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의석수 예측 대실패 왜?

2016-04-14     성기노

‘피처링’이 선거를 하루 앞두고 각 당과 언론매체, 여론조사 전문가 등이 예측한 의석수를 모아 공개한 바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새누리당이 최소 150석, 최대 170석까지 얻어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새누리당의 과반수 획득 실패를 예측한 경우는 세 곳이었다. 새누리당이 선거 하루를 앞두고 공개적으로 144-146석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지지층 결집을 위한 엄살용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다음으로 신율 명지대 교수와 황태순 정치평론가가만이 ‘유이하게’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실패라고 예측했다. 특히 신율 교수는 공개적으로 내놓은 새누리당의 예상 의석수 가운데 최저석(140석)을 써냈다. 신 교수의 140석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의 122석에 가장 가깝게 예측을 한 셈이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맞혔다고 봐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모두 새누리당이 과반은 아니라도 제 1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제 1당이 될 것으로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로 예측 실패의 대참사였다.



4.13 총선은 역대 선거 사상 최악의 의석수 예측 실패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심지어 청와대와 정확한 자체 정보망을 자랑하는 한 유력 대기업마저 이번 선거의 판세를 완전히 오판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 유력 대기업은 새누리당이 180석까지 차지할 것이라는 내부 정보가 바깥으로 알려졌다가 선거 결과가 나오면서 어쩔줄 몰라 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번 선거는 응답률이 10%를 조금 넘는 부정확한 여론조사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공개적으로 새누리당의 압승을 외친 수많은 전문가들의 신뢰성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피처링 또한 예상이 빗나갔다. 일단 본 에디터도 새누리당이 1당을 내 줄 것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새누리당(155석)이 과반을 조금 넘을 것으로 봤고 더불어민주당(90석)은 기대에 못미치고 국민의당(35석)이 약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국민의당의 경우만이 실제 결과(38석)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 국민의당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20-30석까지 예측했는데 피처링은 선거 전날 예측으로는 다소 무리일 수 있는 숫자인 35석까지 예측했는데 이것이 근사치와 조금 비슷했다. 하지만 역시 예측 실패다 ㅠㅠ(본 에디터는 선거 몇 달 전부터 안철수 바람, 또는 국민의당 바람이 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믿거나말거나~). 


선거 결과를 보면 국민의당과 정의당, 무소속 등의 변수는 거의 없는 반면, 새누리당의 예상 의석 30-35석 정도가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155석에서 33석을 빼면 122석 대 123석 정도로 실제 결과와 거의 비슷해진다. 또한 이는 대부분 수도권과 부산 대구 등지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피처링은 이 30-35석을 통해 선거 결과 예측이 왜 빗나갔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본 에디터는 이번 총선이 역대 선거 중 가장 불가사의한 선거로 규정하고 싶다. 선거예측을 잘못 했다는 게 아니라 국민들을 제외하고 소위 ‘선수’라고 부르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정치인 등이 착시현상 속에서 헤맸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박근헤=선거의 여왕’이라는 착시현상이다. 한 정치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예측이라는 것이 통계(여론조사)와 경험에 의한 것인데 이런 결과는 그런 조건 바깥에서 벌어진 일이다. 말 그대로 천심이라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안된다. 더불어민주당도 당 대표실에서 선거 당일날 94석 정도까지 보고 있더라(사실 각 당이 선거 하루 전 공개한 예상 의석수를 보면 국민의당만이 35석으로 예측하며 실제 결과와 가장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정당은 전부 오판했다). 


이는 유권자가 지역의 인물을 보고 선호투표를 한 게 아니라 진짜 심판투표를 하러 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심판하기 위해 투표하러 간다’는 말이다. 이번 선거는 ‘묻지마 박근혜 심판’의 결정체다. 수도권과 대구 부산에서 뒤집어졌다. 박근혜에 대한 저항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유승민 파동'은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근원적인 시발점이었다.


일단 박근혜 심판론이 이번 선거 결과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웬 착시현상? 앞서 얘기한 대로 대부분의 전문가들과 언론매체 등이 새누리당의 과반수 획득 예상의 기저에는 ‘박근혜=선거의 여왕’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깔려 있다. 본 에디터는 ‘박근혜 과연 선거의 여왕인가’라는 기사를 총선 5일 전에 써올린 바 있다. 


