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정상회담 ④] 백두산 천지에 선 남북 정상…‘낮은 자세로’

2018-09-25     성기노




① 한반도 최정상에 선 두 정상


2018년 9월 20일 아침 9시 33분 


남북 정상이 백두산 장군봉에서 두 손을 맞잡았다. 수정같이 맑은 공기 속에 하늘과 땅(天地)이 빛났고 백두산 천지(天池)도 빛을 내뿜었다. 


장엄한 산세에 풍부한 자원으로 일찍이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인 백두산. 


‘아득한 옛날 환웅(桓雄)이 인간세계에 내려가고자 하자, 하느님이 태백(太伯) 곧 백두산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으로 여기시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내려가서 다스리게 한 곳, 환웅께서는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박달나무 아래에 내리시어 그곳을 신시(神市)라 하시니…’ (삼국유사) 


‘산줄기가 요동 들판을 가로지르며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이 산은 조선 산맥의 한아비라,…그 꼭대기에 못이 있으니 둘레가 800리로서 남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강이 된다. 백두산은 분수령 남북으로 길게 뻗쳐 연지봉·소백산·설한등령·철령 등에 걸쳐 있거니와 한 가닥이 동남으로 내달으며 치솟아 도봉 삼각산을 이루고 그 사이를 한강이 흐르고 있다.’(김정호 대동여지도) 


이렇듯 개국의 터전으로 숭배되어 왔던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과 천지. 


이곳에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말했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모습을 담그자”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천지가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손이라도 담가보고 싶다”며 직접 천지로 내려가 준비해 간 생수병에 천지의 물을 담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대표단들도 대통령 모시고 사진 찍으라며 “제가 찍어드리면 어떻습니까?”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평양정상회담의 화룡점정 백두산 방문.


사상 최초인 남북 정상의 백두산 회동에 대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삼천리 강토를 한 지맥으로 안고 거연히 솟아 빛나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이 반만년 민족사에 특기할 격동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썼다. 천지를 다 담을 것 같은 격한 반응을 쏟아내는 북한 언론뿐 아니라 세계 언론들도 남북 정상의 백두산 회동을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로 조명했다. 남북 정상이 백두산에서 두 손을 맞잡고 번쩍 드는 꿈같은 모습이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영상과 어우러졌기에 더 극적이었다. 


② ‘낮은 자세, 솔직한 화법’ 파장은?





백두산 천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함께 오른 남북 정상, 하지만 그들의 낮은 태도와 솔직한 화법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순안 공항 도착 직후 환영 나온 평양 시민들을 향해 90도 폴더식 인사를 선보였고 북한 주민들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백두산 방문을 위해 찾은 삼지연 공항에서는 북한 주민 수십 명과 일일이 손을 잡고 눈을 맞췄다. 북한 주민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탈북자 김자영씨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대통령이라고 하면 다 우러러야 할 대상, 신처럼 모셔야 될 사람으로 생각하는 데 문 대통령이 인사하는 것을 보면 북한 주민들이 너무 놀랄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90도 인사를 하는 것은 아주 깜짝 놀랄 일”이라며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 새로운 인상을 심어줬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우리한테 인사를 하는데 세상에 대통령이 어떻게 우리한테 인사를 다 이렇게 하시지? 웬일이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솔직 화법도 화제였다.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로 안내한 김정은 위원장 내외. 김 위원장은 누추한 곳에 모셨다며 겸양의 자세를 보였다.


“대통령께서는 세상 많은 나라들을 돌아보셨는데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 숙소라는 것이 초라합니다. … 지난번 5월에 판문점 우리 측 지역에 오실 때는 장소와 환경이 그래서 제대로 된 영접을 해 드리지 못하고 식사 한 끼도 대접해 드리지 못해서 늘 가슴에 걸리고 그래서 오늘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오늘 이렇게 오시니까 우리 수준은 낮아도 최대 성의를 다해서 성의, 마음을 보인 숙소이고 일정이고 하니까, 우리 마음으로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까지도 열렬히 환영해 주니 가슴이 벅찼다며 최고의 의전이었다고 화답했다.


“평양 시민들이 열렬하게 환영해 주신 그 모습들을 우리 남쪽 국민들이 보게 된다면 아마 우리 남쪽 국민들도 굉장히 뿌듯해하고 감격해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회담에 아주 풍성한 결실이 있겠구나,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오늘 아주 최고의 환영과 최고의 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4월 27일 판문점 회담 때도 김 위원장은 ‘자신들의 교통이 불비해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남측의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화법은 북한의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남측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한 북한 경제를 이제는 발전시켜야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북한 매체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평화번영의 새 시대에 뚜렷한 자욱을 아로새긴 민족사의 역사적 사변"이라며 또 다시 평화번영 구호를 들고 나왔다.


더 빠른 속도로 더 큰 성과를 바라는 북한 주민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김정은 위원장.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로 이어졌으니 이제는 풍성한 결실을 맺자는 문재인 대통령. 


남북의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는 해법은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의 말 속에 담겨 있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게 폐기할 때까지 제재는 해제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긍정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무한하고 그런 기회를 얻게 됐다. 

비핵화를 이행하면 가능하다.”


*이 글 작성에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두산’ 항목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27237&cid=46617&categoryId=46617 (검색일 2018.9.22)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