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만명 넘게 피살...마약 흉악범죄로 골병드는 멕시코의 현실
내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중남미 멕시코는 경제적으로 그리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멕시코 경제는 세계 은행에 따르면 표면적으로 13번째로 크고 구매력 기준으로 11위에 올라 있다. 멕시코는 2002년 남아메리카 경제 위기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였다.
그러나 멕시코는 2008년 말 세계경제위기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가운데 하나였다.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을 낮추고 인구 소득을 증가시키는 등 전례가 없는 거시경제적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지역 인구 간 격차(북부/남주, 빈부)는 상당한 편이다.
멕시코는 특히 마약범죄로 악명이 높다. 다양한 물적 인적 자원에도 경제가 크게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약과 관련된 범죄다. 사흘이 멀다 하고 대형 흉악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멕시코 북부 지역에서는 마약범죄 조직에 의해 피살된 뒤 소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최소 3천구의 유골이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5일 엑셀시오르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인권단체인 '희생자를 위한 행동권리'(Vida)는 지난 2일 코아윌라 주 마타모로스 시에 있는 산 안토니오 델 알토 지역에서 집단 매장지를 발견했다.
이 단체는 마약범죄 조직의 처형 장소에 대한 익명의 제보를 토대로 수색을 벌여 유골을 찾아냈다. 발견된 유골은 강산성 물질에 용해된 후 불에 태워지고, 삽으로 으깨진 것으로 추정됐다. 면적이 100㎡ 정도인 유골 매장지 인근에서는 탄피를 비롯해 치아, 신발, 옷 등도 발견됐다.
사법당국은 코아윌라 주에서 세력이 강한 시날로아 카르텔이 경쟁 마약조직 로스 세타스와 피비린내 나는 영역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피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법당국은 희생자들의 신원 등을 확인하기 위해 정밀 감식을 벌이고 있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시신은 경유, 폐타이어, 목재 등과 함께 수 시간 동안 드럼통에서 소각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법당국의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희생자 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2015년 이후 40여 곳의 집단 비밀 매장지를 발견해 9만여 구의 유골을 찾아냈다.
그리고 지난 11월에는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머리 2개가 잘린 채로 발견돼 도시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밀레니오 TV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멕시코시티 중심가에 있는 소칼로 광장에서 8블록 떨어진 교차로 길가에서 절단된 머리 2개가 검은 비닐봉지 2개에 담긴 채로 발견됐다. 한인 교민이 의류나 잡화 등을 많이 판매하는 테피토에서 4블록 떨어진 곳이어서 한때 교민사회에 불안감이 퍼지기도 했다.
멕시코시티 검찰은 마약 범죄 조직 소행으로 보고 피해자 신원 파악에 나서는 등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현재까지 접수된 실종 신고는 없다”며 “피해자들이 언제 살해됐고, 다른 곳에서 피살된 뒤 이곳으로 옮겨졌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서는 마약 범죄 조직이 대중이나 경쟁조직에 공포감을 심을 목적으로 시신을 흉악하게 훼손하는 일이 잦다.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수도 한복판에서 잔인하게 훼손된 시신 일부가 발견된 건 드문 일이다. 현지언론은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마약 범죄 조직의 영향력이 약한 멕시코시티에서는 최근 마약 조직 세력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멕시코시티 남쪽 교외에 있는 빈민가인 틀아우악에서 해군 등이 마약 갱단 소탕작전을 벌이던 중 총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1,300명에 이르는 중무장 해군과 경찰이 총격 현장에 투입됐고 갱단 두목을 비롯한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멕시코에서 대형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자 멕시코의 대표적인 무법지대로 알려진 게레로주에서는 범죄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신이 넘쳐나 시신안치소가 폐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마약조직들의 폭력·살인 범죄가 심화하면서 이달 초에는 학교 100여 곳이 폐쇄되고 버스 운행이 중단되는 등 마을이 텅텅 비어가고 있다.
멕시코의 레포마신문 등은 최근 게레로주의 주도 칠판싱고의 주립 시신안치소 직원 60여 명이 파업에 들어감에 따라 시신안치소가 폐쇄됐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우리는 더 이상 넘치는 시신에서 나는 냄새를 참을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다”고 외쳤다.
이들은 하루에 시신안치소로 8∼10구의 시신이 들어오면서, 수용 규모(200구)를 훌쩍 넘은 약 600구의 시신이 안치소에 방치돼 있다고 주장했다. 주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필요한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며, 더 이상 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레로주는 멕시코의 32개 주 가운데 가장 많은 폭력·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멕시코의 이라크’로 불린다. 이날도 외진 동굴에서 23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게레로주에서 1858명의 살인사건 피해자가 발생해 전년 동기(1654명) 대비 12%나 증가했다.
멕시코는 약 10년 전부터 무장 군인을 투입해 갱단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범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게레로주는 아편·양귀비 등 주요 마약의 재배지가 많아 50여 개의 마약조직이 활동하고 있으며, 조직들 사이에 마약 재배 및 유통경로를 확보하기 위한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버스를 이용해 마약을 유통하려는 조직원들의 범죄로 버스 기사 10여 명이 잇따라 피살되면서 버스 운행이 전면 중단되고 안전을 우려한 학교 100여 곳이 휴교를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멕시코의 펠리페 칼데론 정부는 ‘마약 갱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멕시코는 지난 2006년 12월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2012년까지만 무려 5만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는 통계도 나온 적이 있다.
11년이 지난 지금 거대 카르텔 중 몇몇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세계 최악으로 평가되는 치안 불안은 여전하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에만 전국에서 2452명이 살해됐다. 1997년 이래 최대다. 올 1~5월 다섯 달 동안 1만1155명이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상당수가 마약범죄와 관련된 살해사건이었다. 옛 조직이 사라지면 새 조직이 세력을 불리면서 갱들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마약갱들의 민간인 납치·살해도 잦다. 해마다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약범죄와 관련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등 국가적인 난제 중 난제가 바로 마약이다. 멕시코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치안 청정국’이나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한 나라의 국가역량이 범죄에 따라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지, 멕시코는 수많은 희생자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임석우 인턴기자 rainstone@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