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 등장...안희정 기자회견에서 무슨 말 할까
안희정(53) 전 충남지사 성폭행 사건이 정국의 이슈 블랙홀이 되고 있다.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 결과를 설명하러 미국으로 떠난 중대한 뉴스가 있었지만 안희정 성폭행에 묻히는 분위기다. 그만큼 안희정 변수는 현 정국의 최대 사안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은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다. 정무비서 김지은씨 외에 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가 나오면서 안희정 사건은 최근 몇 년 사이 최악의 정치 스캔들로 비화되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산불이 크게 났기 때문에 일단 다 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지금은 어떤 전략도 통할 수 없다.
한때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국민들에게 온갖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며 정국을 주도했던, '믿었던' 인사였다는 점에서 국민의 분노는 일단 분출될 대로 분출돼야만 현 정국이 정리될 수 있다. 수행비서 김지은씨와의 관계 정도는 '그럴 수도 있다'는 동정론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지난해 1월 한창 대선 정국이 급박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싱크탱크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안희정 전 지사는 악의적인 범죄성향을 가진 '상습법'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단 두 번째 피해자의 사건 전말을 보자.
성폭행당했다고 7일 추가 폭로한 피해자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직원이었다. 피해자는 "1년 넘게 수차례의 성폭행과 성추행에 시달렸다"고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 측에 밝혔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안 전 지사가 2008년 만든 싱크탱크 조직이다. 피해 여성은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안 전 지사와 자주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성협 소속 변호사와 처음 피해 상담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1월 18일 안 전 지사가 여의도의 한 호텔로 와달라고 했다"면서 "호텔방에 들어서니 안 전 지사가 성폭행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노원구청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초청 강연회가 있던 날이었다. 안 전 지사에 대한 지지율이 높을 때였다.
안 전 지사의 성추행과 성폭행은 2015년 시작됐다고 한다. 장소는 주차장·식당·공원·종교시설·호텔 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2015년 10월에 2차례, 2016년 5월과 7월 등 총 4차례 신체 부위를 만지는 성추행이 있었다고 했다. 또 2016년 8월과 12월, 작년 1월까지 모두 3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 전 지사는 맥주를 사 오라고 하거나, 자신의 지위가 버겁다는 하소연을 하며 성폭력을 저질렀다"며 "비슷한 상황에서 당한 김지은씨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아 고소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가 절대적인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와달라는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 안 전 지사 성폭행을 주장한 김지은씨와 연락하면서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씨처럼 본인을 공개하지는 않고 피해 사실만 폭로했다.
검찰은 이틀 전 폭로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혐의를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 서울 서부지검은 "피해자인 김지은씨의 의사와 관할, 신속한 수사의 필요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경찰에 사건을 넘기지 않고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한 안 전 지사가 서울에 출장왔을 때 성폭행 장소로 사용된 서울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안 전 지사는 이러는 사이에 자신의 연구소 짐을 새벽에 몰래 빼내가는 등 '증거인멸' 의혹을 받고 있다. 그동안 바른생활맨으로 반듯한 이미지였던 안 전 지사는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참모들이 사건 직후 모두 잠적하고, 본인도 4일 동안 그 어떤 행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여 국민들과 충남도민들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도지사로서의 최소한의 도정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신형철 전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 "(우리의 대응으로) 김씨에게 2차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며 "한 식구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까지 가게 될 텐데 변호사 선임을 안 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는 안 전 지사의 사과문과 관련해선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올린 글"이라고 했다.
안 전 지사는 8일 오후 3시 충남도청 브리핑룸에 직접 나와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 전 실장은 이날 언론과 통화에서 "변호인 2~3명 정도를 선임할 계획"이라며 "안 전 지사가 국민·도민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피해자가 나오며 실제 기자회견을 할지는 불확실하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이 약속한 대로 기자회견을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 앞에 그동안의 자신의 행적과 죄를 최대한 소상하게 밝히고 솔직하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것은 안 전 지사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한때 그를 지지하며 올바른 사회를 꿈꾸었던 국민들의 명예를 위한 것이다.
안 전 지사야 도백자리 물러나서 죗값을 치른 뒤 살아갈 수 있겠지만, 국민들이 그에게 보냈던 신뢰와 무너진 배신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해줄 수 없다. 정치는 신뢰와 책임의 반석위에 서야 한다. 안 전 지사가 '노무현'을 팔아서 여기까지 왔다면 그의 정치스승을 위해서라도 마지막 신의을 지켜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정치하지 마라'고 했던 말이, 기자회견을 몇 시간 앞둔 지금 비수가 되어 안희정의 가슴에 꽂히고 있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8일 오후 1시 측근인 신형철 전 비서실장을 통해 “3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잠적 나흘 만에 오후 3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불과 2시간 앞두고서다.
안 전 지사는 “검찰에 출석하기 전에 국민 여러분, 충남도민 여러분 앞에서 머리 숙여 사죄드리고자 했다”며 “모든 분들이 신속한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검찰에 출석하여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 앞에 속죄드리는 우선적 의무라는 판단에 따라 기자회견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늦었지만 안 지사가 도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길 바랐다”며 “8년간 그를 도운 4700여 명의 공직자와 210만 도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희정은 끝까지 비겁한 길을 선택했다. 이 문제는 검찰에 출석하는 법리적인 사안 이전에 그를 지지해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를 표한 사과가 먼저였다. 그가 저지른 파렴치한 성폭행 사건만큼이나 그 뒤처리도 지저분하게 끝날 전망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