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안희정과 미꾸라지 반기문

2016-12-21     성기노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그 희생정신을 강조했을 정도로 대통령의 남자로서 신임을 받아온 인물이다. 노무현의 적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안 지사의 친노세력 내 신뢰는 두텁다. 바로 그런 인물이 참여정부에서 외교부 장관까지 지낸 반기문 총장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에는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일단 안 지사의 워딩을 한번 보자. 안 지사는 지난 12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반 총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반기문 총장님.. 정치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자신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그 슬픈 죽음에 현직 대통령 눈치보느라 조문조차도 하지 못했던 분입니다.

이제와서 변명하십니다.

대통령 서거 2년 뒤,

몰래 봉하 묘역을 다녀왔으며 해마다 11일이면 권양숙 여사께 안부 전화를 드린다고...

솔직히 그 말씀을 듣는 것조차 민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중부권 대망론과 친박계의 추대론을 은근히 즐기시다가 탄핵 바람이 불어오니 슬그머니 손을 놓고 새누리당 당 깨져서 후보 추대의 꽃가마가 당신에게 올 것이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하는 길에 정당이 뭐가 중요하냐고 일갈하십니다.

저는 평생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해 온 사람입니다.

오늘 비록 여의도 정당정치가 온통 줏대 없는 기회주의, 철새 정치의 온상이 되었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정당들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책임정치를 할 때 저 촛불 광장의 민의는 영속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 한 번 해보시겠다는 분들이 대선때마다, 총선때마다 유불리에 따라 당 간판을 바꾸고 대권 주자 중심으로 이리 뭉치고 저리 뭉쳐서 원칙없는 떳다방식 기회주의 정당 정치를 하는 것이 문제이지 민주주의 정당정치-책임정치가 필요없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의 죽음 앞에 조문조차 하지 못하는 신의없는 사람, 태평양 건너 미국에 앉아서 이리저리 여의도 정당 판의 이합집산에 주판알을 튕기는 기회주의 정치 태도, 정당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는 수준 낮은 민주주의 인식으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 수 없습니다.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 한국 최초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다는 우리 국민과 충청의 자부심을 훼손하지않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감히 그리고 간곡히 드리는 저의 말씀을 고까와 마시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안 지사의 반 총장에 대한 개인적 소회와 인간적인 배신감이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안 지사는 참여정부 들어 동료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국정상황실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 할 때 대선자금 문제로 2003년에 구속되는 비운의 측근이었다. 당시 안희정은 본진을 떠나보내고 적들의 추격을 받는 부상자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 자신이 나쁜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참여정부의 실세로 활동할 수 있었지만 그는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꽃길을 멀리했다. 안 지사는 참여정부 내내 어떤 직책도 맡지 않았다. 그렇게 안희정은 참여정부의 미생으로 남았다. 바로 이때의 희생정신이 오늘날의 안희정을 있게 한 발판이 되었다. 마치 노무현이 적지인 부산에서 묻지마 출마를 하며 바보 노무현이라는 칭호를 얻었듯이 안희정도 이때의 무욕행보가 오늘날 그의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노 대통령은 재임 시 한 방송에서 안희정의 희생을 이야기하며 눈물까지 흘리며 두터운 애정과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안 지사에 대해 자신이 힘들어하면서도 한번도 주변에 그것을 내색하거나 그 희생에 대해 생색을 내지 않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재리에 밝고 계산에 밝은 정치인이었다면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평가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안희정이 바라보는 반기문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기문이 장관직을 유지하며 유엔사무총장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해줘 반기문이 국제회의에 공식 참석해 각국의 지지를 호소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최고의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 노무현의 은덕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반기문은 은퇴한 전직 외교관이었을 뿐이다. 그가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르내리는 것도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런 그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뉴욕 빈소에서 약식 조문했을 뿐, 직접 빈소를 찾지 않았다. 반기문이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참배한 것은 서거 뒤 2년이 지난 201112월이었다. 이후 반기문은 수차례 방한을 했지만 김해 봉하마을에는 들르지 않았다. 물론 유엔사무총장의 일정상 봉하마을에 들르는 게 쉽지는 않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 사진=유엔 홈페이지



정치권에서는 반기문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 등이 혐노성향이 있는 만큼 굳이 봉하마을을 방문해 권력자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한다. 여권의 차기주자가 보이지 않자 자연스레 눈길은 반기문에게 쏠렸고, 이를 의식한 반기문도 굳이 노무현을 찾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가히 미꾸라지 행보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친노세력 사이에서 그를 배신자라고 맹비난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마저 자신의 대권가도를 위해 이리저리 이용하려는 행태가 바로 반기문의 미꾸라지 행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반기문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안희정이 지적한 것이다. 이는 반기문을 대권 주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신의와 도덕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미래도 없이 암담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던 안희정의 입장에서 볼 때 참여정부 내내 노무현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은덕을 받았던 반기문이 그런 기회주의적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해 충분히 분노했을 수 있다.


임기를 불과 며칠 남겨둔 반기문은 최근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유엔 사무총장을역임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보고 느낀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한 몸 불살라서 노력할 용의가 있다라며 사실상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을 주기 전에 먼저 한 인간으로서 배신자의 낙인이 찍힌 점에 대해 한 몸 불살라서’ 용서부터 구했으면 한다. 또 어떤 미꾸라지 변명을 할지 모르겠지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