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버핏' 박철상 해프닝에 씁쓸한 증권가…"증시엔 사기꾼 천지?"

2017-08-08     성기노



여의도 증권가가 뒤숭숭하다. 최근 '청년 버핏'으로 널리 알려졌던 박철상씨(33.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의 주식투자 성과가 상당부분 부풀려졌고 경력 또한 일부 허위임이 드러나 증권맨들은 씁쓸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주식투자는 귀신도 모른다'는 게 증권가 불문율이다. 10년만에 400억을 벌었다는 박철상씨의 '신화'를 믿는 증권맨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업앤다운을 거듭하는 주식시장에서 일정한 수익이나 대박을 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해프닝은 한국 주식시장의 '한탕주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언론들도 증권가의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번 해프닝을 지켜본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들은 씁쓸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씨가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1)씨처럼 허위 정보로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부당이익을 챙긴 건 아니지만, 국내 자본시장 이미지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번 일을 보도한 기사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게시물 등에는 “역시 주식시장은 사기꾼 천지”라는 식의 반응이 상당수 올라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주식투자 성과를 부풀리는 사람이 자꾸 등장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며 “한국 증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잠재적 투자자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림고수도 400억 벌기 어려워”


이번 해프닝을 가장 불편하게 바라본 집단은 주식투자를 전업으로 삼는 전업투자자들이다. 사실 이들은 지난 수년간 박씨가 거둔 수익률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 왔다. 박씨에게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며 이번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신준경(44) 스탁포인트 이사는 “주식 좀 한다는 선수들 중 10년 만에 수백억원 벌었다는 박씨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간 박씨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2005년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1500만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며 “해외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았고, 한국 증시에서 우량주와 중소형주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돈을 굴렸다”고 주장했다.


또 박씨는 “테마주나 급등주에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며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등의 시기를 잘 활용해 큰 돈을 벌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자신의 투자 실력을 키워준 일등 공신으로는 방대한 독서량을 꼽았다.


신 이사는 “(박씨 주장은)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고 실전 투자는 전혀 다르다”며 “누구나 아는 교과서적 투자 방식으로 400억원을 번 게 사실이라면, 워런 버핏이 당장 찾아와 비법을 한수 배워갔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실전투자대회에서 우승만 세 차례 차지한 경험이 있는 주식 고수 김형준(44)씨 역시 “날고 기는 트레이더들도 100억원 벌기 어려운 곳이 주식투자의 세계”라며 “게다가 진짜 주식 실력자들은 자신을 잘 노출시키지 않는 편인데, 박씨는 ‘400억원대 자산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언론에 너무 자주 노출돼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번에 박씨는 홍콩 투자회사 근무 이력도 사실이 아니라고 털어놨다. 그간 박씨는 “7년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홍콩으로 건너가 투자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고 자신의 이력을 소개해왔다. 이에 대해 신 이사는 “1500만원을 400억원으로 만들려면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야 한다”며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잠재적 투자자 시장 진입 방해 우려…투자철학 명확해야”


일각에선 “과장이 좀 심했을 뿐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기부 활동을 열심히 하는 건 오히려 사실인데 문제 삼을 필요가 있느냐”며 박씨를 옹호하기도 한다. 실제로 박씨는 현재 10개의 장학 기금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2일에는 모교인 경북대에 5년간 총 13억5000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선행과 무관하게 박씨의 거짓말은 국내 자본시장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간사를 맡고 있는 오무영 금융투자협회 본부장은 “높은 수익률이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게끔 만든 노력의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과정에 대한 학습이 충분해야 좋은 결과를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 본부장은 “하지만 수익률로 자신을 치장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강조한다면, 이들을 추종하는 일반 투자자는 과정을 스스로 공부할 생각을 더 안하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씨 뿌릴 생각 없이 수확부터 기대하는 투자자가 많은 자본시장은 건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황세운 실장도 “박씨가 이희진씨처럼 사기행각을 벌일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이번 해프닝을 지켜본 상당수 대중은 ‘역시 주식시장은 혼탁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스스로 주식투자에 대한 철학을 확고히 갖고 꾸준히 공부해야만 허황된 주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존 리(59)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금융투자 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하고, 가치투자·분산투자·장기투자 중심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이사는 “휴대폰 살 때 일일이 따져보고 비교·분석하는 것처럼 투자 종목을 고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며 “수익률을 앞세운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건 ‘쪽박’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주식시장은 로또처럼 '대박'을 친 사람들의 '신화'만을 추종하고 감탄하고 따르려 한다. 소액이라도 스스로 공부하고 가치 있는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한탕만을 노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 '청년 버핏'같은 해프닝에 혹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천한 주식투자 역사와 대박만을 좇는 투자열풍이 지속되는 한 제2, 3의 청년 버핏 해프닝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온라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