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km 동굴 발견..."2050년까지 달에 1000명 거주"
2050년이면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그때까지 1000명이 살 공간을 달에 짓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실행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의 공상과학(SF) 드라마 '마스(Mars·화성)'는 2033년 화성에 도착한 우주인들의 정착 과정을 그렸다. 우주인들은 천신만고 끝에 동굴을 찾아 그 안에 첫 거주시설을 짓는다. 드라마의 상상력이 사실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유럽 과학자들이 달과 화성에 우주인의 마을을 세울 만큼 커다란 용암 동굴들이 있다고 발표했다. 2050년까지 1000명 이상이 살 달 기지를 건설하는 계획도 나왔다.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이 동굴에서 삶을 시작했듯 우주에서 새로 만들 문명도 동굴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이탈리아 파도바대·볼로냐대 공동 연구진은 지난주 라트비아 리가에서 열린 '2017 유럽행성과학대회'에서 지구와 달, 화성의 용암 동굴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위성 관측 정보를 토대로 지구의 용암 동굴은 폭이 최대 30m 정도이지만, 달에는 폭 1㎞의 동굴이 수백㎞에 걸쳐 이어져 있다고 밝혔다. 화성의 동굴은 폭이 250m 정도로 추정됐다. 파도바대의 리카르도 포조본 박사는 "화성 동굴은 우주인 거주시설들이 들어선 거리를 세울 규모이고, 달에는 마을 전체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용암 동굴은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이 땅속으로 흘러가면서 생긴 지형이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란사로테섬과 하와이섬, 이탈리아 시실리섬처럼 과거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유럽우주기구(ESA)는 이미 달이나 화성의 동굴 탐사에 대비해 란사로테 용암 동굴에서 우주인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세 천체의 가장 큰 차이는 중력이다. 밑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없으면 용암은 계속 부풀어 올라 큰 동굴을 만든다. 달은 중력이 지구의 17%에 불과하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용암 동굴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화성은 중력이 지구의 38%이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 인공위성은 달의 중력 지도를 만들었다. 지하에 빈 공간이 있으면 밀도가 낮아 중력이 낮게 나온다. 과학자들은 중력이 다른 곳보다 특히 낮았던 현무암 평원에 과거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지하 용암동굴이 있다고 본다.
과학자들이 달과 화성에서 동굴을 찾는 것은 우주인의 정착지로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대기가 희박한 달과 화성에서는 우주에서 날아온 강력한 에너지의 방사선 입자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인체와 전자장비를 공격한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운석도 골칫거리다. 동굴은 방사선과 운석을 차단해줄 자연 보호막이다.
우주 정착에 필수적인 물도 동굴에서 구할 수 있다. NASA는 2009년 달 남반구의 햇빛이 들지 않은 지역에서 올림픽 규격 수영장 1500개를 채울 수 있는 39억L의 물이 얼음 상태로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자들은 용암 동굴은 햇빛을 차단해 물이 얼음 상태로 있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본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도 필요하고, 수소와 산소로 분리해 우주선의 연료로도 쓸 수 있다. 지구에서 1차로 달까지 갈 수 있을 만큼만 연료를 싣고 로켓을 발사하고, 중력이 약한 달에서 다시 연료를 채우고 먼 우주로 나가면 발사 경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유럽우주기구는 이번 대회에서 2030년까지 달에 우주인 6~10명이 살 기지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달 거주인은 2050년까지 1000명 수준으로 늘 것으로 예상했다. 그때쯤이면 달에서 태어난 아기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달 기지 건설에는 3D(입체) 프린터가 동원된다. 신휴성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극한건설연구단장은 "달 토양에 접착제로 물 대신 플라스틱을 녹여 넣고, 이것을 3D 프린터로 층층이 쌓아 돔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ESA는 지난 4월 중국국가항천국과 2020년대에 3D 프린터로 달기지를 공동 건설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과학자들은 달 기지가 2024년 퇴역하는 국제우주정거장의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우리나라도 우주용 3D 프린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달 21~26일 미국에서 NASA가 주최한 '달 기지 3D 프린팅 대회'에서 건설기술연구원·한양대팀이 최종 결선에 진출해 달 기지 모형을 찍어내는 데 성공했다. 신휴성 단장은 "미국 대학 팀 두 곳을 제외하면 외국팀으로는 유일하게 최종 임무까지 완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에서 '사는 것'은 기대보다 너무도 어렵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기후다. 달의 낮과 밤은 각각 2주간 지속되는데, 우주인은 낮 동안에는 태양열로 생존할 수 있지만, 그 후 이어지는 2주간의 밤 동안에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밤 동안 달은 온도가 한겨울의 남극 기온의 4배에 달하는 영하 150도까지 떨어지는 극한 환경으로 변한다. 우주인은 안정적인 동력 공급원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달에서 장기적으로 유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극한적인 자연환경에서 인간을 지키기 위한 다음의 조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 기지 내의 공기가 진공인 밖으로 새지 않도록 기밀성이 높게 건설되어야 한다.
• 기지 밖의 온도가 햇빛이 비치는 곳은 130℃, 그늘진 곳은 -170℃이므로 내열성과 단열성을 갖춘 기지를 건설하고, 위치를 그늘진 곳과 햇빛이 적당히 비치는 곳으로 선택해 기지 내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유리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 태양과 우주에서 오는 강력한 방사선으로부터 우주인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 운석으로부터 우주인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 달에 쌓여 있는 먼지가 달에서 움직이는 운반체의 베어링이나 우주복의 연결 조인트에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이와 같은 극한의 환경과 열악한 조건에서 우주인을 보호할 수 있는 달 기지는 지하에 콘크리트로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달의 기능이 확실해지고 달 자원의 이용이 본격화되면 달 기지 건설에 달의 자원으로 만든 건설 재료들이 사용될 것이다. 달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건설 재료는 콘크리트이다. 콘크리트의 성분은 물과 골재 그리고 시멘트이다. 시멘트의 재료 중 수소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달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콘크리트 인공물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것이 바로 이번에 발견한 동굴이다. 거대한 동굴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대체할 천연의 보금자리인 셈이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항공우주국에서 얻은 달의 모래로 물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달의 모래 속에 들어 있는 일미나이트(ilmenite : FeTiO3를 주성분으로 하는 티타늄 광석)를 1,000℃의 고온에서 수소와 접촉시켜 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물을 다시 전기분해해 산소를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는데, 1톤의 산소를 만드는 데 약 70톤의 달 모래가 필요하다.
또 달의 모래에는 시멘트 재료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시멘트를 달에서도 구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달에서 만든 콘크리트는 달 기지 건설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달 표면의 극한적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튼튼한 달 기지 건설을 위해 시멘트는 최상의 재료이다.
달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우리 지구와 매우 친숙한 존재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큰 기온차에 먼지 투성이 위성이다.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인류의 발전은 도전으로부터 이뤄졌다. 2050년, 1000명의 지구사람들이 달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장면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임석우 인턴기자 rainstone@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