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성 전 대법관, 이재용 변호인단 합류...버젓이 ‘전관예우 신청'에 비판 쏟아져

2018-03-03     성기노




차한성 전 대법관(64)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의 뇌물 혐의 사건 상고심에서 삼성 측 변호인단에 합류해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재임 중인 대법관의 상당수가 차 전 대법관과 경력이 겹치는 상황이어서 ‘전관예우’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차 전 대법관은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 상고심에서 삼성 측 변호인단에 합류해 최근 대법원에 선임계를 제출했다. 차 전 대법관은 이 부회장을 변호해온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이다. 1심과 항소심 때는 나서지 않았지만, 상고심에서는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 변호인단 측은 “대법원에서는 (서면을) 어떻게 설득력 있고 눈에 띄게 쓰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차 전 대법관이 변호인단에) 합류해 지도해주는 것이 맞겠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차 전 대법관은 박근혜 정부 때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문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맡을 경우 전관예우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대형 법조비리 사건인 ‘정운호 게이트’가 터진 2016년, 전관예우를 근절하겠다면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선임된 상고심 사건에서는 같이 근무했던 대법관을 주심에서 배제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재임 중인 대법관들 가운데 상당수가 차 전 대법관과 경력이 겹친다.





김소영·김창석·김신·고영한 등 4명의 대법관은 차 전 대법관과 대법관 임기가 일부 겹치고, 권순일 대법관은 차 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이던 시절 법원행정처의 기획조정실장이었다. 조희대 대법관은 차 전 대법관과 같은 서울대 법대·경북고 출신이다.


현재 이 부회장 사건은 대법원 제2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제2부를 구성하는 대법관 4명 중 3명(고영한·김소영·권순일 대법관)이 여기에 해당된다. 2부 소속 4명의 대법관 중 3명이 차 변호사와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셈이다. 대법원은 조만간 배당을 확정하고 주심 대법관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사건의 쟁점이 많은 만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전원합의체 재판에 참여할 김창석, 김신 대법관도 차 변호사와 함께 대법관을 지냈다.


차 전 대법관은 2015년 3월 퇴임 후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개업신고를 할 때부터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면서 3000만~5000만원에 달하는 이른바 ‘도장값’을 받는 등의 폐해를 없애려면, 대법관은 퇴임 후 개업을 하기보다 공익활동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신고서를 반려했다.


차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 논란이 계속되자 “공익관련 업무에만 전념하겠다는 취지를 밝혔음에도 왜 (변호사로의) 전직이 문제가 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태평양이 만든 공익 재단법인 동천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이번에 이 부회장 사건을 맡으면서 3년 만에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것이다.



▲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대법관들과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부회장 사건은 ▲ 이른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 유무와 ▲ 삼성이 최순실 씨 측에 지원한 자금이 '재산국외도피죄'에 해당하는지 ▲ 뇌물공여의 원인인 '삼성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이 실제 존재했는지 등이 주요 쟁점 사안이다.


차 전 대법관은 최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시장직이 상실된 권선택 대전시장의 재상고심에서도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창우 전 변협 회장은 “대법관 출신이 개업해서 돈을 버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후임 대법관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좋지 않은 선례”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대법원 사건을 영구히 수임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도 논의되고 있다.


2014년 3월 대법관을 퇴임한 차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차장과 법원행정처장 등 법원 내 요직을 거친 '정통 엘리트 법관'이다. 퇴임 후 태평양에 자리를 잡았지만, 고위직 판사의 '로펌 취업제한 3년' 규정에 따라 공익변론활동을 수행하는 태평양 산하 공익법인 '동천'에서 활동했다. 3년이 지난 지난해 3월부터는 사건을 수임해 변론하고 있다.


차 변호사의 변호인단 합류는 상고심에서 치열한 법리논쟁이 예상되는 만큼 대법관 출신을 전면에 내세워 고비를 넘어 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차 전 대법관의 이번 이재용 부회장 사건 수임에 대해 여론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법조계의 오랜 기득권인 전관예우는 차치하고라도, 삼성 또한 논란이 될 것을 뻔히 예상했으면서도 전직 대법관을 대범하게 변호인단에 합류시켰다. 여론의 비난은 잠시 피하면 될 뿐이지만 재판 기록은 영원하기 때문에 잠시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사실 법관의 최고위직인 대법관은 그 임명 자체로 영광스러운 것이다. 일부 대법관들은 퇴임 뒤 변론 수임을 맡지 않고 끝까지 청렴한 생활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관행은 소수 법관들에만 해당될 뿐, 여전히 퇴임 뒤 거액의 수임료를 받으면서 변론활동을 한다. 대법관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네트워크가 형성됐기 때문에 어떤 사건을 맡는다고 해도 패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대법관은 그 자체로 희소성이 있는 '직업''이다. 그래서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법률적으로만 볼 때 큰 권력이 나온다. 대법원에 올라가는 사건을 ‘상고 사건’이라고 한다.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상고 사건은 3만 6천여 건에 이르렀다. 대법관 수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사건 수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은 사건 처리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불속행 기각이라는 편법을 쓰고 있다.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이란 말은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 중에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은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심리불속행 결정이 날 경우 선고 없이 간단한 기각 사유를 적은 판결문만 당사자에게 송달된다.


당사자들은 많은 돈을 들여 상고를 하고도, 자칫 심리도 못 받고 기각을 당한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적어도 심리불속행 기각을 당하지 않기 위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한다. 당사자들은 불공정한 재판을 당할까 두려워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길 때 대법관 출신을 반드시 함께 선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이런 두려움과 전관예우를 믿는 사람들 때문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수요는 매우 크다. 그런데 새로 나오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1년에 2명 정도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엄청나게 적기 때문에, 수임료는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그 자체로 '권력'이라는 얘기다. 바로 이 권력에 삼성의 자금이 결탁한다면 어떤 법리논쟁도 그 암묵적 카르텔 속에서 무너질 수 있다.


대법관 출신들의 변호사 개업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의는 대법관 출신들이 변호사 개업을 할 때마다 논란이 되어온 문제다. 특히 최근 몇년 동안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문제는 법조계의 큰 이슈 중 하나였다. 2015년 봄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 협회장이 문제의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청을 반려하고, 국회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포기각서를 받아달라고 국회에 요청하면서 논의는 촉발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대한변호사협회는 신영철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서를 반려하여 논쟁에 더욱 불을 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과 김재형, 박상옥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물론 개업포기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는 변호사 개업을 막을 수는 없다. 개인의 인격에 맡겨야 할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차 전 대법관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적폐청산의 한 가운데에 있는 이재용 부회장 사건의 상고심을 버젓이 맡고 나선 것이다.





이는 전관예우라는 비난에 앞서, 온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만한 사안임에도 개인의 선택문제라며 사건 수임을 강행한, 전직 대법관으로서는 부끄러운 행위다. 또한 얼마나 국민들을 우습게 보면 논란이 뻔히 보임에도 이재용 변호를 맡겠다고 나선 것인지, 그 뻔뻔함과 대범함이 도를 넘었다. 


아직도 법조계는 사시출신의 주류가 그들만의 강한 카르텔을 형성해 권력을 나눠먹고 있다. 여기에 재계의 금권이 개입해 그 카르텔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 차한성 전 대법관의 삼성 이재용 부회장 사건 상고심 수임은 촛불의 국민적 열망이 한 개인의 영달과 사욕에 의해 꺼져버린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로 기록될 것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