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의 대통령 코스프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코스프레’가 도를 넘고 있는 느낌이네요. 일단 고건 전 권한대행과는 비교할 바가 아닌데요. 당시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사유가 선거법위반이라는 단순한 사안에다가 탄핵소추가 기각돼 대통령직에 복귀할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에 당시 고건 대행은 극도로 청와대 주인의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하지만 황 대행의 경우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국회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유임결정한 것으로 살짝 국회의 간을 본 뒤 이제 아예 대놓고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고 있습니다. 황 대행은 12월 16일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을 한국마사회장에 임명, 황교안 체제 들어 첫 인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공석중이거나 교체대상인 공공기관장에 대해 내년 초까지 순차적으로 인사를 단행하기로 했다네요. 제한적이란 조건을 내걸긴 했지만 대통령의 인사권을 적극 대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네요.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탄핵소추안이 헌재에서 인용될 경우 바로 권력을 내놓아야 하고, 지금의 황 대행체제는 말 그대로 그 과도 대행체제에 불과합니다. 국회로 권력이 절반 이상 넘어간 상황이라고 봐야하는데요. 당장 국회가 황 대행체제를 지켜보고 있지만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마이웨이로 가고 있네요. 이는 다분히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담겨있다고 봐야 합니다. 모범생인 황 대행을 뒤에서 조종하기에는 그만이거든요. 박 대통령으로서는 황 대행체제마저 꼭두각시로 전락할 경우 탄핵 인용 전 말 그대로 탈탈 털리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버티고 있는데 황 대행을 통해 국회의 ‘권력 접수’ 시도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그리고 황 대행이 이 어려운 숙제를 생각보다 잘 해낼 경우 대권후보가 마땅치 않은 친박계가 그를 탄핵 뒤 당으로 영입해 대선후보로도 경쟁시킬 수 있습니다. 장점은 물론 ‘대통령까지 해본’ 국정운영 경험이겠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 법. 황 대행이 반기문이 가지지 못한 국내 정치와 국정운영 경험의 장점을 살릴 경우 한번 해볼 만하다고 판단할 수 있죠. 더구나 공안통으로 유명한 황 대행이 이념적으로도 친박의 우익 성향과 잘 맞아떨어지죠. 황 대행으로서는 한 달 전 경질 2시간전에 통보를 받고 이임식마저 거부할 정도로 끈 떨어진 갓이었지만, 바로 보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으로 졸지에 왕관까지 쓰게 될 대박행운을 잡게 되었네요.
요즘 황 대행 표정 한번 보세요. 입가에 웃음이 가시질 않아요. 이제는 좀 오버 해도 그게 청와대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 야당을 약올리는 행보로 비쳐져 새누리당에서도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이 나오고 있다고 하네요. 230만명의 촛불 민심으로 대통령 탄핵가결이 되긴 했지만 아직 헌재의 판결이 남아 있고, 이 과정에서 230만의 촛불 화력이 다소 떨어진 상황이에요. 이런 휴지기를 틈타 황교안 대행이 버젓이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의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마지막까지 단말마의 저항을 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들. 여기에다 황교안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극에 달할 때 그 정권의 총리로 재직하던 두번째 탄핵 대상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탄핵 판결이 최장 1년까지 소요될 경우 박근혜의 아바타로 사실상 이 정권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황교안의 웃음 뒤에는 바로 이런 기대심리도 깔려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이미 황교안의 대통령 코스프레로 장기전에 대비한 철저한 실리추구전략으로 돌아선 듯 합니다. 이에 촛불 민심도 그 화력을 재 정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무조건 화력을 뽐낼 것이 아니라 냉철하고 실리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야당이 앞으로 어떻게 촛불 관리를 할지도 흥미롭게 지켜봐야할 것 같네요.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