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같은 탁아소였다. 영국 브라이턴 빈민가 ‘무직자와 저소득자를 위한 지원센터’를 찾아온 사람들의 아이를 맡아주는 기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010년 10월의 그곳과 2015년 3월의 그곳은 달랐다. 여전히 폭력적이고, 무식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거친 곳이었지만, 4년여의 간극은 그 와중에도 뭔가를 또 비틀어놓았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영국으로 건너간 일본인 브래디 미카코는 2008년 어느날 “평균 수입, 실업률, 질병률이 전국에서 최악의 1%에 해당하는” 이 탁아소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2010년 10월까지 일하며 보육사 자격증을 땄고 민간 어린이집에 취업한다. 미카코는 일하던 어린이집이 망하면서 2015년 3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탁아소를 살펴보던 미카코는 참담한 기분이 든다. 선반 위 상자에 든 장난감과 책꽂이에 꽂힌 책이 4년 전과 완벽하게 똑같았기 때문이다. 색이 바래고, 접히고, 더럽히고, 변형된 책과 장난감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4년 전만 해도 탁아소는 석달에 한번씩 장난감과 책을 새로 샀고, 기부받은 물품은 창고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탁아소를 찾은 아이들은 새 장난감에 눈을 반짝이며 달려오곤 했다. 미카코는 이전부터 쭉 일해온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저변 탁아소라기보다는 긴축 탁아소 같네.” 친구가 대답한다. “이제는 바람 앞의 등잔불이야.”
‘저변 탁아소’와 ‘긴축 탁아소’라는 생소한 명칭은 미카코가 붙였다. 미카코는 처음 탁아소에서 일했던 2008~2010년을 ‘저변 탁아소 시절’, 다시 돌아온 2015~2016년을 ‘긴축 탁아소 시절’이라고 부른다. 2008~2010년은 노동당이 집권해 복지가 확대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노동당은 2010년 5월 총선에서 패했고, 이후 지금까지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다. 복지는 축소됐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일수록 그 영향을 더 강하게 받았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더 약자인 ‘가난한 집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사가 현장에서 쓴 생생한 기록이다.
책은 2부로 구성돼 있다. 긴축 탁아소 시절에 먼저 책 3분의 2가량을 할애한 뒤에야 저변 탁아소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대를 역순으로 배치한 것에는 저자 의도가 담겼다.
미카코는 긴축 탁아소 이야기가 끝날 무렵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2부를 읽으면서) 저변 탁아소에는 분명히 있었던 그 무엇을 찾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책을 설렁설렁 읽으면 긴축 탁아소와 저변 탁아소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알다시피 복지가 확대됐다고 해서 사람들 삶이 단기간에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브라이턴 빈민가의 지원센터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때나 저때나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다. 탁아소는 언제나 혼란스럽고, 아이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사고를 친다.
저자 역시 이를 콕 집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탁아소에서 벌어진 일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줄 뿐이다. ‘아이들의 계급투쟁’이란 제목도 언뜻 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책 내용을 곱씹어보면 긴축 탁아소와 저변 탁아소의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작게 보였던 그 차이는 삶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요인이 된다.
보수당이 집권한 뒤 사회 전반에는 긴축 바람이 불어닥친다. 언론은 노동하지 않고 생활보호수당으로 먹고살면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는 ‘구제불능의 언더 클래스’에 대해 연일 보도한다.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은 보수당은 생활보호수당, 실업보험, 양육 보조금 등을 대폭 삭감하기 시작했다.

미카코가 일하던 탁아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민자를 위한 영어교실’을 제외하고는 지원센터와 탁아소에 지급되던 모든 지원금이 중단된다. 센터를 주로 찾는 사람들은 가난한 영국인에서 영국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하는 이민자들로 바뀐다. 당연히 탁아소가 맡아야 할 아이들 구성비율 역시 변화한다.
탁아소는 이민자 아이들이 채우기 시작했고, 탁아소에 올 차비조차 없는 영국 하층 계급 아이들은 ‘소수자’가 됐다. 앞 시대에는 ‘인종차별’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긴축 시대에는 ‘계급차별’이 더 큰 문제로 떠오른다. 근면 성실하며 상승 욕구가 강한 이민자들은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허비하는 백인 하층’을 혐오하고 배제한다.
4세 이전 이미 심각하게 나타나는 발육 격차를 시정하기 위해 노동당 정부가 실시하던 영·유아 교육과정, 보육사를 단순한 ‘애 봐주는 사람’에서 교육자로 키워내기 위한 지원 정책들도 퇴보한다.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교육기관’으로 기능하던 탁아소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정부 지원 없이 알아서 운영해야 하는 버려진 공간이 된다.
복지의 후퇴는 공동체의 붕괴와 분열을 낳았다. ‘저변 탁아소 시절’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카코는 “예전에도 저변 탁아소는 가난했고 긴축 탁아소보다 혼란스러웠다. 저변 탁아소는 도덕이고 뭐고 다 붕괴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아나키한 나라, ‘브로큰 브리튼’을 체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분열은 없었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백인 언더 클래스, 슈퍼 리버럴한 사상을 가진 인텔리 히피, 이민자 보육사, 이민자 가정이 모두 같은 장소에서 어떻게든 함께 살았다. 서로 다른 신앙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친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통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필요할 정도로 증오하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아래쪽 사람들’의 공동체가 분명히 존재했다”고 기록한다.
‘긴축시대’ 영국은 아이를 키우기 앞서 생존부터 걱정해야 하는 곳이 된다. 미카코가 일하던 탁아소의 지원센터는 ‘저변 탁아소 시절’에는 일주일에 5일간 ‘1파운드 식당’을 운영했다. 1파운드(약 1490원)만 내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포함된 점심을 양껏 먹을 수 있는 곳이라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 이용했다. 그러나 지원금이 끊기면서 운영은 주 3일, 주 2일로 줄어들었다. 결국 지원센터는 긴축시대를 더 견디지 못하고 2016년 10월 탁아소를 ‘푸드 뱅크’로 바꾼다. 미카코는 긴축 탁아소 시절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썼다. “저변 탁아소 시절, 아나키하고 사악하고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몰랐던 빈민가 아이들이 ‘푸드 뱅크 시대’인 지금은 모두 배를 곯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설 무렵의 영국은 ‘브로큰 브리튼’이라 불렸지만, 2016년에는 갑자기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갔다.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 정치 변화가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잘 알 수 있다. 최하층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왔던 애니(탁아소 설립자 이름) 탁아소는 이제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식료품 창고로 변했다. 애니와 우리가 해온 일이 푸드 뱅크에 졌다.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이것이 긴축 재정의 축도다, 탁아소, 정치에 완패하다.”
탁아소가 문을 닫은 뒤에도 미카코는 아이들만은 그 존엄성을 지켜주려 노력한다. 미카코는 푸드 뱅크가 문을 연 뒤에도 자원봉사를 나온다. 부모들이 푸드 뱅크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은 모습을 보지 않도록 아이들을 밖에서 돌봐준다. 미카코는 배가 고픈 아이들을 계속 웃게 만든다. 푸드 뱅크에 줄을 선 부모들이 선반 위 식료품을 움켜쥐고 비닐봉지에 집어넣는 동안 아이들은 세상 모르게 웃는다. 미카코는 다시 생각한다. “웃을 수 있는 한 우리는 진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그나마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