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못 간 길 트럼프가 간다?...“5월 안에 김정은 만나겠다”
한국시각으로 2018년 3월 9일.
정의용 안보실장 일행이 백악관을 방문한 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실에 깜짝 방문하더니 한국 국가안보실장이 곧 중대한 발표를 할 거니까 기대하라고 말했다. 마치 백악관 공보실 직원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온 정의용 안보 실장의 발표.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안에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장소와 날짜는 추후 정해지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라는 걸 확인했다.
불과 몇 달 전 김정은이 핵 버튼으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하자 내 책상위에 있는 핵 버튼이 더 크다며 반박했던 트럼프. 늙다리 미치광이의 체제 위협을 방관할 수 없다며 직격탄을 쏘아대던 북한 김정은에게 로켓맨 운운하며 조롱하던 미국 트럼프.
두 사람의 말 폭탄이 첫 만남 성사로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난다면 북미간 최초의 정상회담이다. 한반도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말 그대로 게임 체인저인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이 순탄하게 진행될까?
① 군복 입은 조명록과 사진 찍은 클린턴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해빙 무드가 무르익었던 2000년 10월 초순.
북한 군복을 입은 노병이 미국 워싱턴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던 군인 인 조명록 차수. 조 차수는 군복 차림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북한이 적으로 규정한 나라의 대통령 빌 클린턴과 만난다. 군복 입은 조명록과 양복 차림의 클린턴이 나란히 의자에 앉은 모습이 전 세계 언론을 강타했다.
사진 만큼이나 북-미간 합의도 강렬했다. 10월 9∼12일까지 조명록 차수의 미국 방문에서는 상상 초월의 합의문이 도출된다. 적대관계 종식, 평화 체제 수립, 경제교류 협력, 미사일 문제 해결 등을 골자로 한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채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합의가 충격적인 건 클린턴 미 대통령이 연내에 방북하기로 한 사실이 포함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사전 답사하기로 한다. 10월 하순 평양을 찾은 올브라이트는 유치원도 방문하고, 아리랑 공연도 관람하면서, 북한과 미사일 발사 유예와 평화 정착 등 클린턴이 방북하면 논의해 마무리 할 내용들을 사전에 조율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상황이 급변한다.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아닌 공화당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미국 내 정치 지형이 바뀐 것이다.
방북을 앞둔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말이라는 부담감에 공화당이 다수인 미 의회의 반대 목소리, 부시 당선인 측근들의 평양 방문에 대한 부정적 입장 등이 겹치면서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12월 28일 시간부족 등을 이유로 북한 방문 계획을 취소한다.
한반도 운명이 결정적 순간에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게 된 것이다.
②클린턴이 못 간 길 트럼프는 간다?
당시 클린턴은 임기 말이었지만 트럼프는 이제 임기 2년차에 접어든 대통령이다. 비록 이런 저런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직은 힘 있는 현직 대통령이다. 이런 상황은 트럼프가 의지를 갖고 김정은과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하지만 북한 측 변수는 더 커져 있다. 2000년 당시 북한은 핵 개발 이전이었고, 미사일 개발 수준도 지금과 비교하면 미미하다. 하지만 2018년 지금 북한은 수 차례의 핵 실험을 거쳐 핵능력을 상당 수준으로 고도화 시켜 놓았고, 미사일도 ICBM급으로까지 진전시켜 놓은 상태이다. 때문에 비핵화 대 북미 수교 정상화를 두고 북-미간의 힘겨루기가 18년 전보다는 휠씬 힘들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트럼프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핵동결이 아닌 비핵화를 언급했고, 추가도발을 안한다고 한 건 매우 큰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제재를 계속할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김정은의 전격 제안과 트럼프의 깜짝 화답으로 성사된 북미 정상회담.
하지만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한반도 상황을 비유한 고사 성어에는 많은 내용이 함축돼 있다.
'빙동삼척 비일일지한'(氷凍三尺 非一日之寒)
얼음이 석 자나 얼어 있지만 이것은 하루 사이의 추위에 다 언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보이지 않는 노력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터널의 끝에 서광이 비치고 있지만 앞길은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