‘박근혜의 운빨도 다할 때가 됐다’라는 뉘앙스로 쓰긴 했지만 솔직히 그때도 자신이 없었다. ‘박근혜가 누군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치맛바람 한번 휙 날려버리면 표가 그냥 모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것이 바로 착시현상이었다니.


이번에 새누리당이 참패한 배경의 근원 중 하나는 ‘유승민 파동’이었다. 이른바 찍어내기였다. ‘청와대 얼라’ 운운하는 유승민을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나 고깝게 보았을까. 굳이 묻지 않아도 ‘심기경호’ 전문가들인 그 ‘얼라’들이 유승민을 가만 놔둘리 없었다. 


바로 작전 개시. 여기에는 ‘박근혜=선거의 여왕’이라는 그들만의 든든한 빽이 있었기에 이런 무리하고도 얼척이 없는 작전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표는 박근혜에게 온다’는 그들만의 오만과 오역, 그리고 착시가 작용한 결과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힘은 어려움 속에서도 연약한 여성 리더의 모습을 보일 때 빛을 발했지만, 그 연약함이 오만과 독기로 변하는 순간 그 생명력을 잃고 만다. 화무십일홍이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철옹성같은 권력의 붕괴는 오판에서 비롯된다. 이게 정치의 불문율이다. 청와대 ‘얼라’들과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만 믿고 판을 잘못 읽은 것이다.


또 그것을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언론 매체, 심지어 본 에디터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정치권 ‘선수’들도 모두 착시 속에 빠진 것이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경험칙을 막연히 믿었던 것이고, 그것에 둘러싸인 '허수'만이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선거운동 기간 내내 망령처럼 대한민국 정치권을 떠돌았던 것이다.


최경환을 비롯한 대구의 진박 후보들이 큰절 한번 하면 표가 우수수 모일 줄 알았던 것이다. ‘김부겸과 홍의락의 당선은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도 뭣도 아니다’라는 대구시민들의 언명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들이 국민을 호구로 본 것의 결과가 이번 총선의 결과다. 


유승민을 찍어내고 공천을 엉망으로 만들고 옥쇄로 장난을 치고, 아무리 정치판이 아수라장이지만 옛날에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뻔뻔한 일들을 백주에 버젓이 하면서도 큰절 하나로 퉁치려고 했던 게 새누리당의 선거 전략이었다. 그 기저에는 물론 ‘이번에도 박근혜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친박계가 여자 치마속에만 둘러싸여서 정말 수치스럽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성 차별적인 발언이고 농담이었지만, 현재의 새누리당은 선거 전략이 딱 이 수준이었다.


출처=영화 <변호인>의 장면 캡처



그렇다면 ‘박근혜=선거의 여왕’이라는 말은 어디로 갔는가. 그 수많은 선거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그 신화는 어디로 갔는가. 어쩌면, 애초에 박근혜=선거의 여왕이라는 공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한때 새누리당(한나라당의 후신) 의원들은 ‘박근혜가 한번 지나가면 그날부터 분위기가 싹 달라진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받들고 살았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 과연 그럴까. 그게 박근혜의 힘일까, 아니면 국민의 힘일까. 박근혜가 좋아서 찍었을까? 부모가 총탄에 쓰러졌고, 결혼도 못하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 걱정하는 불쌍한 잔다르크가 좋아서 찍었을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안통했을까. 국민들은 왜 이렇게 냉정하게 돌아섰을까.


이는 ‘박근혜=선거의 여왕’ 공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애초에 선거의 여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박근혜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힘은 아니었을까. ‘박근혜를 통해 정치를 바꿔보자’는, 대의정치에 대한 열망 아니었을까. 그것을 아직도 청와대 얼라들은 박근혜의 힘이라고 믿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울까봐 노심초사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친박 실세들의 심기경호가 과연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국민은 뭐가 되든, '누나'만 안 울면 그만인가.


‘박근혜=선거의 여왕’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잘나서' 국민들이 권력을 주는 게 아니다. 그렇게 오해하는 순간, 박근혜의 언니오빠가 와도 필망의 길로 접어든다. 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1조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