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문재인 대통령, 코리아 패싱 돌파 전략은?

2017-09-24     성기노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 사실 문 대통령이 처한 작금의 상황은 상당히 어렵다. 유엔총회 연설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야당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 논조가 사뭇 다르긴 하지만 무조건 야당의 ‘묻지마 평가절하 전략’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현 상황이 상당히 위중해 보인다.


일단 야당의 논평 차이를 한번 살펴보자. 자유한국당은 예상대로 다분히 감정적으로 문 대통령의 연설을 평가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미국 유력지를 끌어대 자신의 묵은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 유력지인 뉴욕타임스가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로부터 ‘이상한 사람’(Odd Man Out)이라는 취급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핵무장을 포기시키기 위해 군사적 옵션까지도 검토하고 제재와 압박을 가하고 있는 국제현실에 유독 문 대통령만 지금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쯤 되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한국 국민들이 조중동이나 한경오보다 뉴욕타임스를 더 신뢰한다고 보지 않는다’라는 논평이 나올 법하다. 정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을 ’이상한 사람‘보다 더 이상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1 야당의 논평 치고는 대안 없는 ‘모두까기’에만 집중했다는 느낌이 든다. 한 40점 주고 싶다.


이철우 최고위원 또한 “정부와 여당은 한반도 운전자론 같은 허망한 말잔치만 늘어놓지 말고 안보위기에서 정말 제대로 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청문회에 응해줄 것을 당부 드린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이 또한 40점 이하의 논평이다. 야당이 좋아하는 청문회를 열어본들, 준비부족에다 ‘쇼잉타임’ 의식해 말꼬리만 잡다가 끝날 것이다.


바른정당은 그나마 구체적인 상황인식 정도는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세연 정책위의장은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홍보를 위해 대화와 평화를 강조해야 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에 단결된 제재와 압박 의지도 강조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같은 바구니에 담기 어려운 상충되는 상황을 다루려고 했으니 결국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빈손으로 오게 되는 무개념 뉴욕외교가 된 것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이 지적은 현재 문재인 정부가 처한 외교적 딜레마를 어느정도 묘사해 주는 것 같아 청와대에도 아픈 지적일 것으로 보인다. 60점 정도 매길 수 있다.


국민의당도 비슷한 논조였다.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제재-압박-대화 병행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국내에서는 대북 지원을 결정하는 모호한 태도는 지속되는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군사옵션까지 거론하며 세계가 강한 압박을 하는 현 상황에서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고 질타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지적이다. 60점.


이 대목에서 정의당의 논평이 상당히 궁금해진다. 야 3당은 어느 정도 예견된 논평을 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과 DNA가 가장 비슷한 정의당은 최석 대변인이 논평을 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한계는 여전하다. (하지만) 평화 원칙을 꾸준하게 강조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의당의 논평이 아마도 덜 정략적이면서도 나름대로 균형을 맞춘 객관적인 논평인 것으로 보인다. 80점.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호평을 했다고 해서 당 논평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 아니다. 현재 문 대통령과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이 견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내하는 평화 전략이다. 이 외에 다른 옵션이 있을 수 있을까? 이명박-박근혜 정부 따라서 강대강으로 다시 맞서게 되면 어떨까? 그 10년의 강대강 전략의 끝이 북한의 완전한 핵개발이었다.


