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취업 비리, 합격자 518명 중 493명 ‘빽’ 있었다
청년 실업이 사회의 만성적인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취업을 하는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청탁 등 부정한 방법도 늘어나고 있다. 한겨레가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강원랜드의 2012~13년 선발된 신입사원 가운데 95% 이상이 청탁자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내부 감사 결과가 10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한해 입사자의 95% 이상이 '빽'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충격적이다. 거미줄같은 빽이라도 없으면 이제 공기업 취직은 꿈도 못 꾸는 세상이 된 것일까. 자세한 사정이 무엇인지 소개해본다.
한겨레는 지난 7월 말부터 ‘공기업 채용 비리’를 탐사취재해왔다고 한다. 그 결과물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보좌진이 주요 공기업에 부정·특혜 채용된 사실을 앞서 보도했다. 아직도 부정청탁과 세습채용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강원랜드는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다.
강원랜드는 2012~13년 1·2차에 걸쳐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한 교육생 공모(서류전형-직무평가-면접)를 통해 일반사무와 카지노·호텔 부문 518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사장이 바뀐 뒤인 2015년 내부감사 결과, 493명(95%)이 청탁 대상자로 처음부터 “별도 관리”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지난해 2월 강원랜드가 검찰에 수사의뢰하며 조직적 채용비리가 존재한 사실만 겨우 드러났을 뿐이다.
권성동 의원(자유한국당)의 지역사무실에서 인턴 비서로 일하던 ㅎ씨(30대·강릉·강원대 졸업)도 2013년 강원랜드에 취업해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ㅎ씨는 인턴 근무 중인 2012년 11월 강원랜드 1차 교육생 일반사무직 부문으로 지원했다. 강원랜드 ‘청탁 문건’에 권성동 의원의 청탁 대상자로 분류된 이 가운데 1명이라고 핵심 관계자들은 말한다.
회사는 애초 일반사무직 14명, 카지노·호텔 부문 263명을 선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류전형 때 지원부문 구분을 없애고 일괄 705명을 통과시킨다. 카지노·호텔 쪽에 견줘 ‘스펙’이 대개 더 나은 사무직 응시자들이 크게 혜택을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반사무직 응시자 151명이 면접을 보았고, 이 중 61명이 최종합격했다. 반면 카지노·호텔 부문 합격자는 259명으로 채용 계획보다 되레 줄게 됐다. 강원랜드 내부자들은 “(청탁) 명단엔 있었지만, ㅎ씨는 성적이 조작된 사례는 아니고 현재 근무 평판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진짜 좋은 빽(뒷배)은 카지노 같은 데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실제 행정 쪽으로 바꿔 들어간 이들이 있다”는 말도 엄연하다.
그밖에도 갖가지 부정청탁과 이에 따른 점수·절차 조작 등이 당시 채용절차 내내 난무했다.
합격자 493명뿐 아니라 불합격자 중 최소 200명 이상도 “내·외부 인사의 지시·청탁에 의해 선발과정 시작부터 별도관리된 인원”이었다. 불합격자엔 “자기소개서가 서너 줄”이거나 “도저히 뽑을 수 없는 면접 태도”의 응시자, “면접 미응시자” 등이 포함됐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물론 그 수준에서 합격한 이들도 있다는 게 또 이들 설명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막상 성적이 괜찮은 이들 상당수도 ‘청탁자’를 끼고 있었다.”
이건 어떤가. “청탁자가 6명까지 겹치는 응시자도 있었다.”
이건 또 어떤가. “인사팀장이 하루 받은 청탁전화·문자만 200통 넘은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 시기 강원랜드의 대규모 신입채용은, 정부로부터 얻어낸 카지노 증설 허가 등에 따른 인력 확충 목적이 컸다. 카지노 딜러가 부족했고 식음료·호텔 쪽, 종국에 경영관리직까지 동반 충원이 필요했다는 논리다. 이에 강원랜드는 서류전형-인적성 검사-면접(토론·인성평가) 기준을 마련해 모집공고한다. 1·2차 합쳐 전국에서 5286명이 지원했다.
‘선’이 안 닿거나 미약한 여럿은 들러리였다. ‘청탁자-최흥집 대표이사-인사팀장-인사팀’이 구성한 세계 안에서 청탁 대상자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된 탓이다.
일단 서류 평가를 맡았던 인사팀 직원들이 팀장 지시로 청탁 대상자들 점수를 끌어올렸다. 애초 기준은 학력·전공(40), 자기소개서(60점) 평가와 함께 폐광지역 10년 이상 거주자에게 ‘최대 5점’ 가산 우대였다. 막상 서류 탈락인데도 22점이 더해져 자기소개서 만점이 되고 결국 최종합격까지 된 신아무개씨 등 1~2차 합쳐 244명이 부당하게 서류전형을 통과한다. 이 과정에서 인사팀장의 ‘행동대장’ 격인 한 사원은 다른 인사팀 직원 컴퓨터에 직접 접속해 점수를 고치기도 한다.
