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사람보는 눈

2017-07-11     성기노

지난해 1월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당 창당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주변 추천인물들도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영입한 케이스도 꽤 됐다. 특히 안 의원은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영입인사들도 IT 업계 등 '외지'로부터 수혈을 했다. 여기에는 칼의 양날과 같은 장단점이 숨어 있다. 기존 정치권 인사들이 비록 올드 이미지이긴 하지만 정치바닥을 기면서 나름대로 주변의 '검증'을 받았다는 점은 있다.



하지만 영입 인사들의 경우 신선한 면은 있지만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단점이 있다. '검증'이랄 게 청와대의 초정밀 장관 후보자 검증 정도는 안 되겠지만 정치바닥 몇 달만 다니면 그의 처세나 인성 등이 금방 드러난다. 그런 '검증' 작업이 오히려 더 필요한 측면도 있다. 안철수 전 의원의 경우 이런 '스크린'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스펙'만 보고 정치일도 잘 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 모른다.


이런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발상이 오늘의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같은 '괴물'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정치란 게 어찌 보면 쉬워 보이겠지만(책만 읽어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한 안철수에게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인간관계도 부침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내공'이 쌓여야 인정을 받는 곳이다.
정치쪽 경험을 웬만큼 해본 사람이라면 이 전 최고위원이 꾸민 제보조작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일단 판이 대선이라는 국가 최대의 이벤트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검증하는 세력, 인물, 숨은 거사들이 한 둘이 아니다. 감시하는 눈이 많다는 얘기다. 그리고 감히 그런 큰 판에서 제보조작까지 한다는 것은 더욱 엄청난 일이다. 작은 제보도 초정밀 검증을 하고 또 하는 판에 그런 큰 건을 몇 몇 사람의 검증과 확언에 그냥 넘어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지원 안철수 등을 걸고 넘어가는 것도, 선거를 수없이 치러본 박지원의 경우 이런 '조작'을 몰랐을 리 없다는, 나름대로의 직관과 경험칙이 깔려 있다. 안철수 당시 후보도 알았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대선과 같은 큰 판의 경우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골치 아픈 일은 일단 후보에게 보고하고 책임을 면하려는 게 일반적 프로세스다. 이런 과정없이 일개 최고위원이 그런 대형 제보를 받아서 혼자 검증하고 처리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있다면 그들이 알고도 지금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이유미씨 같은 경우 배지 하나 보고 그냥 철 없이 한 행동일 것이다.



이와 같은 '김대업 사건에 버금가는' 일이 대선 며칠 전 버젓이 행해진 곳이 국민의당이다. 그 모든 근원은 안철수의 사람 보는 눈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정치바닥을 구르며 나름대로의 비전과 가치관을 설파하고 적들과의 투쟁 속에서 정치 이력이 쌓이는 것이다. 이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의 경력과 경험칙이 녹아들어 있다. 안철수는 이런 과정들이 구시대의 잔재라거니 속물들의 파벌이라거니 하면서 무시한 측면이 강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원했다.


그 '새 사람'들이라는 것이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정치에 적용될 경우 전혀 다른 결과를 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기업활동이야 공무원을 구워 삶든, 거짓말을 하든 이익만 내면 장땡이다. 하지만 정치는 그럴까? 그런 과정이 있었다면 그 정치인은 이미 파멸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노무현이 왜 되지도 않는 부산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내내 정치외곽을 돌았겠는가. 머리 좋은 그가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정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더 크게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베팅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기업논리가 정치에 적용될 줄 알았나 보다. 엘레베이트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책을 읽었다는데, 아마 전부 그런 속성 성공비결 책이었나 보다. 정치는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들의 연속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를 승복하고 따라야 하는 '과정'의 연속에 있다. 스펙 보고 머리 좋을 거 같고 빨리 일을 처리할 것 같은 사람을 뽑아서, 그런 인재를 기업에선 우대하겠지만, 정치에서는 바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괴물만이 될 뿐이다. 안철수는 사람보는 눈이 없다. 그래서 정치는 그에게 맞지 않는 옷과 같다. 이제 그 옷을 벗고 속초에서 조용히 휴양이나 하는 게 맞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의 일지

◇2017년 4월
▶22일
-이유미씨,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 이력서 전달
-이씨, SNS 인스타그램 관리 부위원장 임명

