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당한 삼성 일가의 대저택, 그 집에 얽힌 부끄러운 이야기들
지난 8월 7일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전격적으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삼성그룹 일가를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전격적인 압수수색은 재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삼성그룹 오너의 자택이다. 비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금 영어의 몸이 되었고, 이건희 회장마저 식물인간 상태로 3년째 병상에 누워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법조경찰계를 꽉 쥐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삼성이다. 물론 직전에 압수수색 정보를 입수하고 대비를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새 정부 들어 삼성 심장부에 대한 압수수색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더구나 그룹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도 없는 상태라 이번 압수수색은 삼성에 더 큰 악재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경찰청의 권력비리 하명기관인 특수수사과가 나선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일단 경찰의 압수수색 명목은 이건희 회장 등 삼성 일가가 주택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삼성 측이 공사업체에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차명계좌에서 발행한 수표로 공사비를 지불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오너 일가의 '개인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회삿돈을 썼다는 이야기다.
이는 당연히 공금횡령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재벌들에게 이 정도 비리는 비리에 속하지도 않는다. 너무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평창동 자택 인테리어 공사 때 회사 자금을 유용한 혐의를 잡고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
사실 경찰이 마음먹고 털면 이런 일은 수백 건 이상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재벌들은 자택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회삿돈 쓰는 걸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불륜도 회삿돈으로 하는 판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 이렇게 적었다.
“이건희 일가는 유럽 귀족 흉내를 몹시도 내고 싶어 했다. 이걸 굳이 규제할 근거는 없다. 다만 조건이 있다. 개인적인 사치는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희의 생일잔치는 공식행사를 빙자하여 공식비용으로 치러진다. 이들은 개인적인 파티에 회사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공금 유용과는 별개로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3대째 이어진 이 씨 일가의 대저택에는 여러 일화들이 숨겨져 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터를 잡은 곳은 장충동에 있는 대저택이었다. 이 저택은 아직도 이건희 회장의 소유로 돼 있다. 그리고 이 대저택을 중심으로 장충동에는 이병철의 장손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자택도 있다. 황당한 것은 이 일대 주택의 상당수가 삼성그룹 소유라는 점이다.
이재현 회장 자택 바로 옆 두 채는 호텔신라가 보유 중이고, 이웃한 이병철 회장의 본가 옆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각각 한 채를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대저택 주변의 집을 모두 사들인 것도 주변에 '서민'들이 접근하지 않도록 '보안' 차원에서 그랬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개인의 '취향'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 돈이 아닌 회삿돈으로 매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공금 유용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실 이병철 전 회장은 박정희 군사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 주택을 다른 일부 재산과 함께 1965년 사회에 기부한 일이 있었다.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뒤 이병철을 ‘11명의 부정축재자’로 몰고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황당한 것은 이병철 전 회장이 집을 기부한 단체가 바로 삼성문화재단이었다는 점이다. 자기 그룹 소유의 재단에 저택을 기부한 뒤 이 전 회장은 다시 삼성문화재단과 5100만 원에 저택에 대한 전세 계약을 맺고 그곳에 머물렀다.
소유주가 삼성문화재단으로 옮겨졌으니 재산세 등 모든 세금은 당연히 재단에서 물었다. 쉽게 말하면 이병철 전 회장은 자신의 집을 자기가 관리하는 문화재단 앞으로 명의만 옮긴 뒤, 세금도 내지 않고 그 집에서 편하게 살면서 이를 ‘기부’로 포장한 것이다.
삼성문화재단이 관리했던 이 집은 1977년 이병철 전 회장의 3남 이건희 회장의 소유로 돌아온다. 거래 가격은 알려진 바가 없고, 왜 이 회장이 자기 돈 내고(자기 돈을 냈는지도 확실치 않지만) 집을 되샀는지 이유도 확실치 않다. 다만 이유에 대한 추정은 가능하다. 1977년은 이병철 전 회장이 이건희를 후계자로 확정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 씨 일가의 후계구도는 1976년 이병철 전 회장이 일본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을 때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장남을 내팽개치고 3남을 선택한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건희에게 장충동 집을 사도록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이병철로서는 자신이 살던 집을 이건희에게 물려줌으로써 그룹의 적통이 이건희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작 장충동 집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 이 집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적통의 상징으로 장충동 집을 넘겼을지 모르지만, 이 회장은 그 집 알기를 귀찮은 애물단지 여기 듯했다.
장충동 집에는 이병철 전 회장이 1987년 작고한 뒤에도 이건희 회장의 어머니인 박두을 여사가 2000년까지 거주했다. 이때까지는 장충동 집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박 여사가 작고한 뒤 장충동 집은 폐가처럼 변했다. 아무도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2007년에는 이 집에 쓰레기더미가 쌓이고 악취를 풍기는 바람에 주민들이 격렬히 항의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장충동 본가만 폐가가 된 것이 아니고, 바로 뒷집(호텔신라 소유)도 흉가로 변했다. 장충동 주민들은 “그래도 아버님이 사시던 집인데 이 따위로 방치해 놓느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사회에 환원이라도 하는 게 어떻냐?”는 의견도 내놓았지만 이건희 회장은 그 집을 팔지도, 기부하지도 않고 흉가로 내버려뒀다.
