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외신에 첫 해명 “나 자신이나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 한 적 없다”

2018-03-04     성기노




상습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고은 시인(85)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계속 집필을 할 것”이라는 내용의 첫 공식입장을 밝혔다. 고 시인의 해명은 한국 언론이 아닌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에서 고은 시인의 출판을 맡고 있는 시 전문 출판사 블러닥스(Bloodaxe Books)의 닐 아슬리(Neil Astley) 편집자로부터 전달받은 고은 시인의 성명(statement) 내용을 지난 2일 소개했다.



고 시인은 “최근 불거진 (성추행) 혐의에 내 이름이 포함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나의 과거 행실이 야기했을지 모를 의도치 않은 상처들에 대해 이미 사과의 뜻을 표한 바 있지만 일부 여성들이 나에 대해 제기한 습관적 성폭력 의혹에 대해선 단호히 부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선 시간이 흘러 논란이 수그러들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만 관련 사실과 맥락을 접하기 힘든 나의 해외 독자들을 위해 확실히 밝힌다”면서 “나는 내 자신이나 아내에게 부끄러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명예를 지키며 앞으로도 계속 집필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시인이 한국 언론이 아닌 외국 언론을 통해 첫 입장을 밝힌 건 단골 노벨상 후보로서 해외 여론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슬리는 가디언에 “고 시인이 종양 치료를 위해 지난 한 달 간 입원해 있었고 이제 회복 중이지만 수술 여파와 최근의 사회적 비난으로 육체가 약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까지 한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여전히 한 사람의 문제 제기에 기반해있고,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건 입증되지 않은 다른 고발자들의 진술 뿐”이라며 “성추문 스캔들로 인한 그의 추락은 부분적으로 그가 한국 사회에서 누린 명사로서의 지위와 대중적 찬사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슬리는 또 “비록 한국에서는 지워져가고 있지만, 블러닥스 출판사는 여전히 고 시인의 문학적 유산을 지지하며 근거없이 주장된 개인적 혐의에 의해 그 유산이 부정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시인은 앞서 2012년 시집 <1인칭은 슬프다>를 블러닥스 출판사에서 낸 바 있다.



고 시인이 국내가 아니라 외국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여론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대한 객관적 검증은 차치하고라도, 그로 인해 문단 전체가 성추행 논란으로 쑥대밭이 되고 있다면 문단의 원로로서 책임 있는 사과를 먼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 언론을 통해 '무죄'를 주장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은, 국내의 상황을 소상히 알지 못하는 외국 독자들만은 붙잡아보자는 얄팍한 심산이다. 게다가 노벨문학상을 의식해 외국언론의 힘을 빌리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신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했다면, 대중앞에 떳떳하게 나타나 그 기행의 결백함을 당당하게 밝히는 게 순서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