▶27일

-이씨, 이 전 최고위원에게 문준용씨와 파슨스 디자인스쿨 같이 다닌 지인 이야기
-이 전 최고위원, 카카오톡 대화로 "종편기자 섭외 완료…최대한 빨리 까는게 좋다"
-이씨, 파슨스 출신 지인에게 문씨 고용정보원 취업과정에 대해 들었다는 내용 보고

◇2017년 5월
▶1일
-이 전 최고위원, 기자들에게 자꾸 문의가 온다며 이씨 재촉
-이씨, 파슨스 출신 두 사람과 함께 나눴다는 카카오톡 대화 캡처본 전달
-이 전 최고위원, 박지원 전 대표에게 바이버 메신저로 내용 전달 뒤 통화

▶3일 이씨, 이 전 최고위원에게 조작된 전화 녹음파일 전달

▶4일
-이 전 최고위원, 이용주 의원(공명선거추진단 단장)에게 녹음파일과 카카오톡 대화내용 전달
-공명선거추진단, 제보자 이메일 일치 여부 확인 뒤 기자회견 결정

▶5일
-김인원·김성호 공명선거추진단 부단장, 제보내용 바탕으로 폭로 기자회견
-이 전 최고위원, 카카오톡으로 "우리 유미님이 고생한 보람이 있어야지"

▶6일
-더불어민주당,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김인원·김성호·익명의 제보자 검찰 고발
-국민의당, 무고 혐의로 맞고발

▶8일
-이씨, 이 전 최고위원에게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 "사실대로 모든 걸 말하는 국민의당은 망하는 것이라고 하셔서 아무말도 아무것도 못하겠다", "지금이라도 밝히고 사과드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백번도 넘게 생각한다"
-이 전 최고위원, 바이버로 이씨에게 질문… "사실대로라면 무엇을 말하는 거지?"
-이씨 "개인 간에 가볍게 나눈 대화 중 일부일 뿐이지 증언이나 폭로가 아니라는 것"

◇2017년 6월
▶20일 서울남부지검 공안부(부장검사 강정석), 기자회견 관련 김인원 부단장 소환조사

▶21일 이씨, 검찰로부터 조사 출석 통보받은 뒤 이용주 의원에 면담 요청

▶23일 이 전 최고위원, 송강 변호사에게 검찰 수사 절차 문의

▶24일
-이씨, 조성은 전 비대위원에게 조작사실 자백…"이 전 최고위원의 지시로 그렇게 했다"
-이씨, 여수에 있는 이용주 의원 사무실 방문해 면담
-조 전 비대위원, 박지원 전 대표와 손금주·송기석·이태규·이용주 의원에게 내용 전달
-이 전 최고위원, 안 전 대표와 면담

▶25일
-이용주 의원, 김인원·김성호·이준서·이유미와 5인 회동…비대위 보고 결정
-이씨, 안 전 대표에게 문자메시지…"제발 고소 일괄취소 부탁드립니다.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26일
-박주선 비대위원장, 긴급 기자회견 통해 '제보조작' 대국민사과
-검찰, 이씨 소환조사 중 긴급체포

▶27일 국민의당 비대위, 자체 진상조사단 조직…조사단장 김관영 의원

▶28일 검찰, 이유미·이준서 자택 압수수색

▶29일
-이유미씨 구속영장 발부
-국민의당 진상조사단, 박지원 전 대표 대면조사

◇2017년 7월
▶2일 진상조사단, 안철수 전 대표 대면조사

▶3일
-검찰, 이준서·김인원·김성호 소환조사
-김관영 진상조사단장, 당 조사결과 발표…"이유미 단독범행"

▶4일
-검찰, 이준서·조성은 소환조사
-조성은 "이유미, 이준서 요구 못 견뎌 자료 만들었다"

▶6일
-이용주 의원실 김모 보좌관, 참고인 신분 검찰 출석
-검찰, 이유미씨 구속기간 10일 연장

▶7일 검찰, 이유미 11차·이준서 4차 소환조사…'대질신문' 진행

▶9일 검찰, 이준서·이유미 남동생에 사전구속영장 청구…"사안중대"

▶11일
-이준서·이유미 남동생, 서울남부지법 출석
-박성인 영장전담 부장판사 영장심사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