도 있다. 미국 일부 주처럼 '디스커버리 룰', 즉 증거가 확보된 시점부터 다시 공소시효를 계산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된 것처럼, 이제는 성폭행의 공소시효도 본격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범인을 앞에 두고 놓친 것은 놓친 것이고,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정밀한 공소시효 법률이 필요한 때다. 그것이 고통 속에서 죽어간 '정은희'양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다. 


온라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