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수능연기에 버린 책 찾으러 한밤중 교실 학원 찾은 학생들

2017-11-16     임석우


▲ 사진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으로 수능 연기 발표로 버렸던 수험서를 다시 찾고 있는 학생들 모습.



포항 지진으로 인한 초유의 수능 연기 사태에 수험생들의 혼란이 극에 달했다. 이날에 맞춰 페이스를 끌어올린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패닉 그 자체였다. 특히 일부 수험생들은 ‘지긋지긋한’ 수험서들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원 등에 전부 버렸다가 다시 되찾으러 가는 일대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15일 오후 8시 20분쯤 교육부가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오는 23일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한지 30여 분이 지나자 서울 학원가는 부랴부랴 되돌아온 학생들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빚어냈다.


학원 복도 한 켠에 잔뜩 쌓인 문제집들은 덩그러니 학생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집 더미를 헤집던 학생들은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 사태에 "당황스럽다"며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요약본을 만들면서 공부를 마친 책을 상자에 넣고 있었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었다. 이걸 다시 꺼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하다”고 했다. 다른 회원은 “일주일 전부터 수면량을 조금씩 늘리면서 몸 상태를 내일로 맞추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나만의 공부법에 따라 책을 이미 버렸다”는 주장도 있었다. 


육아 커뮤니티 사이트의 학부모들 반응도 비슷했다. 다만 공부법보다는 수험생 자녀에 대한 걱정, 일주일 더 늘어난 가정의 긴장감, 자녀와의 여가 계획 변경으로 인한 실망감이 더 많이 분출됐다. 한 회원은 “수험생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번 주말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항공권을 구입했다. 상심이 크다”고 말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수험생과 학부모만 혼란에 빠진 것은 아니다. 학원과 같은 교육기관, 수험생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했던 문화‧체육‧관광업계의 일정도 큰 변화가 생겼다.  


종로학원의 경우 전국의 원장 26명을 비상대기 체제로 전환했다. 당장 오는 17일 오후 2시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입시설명회를 취소했다. 이 설명회의 예약 인원만 1만명이었다. 프로축구 K리그의 일부 구단들, 에버렌드와 롯데월드와 같은 놀이공원도 수험생의 무료‧할인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벤트 기간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 박소은(19) 양은 "부모님이 바로 문자메시지로 '괜찮냐'는데 전국의 수험생 모두가 '멘탈'이 깨졌을 것"이라며 "이날만 보고 달려왔는데 참 허망하고 왜 공부를 했나 싶기까지 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학원가는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양천구 목동에서 '에스학원'을 운영하는 남재현 원장은 "수능은 부득이하게 연기됐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라며 "논술이나 특기자 전형 등에 대해 각 대학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혼선이 정리될 것 같다"며 정신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수험생들도 있었다.





이번 일주일을 새로운 기회로 삼으려 마음을 다진 유환희(20) 씨는 "수능이 끝나길 기다렸던 마음에 처음엔 동요됐다"면서도 "좀 더 생각해보니 일주일 동안 실력을 향상시키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수험생으로서 지진이 발생한 경북 포항시의 수험생들을 걱정하는 마음도 보였다.


노준형(19) 군은 "수능 준비도 다 끝냈고 책도 몇 개 버려서 첨엔 화도 났지만 포항 학생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며 "지금은 괜찮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노 군은 "남은 일주일은 자료들을 마저 풀고 새로운 자료를 사든지 하면서 보내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출제‧인쇄본부와 85개 시험지구에 총 356명의 경력을 배치해 오는 23일 수능시험일까지 철저한 경비 근무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석우 인턴기자 rainstone@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