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함 과시하려는 김여정 백두체로 본 남북 정치인 필적 비교해보니...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청와대를 찾아 방명록에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 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썼다.
그런데 이날 인터넷에선 방명록 글 내용보다 김여정의 필체가 화제가 됐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의 글씨처럼 가로획이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여정의 방명록 글씨를 보면 가로획의 기울기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가파르게 올라간다. 또 'ㅍ' 'ㅅ' 등 일부 단어 첫 글자나 초성에 해당하는 자음이 상대적으로 컸다.
이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청와대 방명록 필체와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김 위원장은 가로획을 수평 방향으로 또박또박 썼고 글자 크기도 균일하다. 한 필적 전문가는 "김여정 글씨체에선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과시 심리와 활달성이 엿보인다"고 했다.
김여정 필체의 이런 특징은 할아버지인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 오빠인 김정은 필체에서도 나타난다. 북한에선 김씨 3부자 필체를 '태양서체' '백두산 서체'라고 부르며 우상화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런 서체를 모방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노력했다고 한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에선 김씨 일가 글씨를 '만경대 가문의 명필체'라 부른다"며 "김여정도 어릴 때부터 선대의 필체를 모방하려 연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필체도 비교를 해 보면 흥미롭다. 특히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들의 필체는 힘이 있고 유려하고 독특한 필체로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필체가 사람의 성향을 드러낼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서양에서는 학문적 뿌리가 깊은 ‘필적학’(筆跡學)에는 ‘글씨체는 뇌의 지문이다’라는 금언까지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글씨체를 잘 뜯어보면 성격과 성향, 현재 심리 상태 등을 알 수 있다’고 믿는 학문이 필적학이다.
중국 사상가 공자는 물론 로마 제국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도 한결같이 “필적을 보면 성격이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첫 필적학자인 구본진(52)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 등을 거친, 한때 ‘조폭 잡는 검사’였다. 강력범죄 피의자의 자술서에서 공통적 필체 특징을 확인한 뒤 필적 분석에 매료됐다.
구 변호사는 “필적 분석은 운세를 보는 것처럼 미신적 행위가 아니다”라면서 “사람의 생김새와 표정, 걸음걸이, 말투를 보면 정체성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필체 분석도 과학적 원리에 따라 각 인물의 성격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분석은 글씨의 크기와 각진 정도, 음절 사이의 간격과 행간, 써내려 간 속도, 규칙성 등을 토대로 진행된다고 한다. 구 변호사는 “살면서 수없이 반복했을 사인(서명)에 특히 글쓴이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정치인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과시욕이 강하고 기가 세며 낙천적인 성격이 많다고 한다. 구 변호사에 따르면 이들은 서명의 첫 음절 초성을 큼지막하게 쓰는 경우가 많은데 필적학에는 ‘스타 기질’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한다. 연예인 중에도 비슷한 서명체를 가진 이가 많다고 한다.
이런 필적학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일찍부터 김씨 왕조 권력자들이 ‘제왕학’을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글씨체에도 김씨 왕조만이 쓸 수 있는 그들의 특권의식이 배 있다.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듯 통일은 남북 정치인 사이의 필적만큼이나 깊은 간극이 놓여 있는 것 같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