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우리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어요" 애끓는 절규

2017-09-05     임석우




우리나라이 휠체어 장애인들은 버스를 탈 수 없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교통체계가 버스 중심인 곳이 많은데,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고, 또한 차별적 요소가 강하다. 최근 한국일보는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특집기사를 두꼭지 실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일반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몸이 불편해 일반사람들이 더 세세히 보살펴주고, 인프라를 확충시켜 그들이 도움없이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 


지난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한 명은 숨지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들이 지하철이 아니라 버스를 탈 수는 없는가. 당시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뜨거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사고 1주년인 2002년 1월 저상버스 도입을 요구하는 헌법 소원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됐다. 저상버스는 버스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바닥이 낮은 버스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유모차를 끄는 부모 등이 비교적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다.


헌재는 2002년 12월 각하 결정을 했다. 국가의 사회보장ㆍ사회복지 증진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34조는 국가의 일반적인 의무를 뜻하는 것이지, 장애인을 위해 저상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구체적 내용이 헌법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두루뭉술한 헌법 조항만으로 국가에 저상버스 도입 의무를 지우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구체적인 법’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 단체들은 끈질기게 버스ㆍ지하철 점거 투쟁에 나섰고, 2005년 국회에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통과됐다. 장애인을 비롯해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어린이 등 교통약자들이 차별 없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2007년에는 장애인의 교통수단 이용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도 제정됐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5년마다 한번씩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을 수립해 발표한다. 정부 계획에는 못 미치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시내버스(3만3,887대)의 약 19%인 6,447대가 저상버스이다. 운임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는 장애인콜택시도 전국에 2,820대가 보급됐다.





그러나 아직도 휠체어 장애인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버스가 있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일부 시내버스(광역급행형, 직행좌석형, 좌석형), 마을버스 등이다. 장애인 단체들은 특히 고속ㆍ시외버스의 저상버스 도입 또는 휠체어 승강장치 장착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원교씨는 “ ‘장애인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KTX나 항공편을 이용하면 되지, 왜 굳이 고속ㆍ시외버스를 타려고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현실을 잘 모르는 말”이라고 말했다. 버스터미널보다 드문 KTX 기차역이나 공항에 내리면 거기서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방은 수도권보다 저상 시내버스나 장애인 콜택시 대수가 턱없이 부족해 환승이 어렵다”고 말했다.


버스 회사에 전적으로 맡길 수 없는 문제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고속.시외버스는 한 대당 가격이 1억5,000만~2억원으로 시내버스(1억2,000만원)보다 더 비싸 저상버스 구입이나 개조의 비용도 더 든다”면서 “또한 휠체어 승객이 없을 때는 그 자리에 다른 승객이 앉을 수 있는 접이식 의자를 두는 시내버스와 달리, 고속.시외버스는 장시간 탑승하는 승객을 접이식 의자에 앉힐 수가 없어서 휠체어 공간은 장애인 승객이 있건 없건 비워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정부 지원과 규제는 필수다. 시내버스는 일반 버스를 저상버스로 교체하는 데 필요한 돈을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50대 50 비율(서울은 60%)로 댄다. 일반 버스는 한 대당 가격이 1억2,000만원이고, 저상버스는 2억2,000만원인데 버스 사업자가 기존의 일반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면 차액 1억원을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5,000만원씩 나눠 대는 방식이다.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저상버스 확대 계획을 우선 순위에서 미루고 50% 비용도 대지 않은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2012년 ‘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 당시 국토부가 밝힌 2016년의 저상버스 목표 대수는 9,594대였으나, 실제 저상버스 보급 대수는 3,621대(달성률 37.7%)로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가 고속ㆍ시외버스 문제에 꿈쩍 않자 장애인단체들은 2014년 정부와 지자체, 버스회사를 상대로 저상버스나 휠체어 승강장비를 도입하라며 차별구제 소송을 냈다. 2015년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은 “교통약자법은 모든 유형의 버스에 동일한 시기ㆍ비율로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내용을 계획에 포함시킬 것을 의무화하는 규정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며 “당시의 기술적ㆍ재정적인 조건을 전제로 점진적인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정부에 면책을 줬다. 이 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와 달리,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시외버스와 시내버스 일부에 휠체어 사용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장애인이 사전 예약으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 “국토부가 관련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고, 장애인 편의 시설을 설치하는 교통사업자에 대한 재정ㆍ금융ㆍ세제 지원을 확대하라”고 국토부와 기획재정부에 각각 권고했다. 그러나 인권위 권고는 강제력이 없다.


