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과 소품실 3. 라디오헤드(radiohead)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출근길, 라디오헤드 9집을 들었다. 사뭇 비장해지는 걸음걸이.
음악은 일상을 영화로 만들어주는 가장 간단한 도구다. 아이폰과 이어폰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위한 무대('김무성 대장' 아님). 특히 라디오헤드 음악은 어떤 장르 영화와도 잘 어우러진다. 로맨스부터 블록버스터, 시대극까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 Juliet, 1996)', 영화가 끝나고 검은 배경과 함께 울리던 'exit music'을 기억하시는가. 이듬해 3집 앨범 'OK computer'에 수록됐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명반이다.
이 곡은 지난 2012년 지산 록페스티벌 앵콜곡으로 울려퍼지기도 했다. 나에게 2012년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해, 그리고 라디오헤드가 내한한 해로 기억된다. 라디오헤드코리아(RHkorea)를 드나들며 윈앰프 라디오헤드 스킨을 쓰던 나였는데, 지산에 가지 못했던 것은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다시 영화이야기. 96년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 미모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유용하다. 현재 '뚠뚠미남'으로 활동 중인 디카프리오, 하지만 오스카도 거머쥐고 리한나와 염문설도 뿌리고, 더 행복해 보인다.
'007 스펙터(Spectre, 2015)'는 내용도 음악도 아쉬움을 남긴 영화였다. 라디오헤드는 이 영화 오프닝 음악을 의뢰받고 녹음 작업까지 마쳤으나 결국 영화에 사용되지 못했다. 이후 2015년 크리스마스 때 선물처럼 공식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했다. 현재 삭제됐지만,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오.
007 스펙터를 보며 든 생각은 '다니엘 크레이그는 언제나 멋지다' '모니카 벨루치, 여전히 세상 혼자 사시네.' '레아 세이두, 아이고 두야' 정도였다. 그리고 라디오헤드 노래는 왜 까인 거야?
참고로 007 스펙터 오프닝은 영국의 신성(晨星) 샘 스미스(Sam Smith) 몫으로 돌아갔다.
라디오헤드 영원한 프런트맨은 탐 요크(Thom Yorke)지만 조용히 덕후를 모이던 것은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였다. 저기 기타에 붙여진 애니메 스티커가 보이시는가. 덕후는 덕후를 알아보는 법(훗).
출중한 작곡 능력을 숨기고 있던 조니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 음악감독을 맡아 웅장하면서도 처연한 느낌을 잘 풀어냈다. 그는 이 영화로 그해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르고 그래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I'm finished."
영화 속 '피'는 원작의 제목이자 줄거리를 형성하는 석유(oil)를 뜻하기도 하고, 주인공 플레인뷰가 그토록 원하는 '핏줄'이기도 하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엘라이 선데이의 머리에서 퍼저나가는 진짜 피이기도 하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 그러한 배후에 숨겨진 광기를 세밀하게 포착했던 작품으로 그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로 각인됐다.
보지 못했지만, 조니 그린우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 '마스터' 영화음악도 담당했다. 알고 보니 이 영화, 이동진 평론가가 10점, 소금쟁이 박평식 평론가 9점 준 수작이다.
전 퇴근하고 이것을 보겠습니다.
김임수 에디터 rock@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