이병철 전 회장의 아들들은 알려졌다시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장남 이맹희는 가문에서 축출된 이후 평생을 이건희 회장에 대한 한을 품고 살았다. 그 탓에 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충동 삼성타운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이병철 전 회장 사망 이후 삼성은 1993년 제일제당을 이맹희 일가에게 넘기면서 계열사에서 제외시켰다. 삼성과 CJ(당시 제일제당)가 마침내 서로 다른 그룹으로 갈라선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인 1995년 문제의 그 일이 벌어졌다.
이맹희의 장남 이재현(당시 상무)은 이병철 전 회장의 본가, 즉 문제의 그 장충동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병철 전 회장이 이맹희를 싫어했던 것과 별개로 이 전 회장은 맏며느리 손복남을 상당히 아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복남이 맏며느리로서 오래 전부터 이병철 전 회장 부부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또 이병철은 살아생전 장손인 이재현에게도 살가운 애정을 표현했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 이맹희는 축출 당했지만 이재현은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장충동 본가에 거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본가 이웃이 모두 호텔신라, 삼성전자, 삼성생명이 소유한 집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삼성그룹은 바로 이 이웃집 3층 옥상에 고성능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한 뒤 이재현 집 정문을 감시했다.
이재현 측에 따르면 삼성은 사전 통고 없이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고, 감시 사실을 위장하기 위해 렌즈 앞 유리를 검은 색으로 선팅했다. 이재현 측은 “여러 차례 카메라 철거를 요구했으나 삼성은 이를 묵살했다. 심지어 몇 달 전부터 삼성 비서실 사람들이 이재현 상무를 몰래 미행하기도 했다”겨 격분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이 회장의 노모가 사는 집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사실 설득력은 별로 없었다. 그 집에는 이미 제일제당 측이 배치한 경비원과 CCTV가 설치돼 있었고 경비견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제일제당 그룹이 오너가 사는 집 경비를 소홀히 했을 리도 없었다.
삼성은 “제일제당이 괜한 자격지심으로 이상한 시비를 건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계열 분리된 동생의 집에 감시카메라를 붙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삼성은 “절대 이재현 상무를 감시하려 한 게 아니다”라고 발뺌하면서도 제발이 저렸는지, 사실이 알려지자 황급히 감시카메라를 철거했다.
장충동에 거처를 잡은 아버지와 달리 이건희 회장은 오래 전부터 한남동에 터를 잡았다. 한남동은 이병철 전 회장의 집무실이었던 승지원이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1970년 이후 삼성은 승지원 주변 땅을 야금야금 사들였다. 그것도 개인 돈이 아니라 삼성그룹 임원들의 명의를 대거 이용해 땅을 사재기했다.
삼성이 사재기한 땅은 하얏트호텔 부근의 전망 좋은 노른자 땅들이었다. 그리고 이 땅은 이건희 회장의 자택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쌌다. 이 역시 이건희의 자택을 성처럼 보호하기 위해 삼성이 매입한 땅이라는 뜻이 된다. 당시 세간의 일반적 평가는 폐쇄적인 이건희 회장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이건희 개인 왕궁’을 짓고 싶어 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처음 들춰낸 사람이 이문옥 전 감사관이었다. 이 전 감사관은 1991년 한남동 일대 4500평에 이르는 거대한 부지 소유권이 19명의 삼성그룹 임직원 명의로 분산돼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은 이를 통해 막대한 재산세와 초과택지부담금을 피했다.
문제가 불거지고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자 삼성은 허겁지겁 “그 땅은 문화, 복지타운 조성을 위해 사들인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부동산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실명전환 유예시간이 주어지자, 실명제가 실시되기 한 달 전 재빨리 그 땅의 소유권을 삼성전자 등 계열사로 바꿔버렸다.
문화, 복지타운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그 땅에는 약속한지 8년 뒤인 삼성미술관 리움이 들어섰다. 물론 미술관은 당연히 문화시설이니 삼성이 한 약속이 지켜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리움은 삼성이 운영했던 로댕 갤러리와 함께 고가의 미술품을 사고 팔며 삼성의 비자금을 키우는 ‘어둠의 거래상’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 관장은 삼성 비자금으로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00만 달러에 달하는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과 716만 달러인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등을 구입했다.
김 변호사는 증거로 미술품 리스트와 대금을 어떻게 외화로 지급을 했는지 정리한 문서를 공개했다. 또 김 변호사는 “2002년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이재용이 직접 봤다는 확인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를 맡은 조준웅 특검은 “혐의가 없다”며 이 사건을 덮었다. 홍라희 씨는 2011년 11월 삼성미술관 리움의 관장으로 컴백해 한남동 본 터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이 집이 바로 경찰이 압수수색한 그 집이다.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 18조 원, 이재용 부회장의 재산이 8조 원을 넘는다. 홍라희씨의 재산도 2조 7000억 원에 이른다. 이혼 소송 중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재산도 1조 7000억 원대다. 합계 30조 원을 넘는 거대 자산가들이 이곳 한남동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 거부들은 자기 집 인테리어 할 때에도 회삿돈을 꺼내 쓴다. 집 주변의 땅도 모두 계열사의 돈을 통해 사들였다.
30조 원 대의 자산가들은 자기 돈을 도대체 언제 쓰는 건가? 생일잔치도 회삿돈으로, 집 인테리어도 회삿돈으로, 집 주변 땅 사들이는 것도 회삿돈으로…, 이들의 탐욕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자들이 글로벌 기업을 이끌고 있다. 참으로 처참한 한국의 현실이다.
온라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