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정진석 발언, 실형 8월 받은 조현오 발언에 버금가"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부부싸움 때문”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건 징역 실형 8월이 나온 조현오 경찰청장이 했던 말과 버금간다”며 “(정 의원이)법적 책임을 지면 된다”고 25일 밝혔다.
박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한 것은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한 조 전 경찰청장과) 뭐가 다르냐”며 이같이 말했다. 조 전 경찰청장처럼 정 의원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 전 경찰청장은 2010년 3월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직 당시 한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차명계좌가 발견되지 않았느냐”고 발언한 것이 알려져,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다. 결국 2014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8월형이 확정돼 형을 살았다.
그는 정 의원에 발언에 대해 “기가 막힌 얘기다.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며 “지난 19대 국회 때도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특위가 있었는데 그때도 역시 노 대통령 시절의 얘기를 꺼내 가지고 사실상 국조특위를 무력화했다”고 꼬집었다. 또 “(정 의원은) 2009년부터 2011년 초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무수석 비서관을 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수사요구와 수사 흐름에 대해서 제동을 걸기 위한 차원”이라며 정 의원이 발언이 최근 불거진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한 ‘물타기’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일종의 물타기다. 정쟁으로 몰아가서 사안을 흐리게 하게 하기 위한 그런 의도라고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박 의원은 “이것은 정진석 의원이 원하는 바일 테고 그냥 법적인 대응과 법적인 책임을 지면 된다”고 법적 대응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의원이 에스엔에스(SNS)에 해명글을 올렸다. 정식사과가 필요하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사과의 문제가 아니고 정진석 의원이 그렇게 얘기하실수록 이것은 결국 엠비(MB)정부의 적폐를 가리기 위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며 “저희들은 그 발언은 발언대로 그냥 법적 대응 할 것이고, 유족께서는 오늘 중에 고발할 예정이다. 고소할 예정으로 저는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의 주장은 정진석 의원을 끝까지 추적해 '실형'을 살리겠다는 결연한 의지로도 읽힌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도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발언을 했다가 결국 법정구속까지 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여당으로서는 이번에도 어떤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현오 전 청장과 이번 건은 '세력'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조 청장은 현직도 아니었고, 전직 공무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소송전에서도 '뒷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정진석 의원의 발언은 현 보수야당이 현재의 문재인 1인 정국을 깨기 위한, 다분히 정략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 정 의원이 소송에 휘말릴 경우 당의 모든 화력을 총동원해 '개 싸움'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난전에 능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런 것을 보고있을 리 없다.
홍 대표는 25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망문제를 두고 벌어진 일에 대해 재론을 한다는 것은 서로가 바람직스럽지 않다"며 "우리 당 정진석 의원의 발언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침소봉대해서 문제를 키우는 것은 결국 640만 달러 (노 전 대통령) 뇌물 사건의 재수사 문제와 범죄수익 환수 문제로 귀착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홍 대표는 "정 의원이 한마디 한 것을 침소봉대해서 본질은 외면하고 곁가지만 두고 지금 논쟁을 벌이고 있다"며 "정부와 여당은 이 점에 대해서 명심하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의 '탄착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공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4선 중진 정 의원의 막말이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추 대표는 “현 대표(홍준표)와 전직 원내대표가 막말경쟁하듯 정치가 이렇게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것인지 민망하기 짝이 없다”며 “막말을 그들 스스로 옹호하는거 보면 다분히 계산된거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분란 의도'를 알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싸움이 여당에 별로 유리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번 싸움은 '적폐청산'이라는 전장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여당은 '이번 기회에 근거없는 낭설을 유포하는 야당을 손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야당은 그 방어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사건 재수사로 방어막을 칠 것이다. 결국 적폐청산의 전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사건이 돼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여당에 유리한 전장 구도가 아니다.
적이 만들어 놓은 덫에서 싸움을 시작하는 꼴이다. 적폐청산의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이명박 블랙리스트, 박근혜-최순실 사건 등은 아직 규명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럼에도 난데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사건이 주 이슈가 돼 버리면 다른 적폐가 오히려 묻힐 가능성도 있다.
추미애 대표는 야당의 '다분히 계산된 의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알면서도 야당 공격에 휘말리고 있는 것 같다. 애초부터 이번 정진석 의원의 발언 의도는 '여야 정쟁을 부추겨 여당의 전열을 흐트려놓겠다'는 것이었다. 여당은 소송전이 벌어지더라도 법리적인 대응만 하는 로우키 행보가 적절해 보인다. 여야 간의 명분집착 정쟁이 책임 있는 집권여당에게 불리한 의제라는 것을, 지난 30년 정치역사를 통해 지긋지긋하게 봐 왔지 않는가?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