인·적성 평가는 강원랜드가 전문업체에 맡긴 필기시험이었다. 1차 450명, 2차 300명만 걸러 면접을 치른다는 계획이었다. 모두 3000만원이 들었다. 최흥집 사장은 청탁 대상자 가운데 탈락자가 대거 나오자 “인·적성 점수를 면접 참고자료로만 사용하라”고 지시한다. 사장 말 한마디로 미자격자 185명을 구제하고, 3000만원은 내다버린 셈이다.
면접 땐 심사위원 간 사전 협의, 사후 추가조작으로 ‘청탁 대상자 살리기’가 이뤄졌다는 게 감사 결과다. (검찰은 면접 조작 의혹은 문제삼지 않았다.) 면접위원은 인사팀장과 카지노관리실장, 호텔관리실장이었다. 청탁 대상자의 74% 이상이 ‘짠 듯’ 세 위원으로부터 합격권인 8점(10점 만점)을 받았다. 합격 최저선에 걸친 동점자가 대폭 양산됐다. 회사는 그들 전원을 채용한다.
당시 감사는 7개월 동안 진행됐다. 강원랜드 내부자들은 “파다 보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검찰에 넘겼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강원랜드의 수사의뢰 진정을 받은 지 1년2개월 만인 올해 4월 최흥집 전 사장과 권아무개 인사팀장 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면 강원랜드에 왜 이같이 취업 청탁이 거세게 몰리는 것일까. 지난 5월 취업 포털 ‘사람인’이 조사한 하나의 결과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람인은 대학생·구직자 16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1명(8.3%)이 공기업 가운데 한전을 가장 입사하고 싶은 곳으로 꼽았다고 한다. 한전은 급여도 많고 복리후생 제도도 잘 돼 있어 전통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곳이다.
‘공기업 선호도’ 2위는 국민건강보험공단(7.3%), 3위는 한국철도공사(5.4%)였다.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5.1%), 국민연금공단(5.1%), 한국토지주택공사(LH, 4.3%), 한국수자원공사(4.1%), 한국전력기술(3.8%), 강원랜드(3.7%), 한국과학기술원(3.6%)이 10위 안에 들었다. 톱10에 든 기업은 대부분 기업규모가 큰 곳이다.
공기업에 입사하고 싶은 이유로는 37%가 ‘정년 보장 등 안정성’을 꼽았다. 이어 ‘정시 퇴근 등 근무 환경’(23%) ‘사내 복지, 복리 후생’(14%) ‘높은 연봉’(8%) 등 순이었다. 대기업 선호도 조사에서는 입사 희망 이유로 ‘높은 연봉’(33%)이 1위로 꼽혔다. 그다음이 ‘사내 복지 및 복리 후생’(20%) ‘정년 보장 등 안정성’(8%) 순이었다.
강원랜드 어떤 곳이기에...
강원 정선군 사북읍 외딴곳에 자리잡은 강원랜드가 지난해 올린 매출은 1조6965억원에 이른다. 이런저런 비용을 뺀 영업이익만 6186억원으로, 기업이 장사를 해서 이문을 얼마나 남기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로 나눔)은 36%가 넘는다. 초일류 기업 삼성과 애플을 크게 앞선다.
높은 수익을 내는 비결은 정부가 강원랜드에만 내국인 카지노를 독점 허용해줘서다. 카지노가 회사 매출의 95%를 웃돈다. 이 때문에 강원랜드는 민간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준정부기관)으로 지정돼 정부의 통제와 감시를 받는다. 탄생부터 법에 뿌리를 뒀다. 1996년 만들어진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터잡아 1998년 설립됐다. 주요 주주 또한 광해관리공단과 국민연금, 강원도개발공사 등 다른 공공기관이다. 사업 목적도 공공성이 강하다. 폐광지역의 경제 진흥과 사회공헌을 통한 국민행복 증진이 목표다.
공공기관으로서 고용이 보장되는데다 올해 정규직 평균 연봉이 7천만원이 넘는다. 가히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하다. 이곳에서 2012~13년 채용된 신입사원 518명 중 493명이 부정청탁을 받아 채용되는 등 정부의 감시를 받는 곳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채용비리가 만연해 있다.
현재 강원랜드 사장은 함승희씨다. 대표적인 '친박'인사로 분류돼 임명 때도 논란이 거셌다. 이렇듯 위에서부터 정치적 입김이 작용해온 곳이기 때문에 그 아래도 마찬가지로 물이 흐릴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강원랜드 사장도 '친문' 인사가 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면 선량한 취업준비생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