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 입막음 돈' 장석명 영장 또 기각...오민석 판사 적폐청산 걸림돌?

2018-02-03     성기노




이명박정부 시절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입막음을 위해 국가정보원 자금을 건네고 취업알선을 제안했다는 혐의를 받는 장석명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이 또 한 번 구속 위기를 면했다.


오민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일 오전 10시30분부터 장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열고 "피의자의 지위와 역할, 수사 진행경과 등에 비추어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3일 영장을 기각했다.


전일 장 전 비서관은 영장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입막음에 대해 윗선의 지시가 있었나"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과 허위 진술에 대해 말을 맞췄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검찰은 장 전 비서관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장물운반, 증거인멸 등 혐의를 적용해 영장을 청구했다. 장 전 비서관은 2011년 국정원 자금 5000만원을 류충렬 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을 통해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장 전 주무관은 당시 이명박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한 인물이다.


이 '5000만원'은 국정원에서 지난달 16일 구속된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전 검사장)에게 제공된 것으로 김 전 비서관에게서 장 전 비서관, 류 전 관리관을 거쳐 장 전 주무관에게로 순차적으로 전달된 정황이 포착됐다.


아울러 장 전 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을 위해 청와대에 취업알선을 제안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최근 전대천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과 채모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이사를 불러 조사한 바 있다. 


지난달 25일에도 검찰은 이같은 혐의를 적용해 장 전 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주요 혐의에 대한 소명정도, 피의자의 지위와 역할, 증거인멸 가능성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장 전 비서관의 증거인멸 정황을 추가해 새로 영장을 청구했다. 장 전 비서관이 류 전 관리관에게 '5000만원'의 출처에 대해 '장인에게서 받은 돈'이라고 허위로 진술할 것을 종용했고 최근에도 해외 체류 중인 류 전 관리관에게 메신저 등으로 '과거 진술을 유지하라'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내용 등이다. 하지만 이번에 또 다시 영장이 기각당해 검찰로서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됐다. 


한편 '프로 기각러'라는 네티즌들의 별칭을 듣고 있는 오민석 판사는 이번에도 검찰에 뼈아픈 영장기각의 고배를 마시게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1969년생으로 서울고,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 25기를 거쳐 1997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오 부장판사는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해 법원행정처 민사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두루 거치며 '대법관 코스'를 밟기도 했다. 2012년에는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수원지방법원을 거쳐 지난 2월 초 정기 인사 때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부임했다.


오 판사는 국정원과 공모해 관제시위에 나선 혐의를 받고 있는 추선희 전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구속영장을 지난해 10월 기각했다. 또 국정원의 댓글조작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퇴직자 모임 전·현직 간부들의 구속영장도 9월 기각했다. 


지난해 초 수원지법에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로 부임 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한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맡았다.


당시 오 판사는 “영장청구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의 정도와 그 법률적 평가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을 기각해 검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후 우 전 수석은 4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도 불구속됐으나, 지난해 12월 민간인 사찰 등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됐다. 


앞서 국정원 ‘민간인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양지회 소속 노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박모씨에게는 증거은닉 혐의로 구속영장을 각각 청구했으나 오 판사가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두 피의자 모두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특히 오민석 부장판사는 지난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조 전 장관은 올해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당시 오 판사는 "수수된 금품의 뇌물성 등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수사 및 별건 재판의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적폐청산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이 이번에 또 영장을 기각한 오민석 판사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이 장 전 비서관 신병확보에 또 한 번 실패하면서 '윗선' 개입을 규명하려는 검찰의 노력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장 전 비서관에게 돈을 건넸다는 이유로 같은 혐의로 이미 구속돼 있는 김진모 전 비서관은 '윗선'의 실체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전 비서관의 상관으로는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전 법무부 장관)과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자금의 최종 종착지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검찰로서는 김 전 비서관이 함구하고 있는 상태에서 장 전 비서관의 신병확보가 그만큼 절실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민석 판사의 영장기각으로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 책임규명으로 가는 중요한 루트를 상실한 셈이 됐다. 우병우 전 수석과 조윤선 전 장관 등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중요 고비 때마다 검찰은 오민석 판사에게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 그리고 이번 장석명 전 비서관 영장기각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향하는 검찰의 예봉을 꺾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검찰의 다음 한 수에 관심이 모아진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