‘날뛰는 망나니’를 결국 잡지 못한 꼴이다. 이젠 뭘 써야 할까? '매'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났다. 이웃에서 더 큰 매를 빌려서라도 잡아야할까? 문재인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평화 전략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제재와 압박을 가하되 종국적으로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말하는 문 대통령 스탠스를 보면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해서 이기려는 전략’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 지적처럼 ‘같은 바구니에 담기 어려운 상충되는 상황을 다루려고’ 하는 문 대통령이 답답해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한번 바라보자.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했던 유이한 정권이었다. 그 정권의 남북화해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문재인 정부가 현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통일전략을 선택할 수는 없다. 문 대통령과 정부가 ‘남의 속도 모르고’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는 김정은 위원장이 야속하기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대국 미국과 중국에 끼여 외교적 처신도 대단히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쳤던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관계의 주도적인 권한 행사 전략도 지금은 매우 제한적이다. 북한이 우리를 무시한다기보다 외교전략 우선순위 상 미국과 담판을 지은 다음에 우리와의 대화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화를 통한 해법의 실천적 조건과 역량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고충과 외교적 고립을 국민 여론이 받아들이거나, 또는 용인하고 있기 때문에 사드배치도 문재인 정부 지지세력의 반대가 있긴 했어도 비교적 무리 없이 들여올 수 있었고, 문재인 정부의 현 외교 전략을 이해한다는 쪽으로,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쪽으로 여론이 모여 있는 것 같다. 이런 여론의 인내심은 상황이 어떻든 문재인 정부를 믿고, 또 어떻게든 이를 지켜내려는 촛불 민심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한반도 북핵 위기 전략에 대해 안타까운 점도 있다. 필자는 최근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한 고위급 외교소식통을 만난 적이 있다. 나름대로 정보 채널을 갖추고 있어 신뢰할 만한 인물이다. 이 인사에게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고립과 딜레마를 얘기하면서 ‘그러면 문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직설적으로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인사도 마땅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해 안타까워했지만, 한가지 새로운 접근 방식을 들려주었다. 현재의 대북 채널을 과감하게 바꿔서 새로운 남북 대화 채널을 확보하라는 조언이었다. 사실 이 인사에 따르면 북한이 미국에 엄청나게 ‘역대급’으로 개기고 도발을 하고 있지만 현 시점, 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물밑에서 북미 대화 파이프라인이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마치 전쟁이 날 것처럼 대치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북미협상 타결이라는 빅뉴스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전쟁이 일어나도 물밑으로는 각종 협상 채널이 오고 간다. 지금의 북미 대치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북한이 ‘역대급’ 설전을 현재 벌이고 있지만 그 레드라인을 결정적으로 넘지 않고 있는 것은 양국의 협상 채널이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과 일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베 총리도 북한 정권 핵심부와 물밑에서 오고가는 ‘채널’을 몇 개 가지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북한이 비록 일본 머리 위로 미사일을 쏘고 있지만 그 궤도는 항상 일정하게 홋카이도 북쪽 근처로 향한다. 도쿄나 오사카 등의 남쪽 궤도로는 절대 날아오지 않는다. 나름대로 북한과 일본 사이에 있는 일종의 ‘레드라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여기서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이런 말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이 어떤 말을 했는지 모든 정보채널을 동원해 알아내려고 했다. ‘아메리카 패싱’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들어서 이런 상황이 역전이 돼 버렸다. 왜 그럴까? 바로 남북 비밀채널의 동시 와해에 있다.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다이렉트로 통하는 채널이 아예 없거나, 그 채널의 위상과 수준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비해 훨씬 떨어져있기 때문에 ‘코리아 패싱’ 현상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임시 가동됐던 대남 라인을 거의 숙청하거나 전면 교체했다. 통일전선부(통전) 라인은 김정은 직속 라인에서 배제됐고 그 라인을 강경 군부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북 라인은 ‘옛날’ 통전라인과 접촉하던 세력 그대로다. 서훈 국정원장이 대표적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실질적 리더였던 서훈 원장은 북한의 통전 라인과 오랜 끈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통전라인이 대거 교체되면서 우리는 그 카운터파트를 잃어버린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북한 통전라인 몰락의 상징적 사건이 바로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이다. 김양건 노동당 비서는 우리에게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상당히 친숙해진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5년 12월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당시 김양건의 사망 배경을 두고 최근 일각에선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됐을 가능성이나 권력 암투의 희생물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 김양건의 공식행사 마지막 모습은 지난 2015년 12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의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시찰 때였다. 행사 내내 김정은의 오른편에 서서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외정책을 담당했지만 대내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김정은을 보필했다. 김양건은 그 뒤 12월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같은 의혹 제기는 긴박했던 당시 북한의 상황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당시 중국 베이징에 갔던 모란봉악단이 첫 공연을 몇 시간 앞둔 12월 12일 돌연 평양으로 돌아갔다. 같은 날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북측은 남측이 북핵 문제를 꺼내면서 결렬됐다.