정부는 이제야 연구해 보겠다고 나선 상태다. 국토부 교통안전복지과 관계자는 “평균 시속이 30~50㎞에 불과한 시내버스와 달리, 고속ㆍ시외버스는 100㎞안팎의 속도로 장거리를 달리기 때문에 저상버스 도입 등에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교통사고 안전 문제도 훨씬 꼼꼼히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올해 3월부터 연구비 80억원을 들여 교통안전공단, 한국교통연구원 등 13개 기관과 함께 휠체어 탑승 고속ㆍ시외버스과 관련해 ▦버스 개발 ▦안전성 검증 ▦운영기술 개발 ▦실용화 기반 구축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예정된 연구 완료 시기는 오는 2019년 9월이지만 이연구가 끝나는 시점일 뿐이고, 상용화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국토교통부가 고속ㆍ시외버스에 장애인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과 관련해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을 2019년 9월까지 마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장애인 단체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있어 우선 땅에 떨어진 정부 신뢰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뢰 저하는 국토부가 스스로 내건 약속을 깨면서 자초한 측면이 있다. 국토부는 2012년 발표한 ‘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 ‘201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을 41.5%로 높이겠다’고 약속했지만, 2016년 말 실제 저상버스 비율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19%에 불과했다. 그리고 국토부는 올 2월 발표한 ‘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2021년까지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을 42%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익명을 요구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정부는 기술적 이유를 대지만, 사실 의지의 문제가 아니겠냐”면서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정부는 2019년 9월에 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저상버스 도입을 미룰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단 안전에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시범 사업 등을 실시하거나, 최소한 장애인 이동편의장치를 갖춘 고속ㆍ시외버스의 도입 비율 목표치를 제시해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 단체들은 “연구 용역 비용 80억원으로 차라리 저상버스 80대를 마련해 시험 운행을 하라”며 요구하고 있다.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구 용역을 맡겨 놨으니 기다리라’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지금도 충분히 저상버스나 장애인 승강장치가 설치된 버스를 단계적으로 시험 가동을 해볼 수 있으며, 이런 전향적인 검토 없이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든, 장애인 단체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더 넓히도록 노력, 협조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애인 이동권 확대를 ‘유니버설 디자인’(보편적 설계)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그것이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은 곧 모든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수혜자가 장애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애인 단체들이 앞장 서서 설치를 요구했던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현재는 고령자나 유모차를 미는 부모 등이 더 큰 수혜자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접근법은 일부에서 가지고 있는 ‘기차, 항공 등 다른 교통편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정확한 수요 예측도 없이 한 대당 4,000만원씩을 들여 고속버스를 개조하거나 1억원 이상을 들여 저상버스로 교체하는 것은 상징적 의미만 있고 실효성은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다.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의 시선에도 괴로움을 느낀다. 지체장애인 이원교(51)씨는 “휠체어가 들어가는 자리에 설치된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두 명이 나를 위해 자리를 비켜줄 때 승객 모두 나를 쳐다보는 그 시선이 견디기 어렵다”며 “이 때문에 저상버스를 기피하는 장애인이 적지 않다”며 시선의 에티켓도 주문했다.



▲ 휠체어 승강장비가 설치된 영국의 고속버스..

임석우 인턴기자 rainstone@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