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이곳에 나왔습니다.”
성매매 업소 집결지인 이른바 ‘전주 선미촌’의 업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7월 21일 오전 거리로 나섰다.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에 모인 150여명은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우산을 든 채 마스크와 선글라스 썼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단단히 말아쥔 주먹과 피켓을 높이 치켜드는 모습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한쪽 팔에는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적힌 붉은 띠를 둘렀다.
광장에 앉은 동료들을 바라보고 단상에 선 한 성매매 여성은 결의문을 낭독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는 “전주시는 문화예술촌 조성을 운운하며 선미촌에 터를 잡은 우리를 내몰려고 한다”며 “선미촌에 시청 현장사무소를 차리고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고 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더는 감언이설로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지 말라”며 “우리는 죽음으로 내모는 ‘갑질 행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집회에 참여한 또 다른 여성은 ‘먹고 살 길’을 걱정했다.
그는 “요즘 경찰은 순찰을 강화하고 심지어 손님으로 위장해서 함정단속도 한다. 점점 손님이 떨어져 나가서 일할 수가 없다”며 “전주시와 경찰은 우리를 몰아내려고 안달이다. 먹고 살길을 마련해주지 않고 나가라고 하면 혼자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나는 어떻게 사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업주들도 생존권 보장과 대책 없는 행정 집행 중단을 촉구했다.
업무 김모(36)씨는 “전주시는 아무런 대안도 없이 ‘점진적 기능 전환’이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선미촌 부지를 매입해 예술촌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며 “합당한 경제적 지원도 해주지 않으면서 우리의 설 자리를 뺏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시간에 걸친 집회를 마치고 오거리 광장을 돌아 다시 시청으로 돌아오는 구간을 행진했다.
앞서 전주시는 지난해부터 총 94억원을 들여 선미촌 일대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선미촌 영향으로 낙후되고 공동화된 서노송동 일대 11만㎡에 행복주택도 짓고 각종 갤러리와 공방 등으로 꾸며진 문화예술 거리로 만들 계획이다.
잠깐상식)전국 집창촌 어디에 몇개나 있나
여성가족부가 2013년 전국 집창촌을 전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매매 집결지인 '집창촌(윤락업소 10곳 이상 밀집된 곳)'은 2002년 69곳에서 2013년 44곳으로 줄었다.
이들 집창촌 내 성매매 업소도 2천938개에서 1천858개로 37% 감소했고, 이곳에서 종사하는 '직업여성'도 9천90여 명에서 5천100여 명으로 43% 줄었다.
전수조사를 3년마다 실시하는 여가부는 내년초쯤 전국 집결지 업소와 '직업여성'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 분석을 다시 할 계획이다. 2013년 이후 전수조사 자료가 없기 때문에 최근 2년여간 일부 집결지의 업소와 '직업여성' 수에는 변화가 있이라고 한다. 경찰청 단속 통계 등에 비춰보면 집결지 수는 차이가 없지만 집결지내의 업소와 여성종사자 수는 각종 단속 등으로 2013년 집계치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70∼80년대 호황을 누렸던 집창촌이 10여 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면서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다.
성매매 방지 특별법 시행으로 성 매수자와 성매매 여성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이뤄진 효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서울과 지방의 집창촌을 폐쇄하고 새로운 문화예술 복합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8개 부처·청 국장급으로 구성된 '성매매 방지대책 추진점검단'이 지자체별 성매매 집결지 폐쇄 추진 상황을 공유하고 지자체와 지역 실정에 맞는 개발계획의 밑그림을 짜고 있다.
여가부도 지난 4월 충북에서 개최한 '2016년 성매매방지 네트워크 간담회'를 시작으로 12월까지 전국 16개 시도를 돌며 각 자치단체, NGO 등과 토론을 통해 집창촌 폐쇄 분위기를 확산하고 있다.
자치단체도 도심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범죄의 온상인 집창촌을 새로운 용도의 공간으로 조성키로 했다.
경찰과 검찰 등 사법기관은 성매매 단속에, 여가부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직업여성 자활·교육에, 자치단체는 집창촌 리모델링에 각각 중점을 두고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착취나 강요를 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한 사람도 처벌토록 한 성매매방지 특별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지난 3월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기여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내부적으로 집창촌 폐쇄를 결정하고 대안 마련에 나섰다.
부산의 대표적 집창촌인 '완월동'과 이번에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선 전주의 '선미촌', 인천의 '옐로하우스' 등이 대표 사례다.
부산시 서구는 50여 개 업소에서 250여 명의 '직업여성'이 활동하는 '완월동'을 폐쇄하기로 하고 테스크포스를 지난 4월 구성했다.
단속 등을 통해 완월동 집창촌을 폐쇄한 뒤 이곳의 활용방안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인천의 옐로하우스도 점진적으로 폐쇄 수순을 밟기로 했다. 이번에 전주 선미촌도 기존 계획에 따라 철거 및 개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인천시 남구는 순찰과 단속을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숭의역 인근 성매매업소 일부를 사들여 완충공간을 마련키로 했다.
정부도 이들 공간의 폐쇄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폐쇄 발표가 난 지역 집창촌의 업주와 여성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설득과 예산 지원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과거 10년간 집결지의 규모가 축소되고 여성들의 수도 많이 감소하는 등 정부의 단속과 예방 노력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뒀다"면서 "아무래도 집결지의 폐쇄는 해당 자치단체장의 결단과 의지가 중요한 만큼 이들 지자체를 지원하는 모든 노력을 강구하는 쪽으로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성매매 단속과 그 지역 개발 계획은 장기적으로 추진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속에서 생존했던 성매매 여성들은 당장 거리로 나앉게 된다. 우리나라의 열악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생각할 때 이들은 틀림 없이 '지하'로 숨어들어가 성매매 일을 계속할 것이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성매매 범죄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이른바 ‘풍선 효과’인데, 최근 추세는 ‘오피스텔 성매매’가 주거지까지 파고들며 과거의 집창촌을 대신하는 양상이다. 경찰청 자료(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를 보면, 오피스텔 성매매 단속 현황에 관한 통계를 처음 집계한 2013년 638건에서, 2014년 1546건, 지난해는 1809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도 8월 말 기준 1374건을 단속해, 연말까지 2000건을 크게 웃돌았다.
이렇듯 성매매 단속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생존의 사각지대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더 위험하고 고된 일자리로 가는 것이다. 정부의 실질적인 단속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생존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온라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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