대외적으로 남북 관계가 핵 문제를 놓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당시 물밑에서는 이병호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김양건 북한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남북 아닌 제3국에서 극비리에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측의 만남은 ‘특별한 합의’ 없이 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측에서 대화로 남북 관계를 풀어가자고 주장한 온건파와 미사일 도발을 주장한 ‘군부 강경파’가 대립했고 결국 강경파가 온건파를 제압해 당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수소탄 실험까지 지시하는 것에 이르렀다는 관측도 있다. 이 같은 관측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대남 ‘온건파’로 분류되는 김양건의 사망은 단순 사망이 아닌 ‘암살’을 당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북한의 강경한 핵 도발은 바로 김양건이 사망한 시점 이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그때부터 남한과의 물밑 접촉 라인을 완전히 바꾼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후를 대비하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탄핵으로 갑자기 들어섰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를 미처 못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앞서의 외교소식통은 문재인 정부가 하루빨리 북한의 바뀐 대남 협상 채널과의 끈을 복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직통’할 수 있는 대북라인을 최대한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코리아 패싱’이 일어나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과 최소한의 ‘레드라인’을 만들어내야 한다. 전쟁 충돌의 완충지대를 설치해야만 한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외교안보라인은 대부분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일했던 인사들이다. 그들과 대화가 되던 북한 라인들은 거의 교체됐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우리도 새로운 대북 라인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든 야든 가리지 말고 인재를 발굴해 북한과의 물밑 접촉에 나서야 한다.



▲ 지난 2007년 10월 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2007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나오고 있다. 뒤에 김만복 국정원장(맨 왼쪽) 이재정 통일부장관, 그리고 김양건 노동당 비서 등의 모습이 보인다.




최근 청와대가 일부 일본의 언론 ‘왜곡보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지적했다. 그 가운데 “아베 총리는 힘이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힘이 부족하다”는 한 일본 극우 언론의 기사내용도 있다. 청와대는 발끈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 백악관 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런 일본 극우 언론의 왜곡 보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언론이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한미일 정상회담 발언 내용을 몇 차례에 걸쳐 왜곡 보도하고 있다. 향후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일본의 이 오만한 보도가 ‘왜곡’이 아닐 수 있다. 일본 언론이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아베는 힘이 있다’고 말한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일본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직통’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과의 물밑 채널을 열어놓고 그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현재의 북핵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힘이 없다’고 말한 배경은? 아마도 일본은 문재인 정부 내에 자신들의 대북 라인만큼 든든한 우리의 대북채널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사저널의 한 기자 글을 리트윗한 적이 있어 화제가 됐다. 글의 요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서도 온갖 굴욕을 감내하면서도 평화를 지키려는 그 의지와 고충을 이해해주자는 것이다. 백퍼센트 동감한다.


하지만 외교는 현실이고 전쟁이다. 고충을 이해해주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제는 북한의 장사정포가 서울을 때리면 고층빌딩이 그 방어막이 될 것이라는 둥, 지하철 역사 내로 피신하면 인명은 많이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전쟁은 우리에게 한발짝 더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고립무원의 지대에 서 있다. 그 고립의 지대에서 결국 누구의 손을 잡느냐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 북한은 전혀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미 흘러간, 단절된 주파수로 발신을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김정일과 김정은 위원장은 부자지간이지만 완전히 코드가 다른 지도자다. 핵 위기를 이 정도까지 끌어올린 김정은 위원장과 김정일 위원장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옛날 남북대화 문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새로운 대북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 첫 번째 길은, 문재인 대통령이 하루빨리 김정은 위원장과 직통하는 채널을 뚫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능력'이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안보 위기를 헤쳐 나가는 황금열쇠가 될 것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