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투톱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가 추경 처리 이후 때아닌 감정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추경안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추 대표의 말에, 협상을 맡았던 우 원내대표가 발끈했다고 한다.
지난 주말 추경이 통과된 뒤 처음 열린 민주당 회의에서, 추미애 대표는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야당의 반대에 이것저것 양보하다가 중앙직 공무원 증원은 사실상 반 토막이 됐다고 지적했다. 추경 협상을 도맡은 원내지도부에 에둘러 불만을 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추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의 편성 목적과 취지를 제대로 살렸는지 정치권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추경 때문에 이것저것 다 양보한 입장에서는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라며 원내대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우원식 원내대표는 모욕감을 느낀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추경에 민생 예산을 꼼꼼히 담았고, 근로감독관과 소방관 등 만여 명을 새로 채용하게 됐다며, 추경의 성과를 깎아내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질 10,075명을 채용할 수 있게 했고, 이것이 어떻게 누더기란 말입니까. 당 내외의 이런 왜곡된 평가, 성과에 대한 폄훼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두 사람의 불협화음은 국민의당 제보 조작과 관련한 추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 때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추 대표의 발언에 발끈한 국민의당이 추경 협상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보다 못한 우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대리사과를 끌어내며 협상의 물꼬를 텄고,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 반대로 추 대표는 추경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이 의결 정족수 부족 사태를 겪자, 원내 지도부의 지도력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여당의 머리인 두 사람의 신경전이 길어질 경우 새 정부와의 국정 공조도 허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사실 대표와 원내대표 사이는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집권여당의 대표는 전당대회를 통해 전 당원의 뜻에 따라 뽑힌 사실상의 1인자이긴 하지만, 원내대표는 원내 의원들이 뽑은 국회 의정활동의 사실상의 리더다. 집권여당 대표가 야당에 대해 큰소리를 치고 비난을 할 수 있지만 원내대표는 미우나 고우나 야당의 협상 파트너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자리다.
이번 추미애-우원식 두 '대표'의 갈등을 보면서, 집권여당의 당 대표가 너무 협량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밴댕이 리더십'이라고 부르고 싶다. 추경 협상을 하면서 자유한국당의 치고 빠지식 전략에 우 원내대표는 혀를 내둘렀고 막판까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표결 재석 미달 사태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협상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고, 같은 지도부로서 책임이 있는 추 대표가 우 원내대표의 추경 표결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는 것은 자신이 마신 우물에 침을 뱉는 격이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공동책임을 진 원내대표를 감싸고 격려를 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는 아니지만, 우 원내대표도 선방을 한 셈이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잽싸게 이용해 원내대표에게 흠집을 내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밴댕이 리더십이다. 여당대표가 그동안의 모든 허물과 실수를 감싸안고 앞으로 더 잘해보자는 메시지를 던져야 화합과 배려의 리더십이 나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원내대표가 미진했다고 보는 것을 굳이 대표가 지적해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게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예전에 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외야수 피에가 수비를 하다가 실수를 하고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당시 강석천 코치는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피에를 강하게 질책하고 심지어 욕설까지 해댔다. 그런 추한 장면은 팀 워크에 어떤 결과를 미칠까. 야구가 정치와 다를 수 있지만, 추 대표의 우 원내대표에 대한 성마른 비난은 당 전체의 화합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라고 본다. 당 지도부를 우습게도 볼 것이다.
추미애 대표는 '머리 자르기' 발언으로 자신의 정치적 웨이트를 한껏 올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반향은 작지 않았다. 야당은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 버렸고, 어떻게 해서든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게 해야 하는 원내대표는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대표가 기분이야 낼 수 있지만, 그 뒤처리는 전부 원내대표 몫이다. 우 원내대표가 선수는 3선으로 4선의 추 대표보다 낮지만 정치입문은 비록 '배지'는 안 달았지만 1988년 평민당 시절부터 정치를 시작한 '고참'이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추 대표가 이번에 추경 표결을 끝내고 '큰누나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표결 재석 부족으로 민주당은 '무능 정당'이라는 치욕스런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옛날 실수를 잊고 새출발을 하자고 하면 된다. 그런 여유도 없이 대표와 원내대표 간에 볼썽사나운 감정싸움을 노정한 것은 민주당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현재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젊은 비서실장 임종석이 투톱이 되어 분위기 좋게 서로를 위하며 잘 해내가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국회만 오면 이렇게 삐걱거리고 있다. 왜냐하면 청와대에 들어가면 오로지 '국가'를 생각하게 되지만, 국회에 있으면 오로지 '자기정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튀어야 더 큰 자리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자기정치 욕심은 무서운 것이다. 좀스런 욕심으로 자기정치를 더 하려고 안달하는 사람은 결.단.코 무너지게 돼 있다. 정치만큼은 지는 게 이긴다는 경구가 가장 정확하게 들어맞는 곳이다. 정치에 있어서 희생과 양보만큼 더 큰 미덕은 없다. 아니, 없다는 것을 민주당 지도부가 꼭 좀 보여주었으면 한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