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6명이 자살하는 대한민국, OECD 평균의 2배..."이게 나라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하루 평균 36명에 달하는 등 대한민국은 수년째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자살예방의 날(9월 10일)’ 지정 이후에도 현실이나 정책이나 달라진 건 없다는 평가다. 관련 통계마다 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몇 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특히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소년은 물론, 안정적 노후를 즐겨야 하는 노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심각한 상황이다. 정책적·사회적인 무관심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극단적 선택을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월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만315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OECD 기준인 10만 명당 자살률로 보면 우리나라는 25.8명으로, OECD 가입국 평균(12명)보다 2배 이상으로 많다. OECD 2위인 일본(18.7명)보다 7명 이상 많은 압도적 1위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6조4769억 원으로, 암 사망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연간 14조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정부가 2011년 자살예방법을 제정하고 5년 단위로 자살예방 기본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지만, 관련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자살예방사업 예산은 99억3100만 원으로, 일본의 관련 예산 7508억 원의 1.3% 수준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년도 예산도 105억5200만 원이다. 지방정부 예산을 모두 합쳐도 200억여 원에 불과하다. 이런 예산으로는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자살 예방 상담 및 지원 인프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지방정부학회의 ‘지방정부의 자살예방정책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자치단체의 자살예방 조례 제정과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설치 운영이 연결되지 않으면서 지역 자살률을 낮추는 데 별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도시 중심으로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설치되면서 노인 등 자살 고위험군이 많은 농어촌 지역은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이는 자살률 지역별 편차(10만 명당 서울 19.9명, 강원도 28.7명)를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20대는 극단적 선택 전 학교·직장 관계를 정리하며 SNS 사진이나 문구에서 이를 암시하는 특징이 있다. 50~60대는 평소와 다르게 호의를 베푸는 등 특이한 행동을 보인다. 중앙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자살 징후가 보일 때 따뜻한 말로 치료를 권유하고, 주변 사람과 함께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데도 정부의 대책은 미약하기 그지 없다. 두 가지 관점에서 짚어보자. 먼저 역시 '돈' 문제다. 정부가 자살 예방을 국정과제로 선정했지만 정작 내년 예산은 6억원밖에 늘려 잡지 않아 정책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자살예방협회·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생명보험협회가 7일 국회에서 주관한 토론회에서 백종우(경희대 의대 교수)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은 “새 정부가 국정과제의 하나로 자살 예방을 선정했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보고대회에서 정책 강화를 약속했지만 예산은 6억원 증가에 그쳤다”며 “이대로는 획기적인 자살률 감소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확정한 2018년 예산안을 보면 내년 자살 예방 예산은 105억5200만원이다. 올해(99억3100만원)보다 6억2100만원(증가율 6.2%) 증가했다. 지난해 증가율 16.5%보다도 훨씬 낮다.
백 총장은 교통사고처럼 자살도 예방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2015년 한 해 4621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는데 연간 교통사고 예방에 4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반면 자살(사망자 1만3513명) 예방은 99억원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교통사고 예방 활동 덕분에 2001~2011년 사망자가 39%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백 총장은 “자살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사회적 문제로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고 해결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돈문제뿐 아니라 공무원들의 '마인드'도 문제다. '자살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전혀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책 수행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문제라고 한다. 이를 위해 국회에 자살예방포럼을 만들 것을 제안하는 전문가도 있다. 또 주무부처인 복지부뿐만 아니라 교육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가 같이 나서야 하는데, 이를 위해 대통령 산하에 특별위원회나 총리실에 관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명수 자살예방행동포럼 라이프 대표는 “자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6조5000억원인데도 지방정부 예산을 포함한 자살 예방 예산이 200억원에 머물고 있다”며 “일본이 3000억원인데 우리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진 나사렛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보건 영역을 넘어 복지·교육·의료·직장·지역 등에서 같이 노력하고 다양한 민간단체와 협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연은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교통사고처럼 사망자 수 등 자살 통계를 매일 공개해 국민의 관심과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의 예산과 정책 수립 의지 부족과 함께 의료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차전경 과장은 자살문제 해결을 위해 저조한 항우울제 처방 현황 등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과장은 국회에서 열린 ‘자살예방 범국민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자살문제가 의료냐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는 항우울제 처방률이 굉장히 낮고 정신과에 가지 않고 정신건강을 돌보는 등 정신건강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자살문제를 지금까지의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접근하다 보니 구체적인 대책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고치기 위해 자살을 일종의 '병'으로 규정하고 의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차 과장은 “살면서 빈곤, 이혼 등 다양한 고비가 있지만 (고비를 겪는) 모든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진 않는다”며 “힘든 상황에서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나오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차 과장은 “단기적으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련 예산도 많이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 차 과장은 우리나라가 OECD 자살률 1위인 것은 노인자살률이 높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차 과장은 “우리나라 청소년, 중년, 장년 자살률은 OECD 평균이다. 그럼에도 전체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노인자살률이 10만명당 80~90명에 이를 정도로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 과장은 “노인자살은 빈곤과 건강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초연금 대책이나 문재인 케어 등의 정책을 지속 추진해 빈곤과 질병문제를 해결하면 노인자살률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차 과장은 정부 외 사회 전체가 자살문제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차 과장은 “자살은 예방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하지만 정부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 등이 정부와 같이 노력하지 않으면 자살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 과장은 “정부에서도 관련 과를 신설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등 노력을 하겠지만 자살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이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통계를 하루 이틀 본 게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전혀 새로운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다.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할 수가 있느냐'는 인식으로는 자살 퍼레이드를 막을 순 없다. 자살은 우리가 함께 보듬어야 할 사회의 가장 어두운, 절망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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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우 인턴기자 rainstone@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