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총기사고 유가족에 1억원...구본무 LG회장의 조용한 선행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선행'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구 회장은 철원 총기사고로 순직한 이모(21) 상병 유가족에게 사재 1억원을 위로금으로 전달하기로 했다.
구 회장이 이사장인 LG복지재단은 국가와 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LG 의인상’을 수여해 왔다. 그러나 이 상병은 총기사고 피해자로 의인상 대상자엔 해당하지 않아 구 회장이 직접 사재를 털어 위로금을 전달하게 된 것이다.
이 상병은 지난달 26일 강원도 철원군 금학산에서 전투진지 공사 작업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다 근처 사격장에서 날아온 유탄에 맞아 숨졌다.
군 당국은 사고 직후 이 상병 사망 원인을 ‘도비탄(총에서 발사된 탄이 딱딱한 물체에 부딪혀 엉뚱한 각도로 튄 탄)’이라 발표했다. 사격장 내 소홀했던 안전관리 문제를 덮기 위해 엉뚱하게 튄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고 성급히 결론 내린 것이다.
그러나 계속된 의혹에 국방부 조사본부는 특별수사팀을 꾸려 사고 원인을 다시 조사했고, 그 결과 이 상병은 인근 사격장에서 직선거리로 날아온 유탄(조준을 빗나간 직격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격장 주변 나무에도 70여 개의 피탄흔이 발견돼 그동안 수많은 유탄이 이 상병 사망 지점 주위로 날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상병은 순직 처리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고, 병사를 인솔했던 소대장(소위)은 보통군사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 결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이 상병의 아버지 이모(50)씨는 “빗나간 탄환을 어느 병사가 쐈는지 밝히거나 처벌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며 “총을 쏜 병사가 큰 자책감과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사격장에 철저한 안전·통제 시스템을 갖춰 달라”고 당부했다.
구 회장은 “큰 슬픔 속에서도 사격훈련을 하던 병사가 가질 심적 타격과 군에 아들을 보낸 같은 부모 입장까지 헤아린 사려 깊은 뜻에 감동했다”며 “그분의 깊은 배려심과 의로운 마음을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위로금 전달 취지를 밝혔다.
구본무 LG 회장은 재벌 총수 중에서도 합리적이고 조용한 성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룹 색깔도 구 회장 스타일을 닮아 공격적이거나 직설적이지 않다. 무리하거나 방만하게 경영하지도 않는다. 삼성맨은 엘리트 의식이 강하고, 현대맨은 도전적이고 과감하다면, LG맨은 대체로 성실하고 합리적이며 배려심이 많다.
필자가 경제부 팀장 시절 재계 정보모임을 나가보면 그 색깔이 확연하게 드러날 때가 많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요즘 현대맨들은 정주영 명예회장 이후 사세가 위축돼 상당히 겸손한 측면이 있지만, 오래 근무한 사람들은 그룹의 옛 색깔이 남아 있어 화끈하고 적극적인 편이다.
삼성맨들 앞에서는 '말 조심'을 하는 편이다. 쉽게 친해지거나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반면 속으로는 최고기업이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엘리트 의식도 강한 편이다.
하지만 LG맨들은 가장 대하는 게 편하다. 상대를 배려하고 분위기를 잘 맞추고 융화하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LG 하면 '인화' 아닌가. 지금 말한 것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구본무 회장의 '선행'인데 이렇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것은, 엘지나 구 회장의 경영이념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밀알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특정 기업에 대한 광고는 절대 아니다. 말이 난 김에, LG의 '선행'을 더 소개해본다.
LG는 구본무 회장의 뜻을 반영해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수여하는 ‘LG 의인상’을 제정해 현재까지 53명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엘지(LG)복지재단은 지난 9월 강원도 강릉시 석란정 화재 진압 중 순직한 이영욱(59) 소방위와 이호현(27) 소방사에게 ‘엘지 의인상’을 수여하고, 유가족에게 5천만원씩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의인상 후보는 기사 검색 및 제보 등을 통해 진행되며 수상 결정은 의인상 심의위원회를 별도 운영해 심의 후 결정된다. 상금은 1000만~1억원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선행의 내용,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 정해진다.
이와 함께 구본무 회장은 지난 2015년 청년 일자리 창출 지원을 위한 청년희망펀드에 사재로 70억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에 LG 임원진이 30억 원을 더해 총 100억 원이 청년 구직자 취업 기회 확대를 위해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의인상 선정과 수상식은 조용히 진행돼 의인상을 선정, 수상했다는 단신성 보도자료가 전부다. 흔한 수상식 사진도 없고 떠들썩한 행사도 없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 뉴스는 언제나 잔잔한 화제를 몰고 왔다.
필자도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 기업이라면 단돈 10원이라도 '공익'을 위한 일이라면 생색을 내려고 한다. 안 그러면 몰라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홍보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LG가 그런 점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의인들을 조용하게 격려해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땅에 떨어진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가능성을 LG 의인상을 통해 엿보게 된다.
우리는 가진 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부에 대한 존경보다는 경멸과 의심으로 가득차 있다. 특혜와 편법으로 얼룩진 뉴스뿐이다. 이런 점 때문에 부자는 존경받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LG와 구본무 회장의 조용한 선행은 비뚤어진 부자에 대한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