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순씨 저작권료 요구에 사진도 못 파는 '김광석 거리'
국내 유일한 '김광석 거리'가 대구에 있다. 최근 고 김광석의 딸 서연양이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대구 김광석 거리를 찾는 추모객들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대구 중구청에 따르면 9월(28일 기준) 김광석 거리를 방문한 시민은 12만4662명으로 지난달보다 2만명 넘게 늘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5만 명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하지만 김광석 거리를 찾는 시민들은 그의 생애를 제대로 살피기 힘들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통기타 동아리 활동을 하며 김광석을 좋아하게 됐다는 박모(36) 씨는 "김광석 노래 가사와 앨범 자켓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옛 추억을 어루만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만큼은 아닌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김광석 거리에는 김 씨와 관련된 벽화만 일부 설치돼 있고 그의 생애 활동 사진이나 자세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광석 길에 정작 김광석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지난 9월 16~17일 열린 김광석 거리 사진전도 마찬가지다.
김광석 얼굴이나 생전 활동을 담은 사진 자료는 찾을 수 없고 거리 풍경 사진만 즐비했다.
김광석길 문화마을 축제에서 나눠주는 기념품에도 엉뚱하게 고양이나 학생 그림이 새겨져 있을 뿐 김광석을 되짚기는 힘들다.
부인 서해순 씨가 김광석의 초상권 사용을 꺼리거나 저작권 사용료 지불을 요구하는 탓이다.
대봉문화마을협의회 관계자 A 씨는 "서 씨측이 한때는 김광석 거리 벽화도 문제 삼았다. 상점들이 김 씨 사진을 걸어놨다는 이유로 난리를 친 적도 있다"고 혀를 찼다.
또 서 씨는 관광객들에게 김광석 거리 기념품을 무료로 나눠주겠다는 문화마을측에 자신이 만든 기념품을 구매해서 배포하라고 요구했다.
A 씨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자체적으로 만들 수도 없고 서 씨측이 제작한 기념품 값은 너무 비싸 한동안 갈등을 겪었다. 서씨가 돈 욕심을 많이 내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이 거리에서 김광석의 생전 활동 사진과 유품을 만나볼 수 있고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공간은 '스토리하우스'가 유일하다.
'김광석 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스토리 하우스'는 지난 6월 대구 중구청이 예산을 투입해 개관했다. 중구청은 김광석씨의 유품 100점을 모아 5억6000여만원을 들여 지상 2층, 지하 1층(연면적 181㎡) 규모로 세웠다.
스토리 하우스는 김씨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김씨가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비롯해 악기와 악보, 필기구 등 유품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지난 주말에는 1000여명이 방문했다. 평소 주말 방문객의 6배 정도다. 관람객들은 스토리하우스에서 김광석 씨의 손때가 묻은 유품을 본 뒤, 포스트잇에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김광석스토리하우스 관계자는 "개관 후 부인이 한두 차례 더 이곳을 방문했지만 (의혹이 제기된 이후)최근 발길이 끊어졌다"고 말했다.
스토리하우스는 김씨의 부인 서모(52)씨가 대표로 있는 업체가 위탁받아 운영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김광석 길'과 스토리하우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관람료 등 저작권 수익료가 부인 서씨에게 간다는 말도 항간에 나돌고 있다.
대구 중구청 관계자는 "서씨가 2015년 4월쯤 한국음악실연자연협회에 '김광석 길' 일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저작권료에 대해 문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김광석 길은 지자체 자체 사업으로 조성한 곳으로 공적인 추모 공간이라서 저작권료를 주지 않는다. 스토리하우스 전시 유품을 부인 회사가 제공했으며 위탁운영 중인 것은 맞지만, 이와 관련해 유족 측에 전달하는 저작권료 등은 없다"고 해명했다.
스토리하우스는 기념품을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입장료도 받을 계획이다.
추모객들은 김광석 거리가 수익보다 추모에 방점을 둔 시민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김광석의 오랜 팬이라는 전모(24) 씨는 "온 마음을 다해 김광석을 추억할 수 있는 거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광석 부인 서해순 씨는 2007년부터 김광석 음악의 저작권료와 저작인접권료(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한사람에게 돌아가는 비용)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김광석의 노래를 활용한 뮤지컬에 대한 저작권 및 판권 등의 사용료도 받고 있다.
서 씨는 지난 2014년 8월 한글 ‘김광석’, 영문 ‘KIM KWANG SEOK’으로 의류·신발·모자·문구류·종이·교육업·연예오락업·스포츠 및 문화활동업·광고업 등에 상표권도 등록했다.
고 김광석의 자작곡과 미발표곡을 담은 뮤지컬 ‘디셈버’는 제작 당시 아내 서해순씨 회사 위드33과 계약을 체결하고 저작권료 등을 지불했다.
‘그 여름, 동물원’, ‘서른즈음에’, ‘그날들’ 3편은 김광석이 노래만 불렀을 뿐 모두 다른 아티스트들이 작사·작곡한 명곡들로 꾸며진 창작 뮤지컬이다.
뮤지컬 제작사 한 관계자는 “당시 고인인 김광석이 작사·작곡한 곡을 편곡해 활용하려면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김창기(그날들), 강승원(서른즈음에) 등이 만든 곡만 작품에 입혔다. 미리 창작진에게 허락을 받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신고한 뒤 해당 금액을 입금하면 저작권료가 전달되는 식”이라고 했다.
