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선거의 여왕' 시대는 갔나?
한때 ‘선거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박근혜 대통령. 4.13 총선을 앞두고 드디어 그 신화가 깨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선거 때마다 유세 지원 초청 1순위였고, 박 대통령의 ‘얼굴’은 후보들의 홍보 포스터 단골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번 4.13 총선에서는 박 대통령의 ‘얼굴’과 이름이 사라졌다.
수도권의 경우 박 대통령의 사진과 이름이 들어간 공보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장기 경기 침체와 일방주의 리더십 등의 논란으로 “박근혜 마케팅은 서울에선 안 먹힌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서울 지역 새누리당 후보 47명 가운데 박 대통령의 이름을 제목으로 뽑거나 사진을 전면에 배치한 선거 공보물은 단 한건도 없다고 한다. 부산 지역 후보 18명 중 공보물에 박 대통령을 언급한 후보는 단 3명뿐이었다. ‘박.근.혜’ 3글자로 표를 끌어오는 방식은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대형 현수막에서도 박 대통령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본거진인 부산에서도 대형 플래카드에 박 대통령의 이름과 사진은 거의 없다. 대구 수성갑 김문수 후보 측도 고심 끝에 현수막에서 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청와대도 조급한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선거 개입 논란을 무릅쓰고 지난 8일 충북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했다. 더민주 김성수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이미 두 차례 지방 방문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선거운동이 가장 치열한 때 충북에 방문하는 것은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통령은 공정한 선거관리와 선거중립의 의무를 지고 있다. 선거개입 논란은 대한민국을 위해 좋지 않다”고 공격했다.
박근혜의 힘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선거를 5일 앞둔 현재의 분위기는 새누리당이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과 일정한 선을 그으려 한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는 5년 단임 대통령의 임기 후반에 치러지는 선거 특색일 수도 있다. 갈수록 실정이 부각되는 대통령의 권력 사이클 상 정치권의 본능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박근혜의 힘은 그가 약자의 위치에 있을 때나 강력하게 발휘되는 기제일 뿐 그가 최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미 그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3월 말 당시 한나라당은 초비상이 걸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으로 4월 선거의 전망은 극히 어두웠다. 이에 당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당사 현판을 떼내 천막당사까지 1km 가량을 걷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마치 예수가 골고다의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정치 이벤트였다. 부모를 잃고 온갖 역경을 뚫고 당 대표직에까지 오른 연약한 이미지의 박근혜 대표. 노무현 탄핵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여론은 ‘그녀’에 대해 동정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의 기저에 깔린 ‘부모잃은’, ‘소녀가장’에 대한 동정의식을 선거에 적절히 이용해왔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더 이상 고생하는 소녀가장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진박파동' 등을 거치며 오히려 소수세력을 핍박하는 냉혹한 권력자의 이미지가 더 부각되고 있다. 이번 4.13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 명성을 재확인 하느냐, 아니면 그 신화의 종말을 맛보느냐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