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머리 손질해 줄 이발사 어디 없소?"...정부청사 이발소 운영권 지원 전무
"국무총리, 장ㆍ차관들의 머리를 손질해 줄 이발사 어디 없소?"
행정안전부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구내 이발소의 운영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이발소'와 '미용실'의 오랜 전쟁 끝에 이발소가 완패한 까닭이다.
15일 행안부 정부청사관리본부에 따르면, 정부서울청사 지하 1층 소재 구내 이발소가 지난 7월 이후 문을 닫았다. 10여년간 이발관을 운영해 온 A씨가 지병인 췌장암이 악화돼 도저히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다며 자진 철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뒤를 이을 이발소 운영 업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서울청사관리소는 7월 이후 2차례나 위탁 운영자 모집에 나섰지만 단 1명도 신청하지 않았다. 지난 6일부터 16일까지 3차 모집에 나섰지만 15일 현재까지도 신청자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청 자격이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이발사 자격 취득 후 5년 이상 경력만 있으면 누구나 접수할 수 있다.
서류 전형을 거쳐 평가위원회의 제안서 평가만 통과하면 된다. 이발관 운영에 들어가는 기본 시설 설치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별도의 임대료도 내지 않는다. 공과금, 인건비, 기타 소모품 비용 등만 부담하면 된다. 최초 위탁 운영 기관은 3년이지만,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한때 이 곳을 운영하기 위해 난다 긴다하는 이발사들이 줄을 섰던 적도 있다.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하는 청와대 구내이발소에서 일하면 '1호 이발사', 정부서울청사 구내이발관에서 일하면 '2호 이발사'라는 명예를 얻었다. 총리 및 장ㆍ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2200여명이 상주하는 등 이발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고정 수입이 보장된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호시절도 지난 지 오래다. 사회 전체로 봐도 가위와 칼로 스포츠 머리 등 짧은 스타일을 주로 자르고 면도를 해주는 이발소보다는 1980년대 이후 미용실의 시대가 됐다. 긴 머리ㆍ염색ㆍ파마는 물론 손ㆍ발톱 손질 등 다양한 치장을 해주는 미용실이 사회적 대세가 되면서 이발사들의 자리가 사라져갔다.
실제 국세청 통계를 보면 1980년대 초 3만개에 달했던 이발소 사업자 숫자는 2017년 2월 현재 1만2200명 가량으로 줄었다. 30여년새 3분의1로 축소된 것이다. 반면 미용실 사업자 수는 2만여명에서 9만4000여명으로 5배 가량 대폭 늘어났다. 이에 대해 전국이용사협회중앙회 측은 "업계의 사정에 대해 언론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특히 정부서울청사의 경우 2014년 여성가족부가 입주한 후 미용실이 신설되면서 이발소가 치명타를 입었다. 이발소보단 미용실에 익숙한 40대 이하 젊은 남성들이 미용실로 몰려 갔기 때문이다. 정부서울청사 한 공무원은 "50대 이상 나이 든 선배 공무원들이나 면도를 원하는 사람들만 이발소를 찾았다"며 "이발소는 손님이 없을 때가 많았고, 미용실에는 한가할 때가 없었다"고 전했다.
행안부는 이번 3차 공고에서 마저도 신청자가 없을 경우 이발소를 폐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발소 입주를 원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아 꾸준히 문의 전화가 온다"며 "관련 규정에 따라 임대료를 받지 않는 것 외에 인센티브를 더 줄 수는 없어 계속 신청자가 없을 경우 문을 닫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발소도 세월의 흐름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이 인터뷰를 거절할 만큼 상황은 열악하다. 남자들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됐다. 총리나 장.차관도 미용실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