또 김광석의 삶을 다룬 스토리가 아닌 만큼 판권 등에 저촉되지 않는다. 다만 ‘그 여름, 동물원’ 같은 경우 고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의 실제 음악 인생 이야기를 담은 만큼 홍보 문구 사용에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그 여름, 동물원’ 뮤지컬 제작사에 따르면 김광석의 부인 서씨 측 변호사와 합의를 통해 2016년부터 극중 등장하는 고인의 이름을 3인칭 ‘그 녀석’으로 바꾸어 지칭하고 홍보 문구에는 ‘고 김광석’으로 명시하고 있다. 동물원의 멤버 이름은 그대로 사용 중이다.
뮤지컬 ‘디셈버’는 유일하게 김광석의 자작곡을 활용한 작품이다. 그의 자작곡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4곡 외에 미발표곡 ‘12월’을 편곡해 넘버로 썼다. 영화배급사 뉴(NEW)가 제작하고, 영화감독 장진이 연출하는 등 뮤지컬계 스타 김준수가 주인공으로 나서 당시 화제를 모았다.
제작사 뉴 측은 “고인의 부인 서씨의 회사 ‘위드33’과 공연과 저작권 계약을 따로 나눠 체결했다. 뮤지컬 관련해서는 김광석 초상권과 성명권에 대한 권한 획득과 그에 따른 로열티 제공 및 저작권(편곡 허락)에 대한 계약을 위드33과 체결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어 “음악 사용료 부분에 대해서는 또 따로 저작권협회 측에 신고해 협회 측에서 작사·작곡가에게 배분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또 다른 케이스다. 김광석이 부른 명곡 18곡과 창작곡 2곡을 담은 소극장 뮤지컬이다. 자작곡 타이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뮤지컬 제목에 차용했으나 따로 판권은 안낸다. 제작사 엘피스토리 관계자는 “작품의 넘버는 김광석의 자작곡이 아닌 명곡만을 편곡 않고 그대로 쓰기 때문에 저작권협회에 신고한 뒤 사용중”이라며 “다만 자작곡의 제목을 뮤지컬 타이틀로 사용하긴 하지만 상표 권한이 따로 없어 이에 따른 판권은 안낸다”고 했다.
김광석 뮤지컬 2편도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 ‘서른 즈음에’(10월 20~12월 2일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와 ‘그 여름, 동물원’(11월 7일~2018년 1월 7일 한전아트센터)이다.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의 음악만으로 오롯이 작품 하나를 꾸렸던 전작들과 달리 다양한 작곡가, 가수들의 노래들도 삽입했다. 성시경의 ‘처음’ ‘태양계’, 이적의 ‘나는 지금’, 자이언티의 ‘무중력’, 윤도현의 ‘오늘도 어제 같은 나는’ 등이다.
넘버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이름은 강승원이다. 그가 작사·작곡한 주옥같은 명곡들이 무대를 채운다. 팍팍한 삶을 견디는 중년 현식과 1997년 꿈 많은 청년 현식의 이야기를 담는다. ‘히든싱어’와 ‘팬텀싱어’를 만든 JTBC의 조승욱 PD가 연출봉을 잡았다.
‘그 여름, 동물원’은 1988년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 멤버들의 첫 만남부터 국내 최고 뮤지션으로 거듭나는 실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거리에서’, ‘널 사랑하겠어’, ‘서른 즈음에’ 등 여전히 지금도 사랑받는 김광석의 노래들이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했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영화 ‘김광석’이 개봉 4주째인 23일 전날 대비 두 배가량 증가한 3142명(영화진흥위원회)을 동원한 만큼 뮤지컬도 적지 않게 이슈 덕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다만 “극의 스토리 라인은 다르지만 비슷한 노래, 창법, 복고와 향수라는 감성을 다룬 김광석 뮤지컬만 5편에 이른다. 자칫 관객이 식상해하고 피곤할 수 있다. 극의 탄탄한 구성 등에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국가에서는 예술 그리고 소설, 책,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리고 사진 같은 저작물은 만든 사람이 저작권을 가지게 된다. 저작권을 가진 사람은 이 권리를 이용해 저작물의 이용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저작권자에게 묻지 않고 저작물을 이용한다면, 원칙적으로 그 사람은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저작권자는 이를 근거로 허락 없이 이용한 사람에 대하여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것이 법에 명시된 원칙이다.
서해순씨가 법에 명시된 저작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반론은 없다. 그러나 김광석은 80~90년대 사람들의 감성을 울렸던 대표적인 포크가수로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노래가 불려진다.
이렇게 많은 창작물의 인기를 얻는 창작물의 경우 '공정이용'(公正利用, fair use, 공정사용)이란 개념이 있다. 기본적으로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을 저작권자의 허가를 구하지 않고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저작권법상의 개념으로, 학문 연구나 평론에 이용되는 것이 그 예이다.
넓게는 저작권을 제한하는 법원칙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공정이용에 대해 저작권 침해 주장에 대한 방어 법리라는 소극적 시각과 저작물의 공정이용 영역은 이용자가 갖는 권리라는 적극적 시각으로 대립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요구가 많은 국가의 저작권법에 반영되어 창작물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작은 부분을 인용할 경우 저작권법 적용 대상에서 예외로 두고 있다.
이렇게 학문적으로 부분 이용될 경우 저작물을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저작권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경우 문제가 달라진다. 저작권을 가진 사람에 의해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김광석의 저작권 관련 부분은 상업적인 것이기 때문에 서해순씨가 만든 회사에서 모두 '관할'한다. 하지만 법을 넘은 국민들의 감성은 좀 더 가까이 김광석을 보고 느끼고 추모하고 싶어 한다.
김광석 자살 의혹과 딸 서연양 사건과는 별개로 이번 기회에 대중들이 좀 더 가까이에서 김광석을 호흡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광석 노래가 국민들에게 좀 더 많이 '공정이용' 됐으면 좋겠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