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톱 로비스트 장충기의 적나라한 로비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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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톱 로비스트 장충기의 적나라한 로비 실상
  • 성기노
  • 승인 2017.07.2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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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 '로비' 하면 삼성그룹으로 통한다. 로비의 길목을 정확하게 알고 집요하게 타깃을 무너뜨린다. 삼성은 입사하자마자 직원들에게 '지인' 리스트를 만들어 올리라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거대한 네트워크는 삼성의 1차 인맥집단이 된다. 여기에서 다시 중요한 임원 중심으로 다시 네트워킹이 이뤄지고 각 임원들은 사회 각계각층의 유력 인사들과 폭넓은 교제를 한다. 물론 '회사'를 위해서다.


이런 인맥 쌓기의 최정점에 있는 곳이 미래전략실이었다. 여기에서 정부 공기업 등을 상대로 하는 각종 대관업무가 이뤄졌다. 정상적인 루트보다 인맥 학맥 등이 총동원돼 반드시 삼성의 이익을 관철시킨다. 기자들도 삼성의 정보력과 인맥에는 혀를 내두른다. 수십년 동안 쌓아온 우리나라 인맥 네트워킹의 결정체가 바로 미전실에 녹아있는 것이다. 바로 그 '미전실'의 로비 실태가 재판을 통해 공개돼 관심을 끈다.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으로 ‘대관업무’를 총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장충기(불구속기소) 전 삼성그룹 사장은 정계·언론계·관계 인맥을 망라한 ‘로비스트’였다. 검찰 간부·대법관 인사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었는가 하면, 그의 휴대전화에선 각종 인사·협찬·알선 등 청탁 문자가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44회 공판에서 장 전 사장 휴대전화 문자내역을 증거로 제출했다.


문자 메시지의 일례를 살펴보자. 김영태 SK그룹 부회장은 장 전 사장에게 “선배님, 정두언 의원이 삼성합병에 대해 까맣게 애기하며 정기국회 때 증인채택을 운운한다. 시간날 때 손길 한 번 내밀어야 할 듯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이었다. 특검팀 박주성 검사는 “삼성 미전실에서 삼성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정치권 인사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문자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손길 한 번 내밀어야 할 듯'이 바로 직접적인 로비를 의미한다. 평소 정두언 의원과 친분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아니면 정 의원이 가장 껄끄러워하거나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 하는 '인물'을 내세워 접근한다.


또한 장 전 사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된 유관기관의 동향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아무개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은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정보를 장 전 사장에게 보고했다. 장 전 사장은 합병 문제에 비판적이었던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영주 의원 등 여당 정치인의 동향 보고도 받았다. 장 전 사장은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인선 동향도 문자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는 삼성이 국정원도 움직인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 기조실장이면 예산을 총괄하는 자리로 거의 모든 정보가 이 곳을 거쳐간다. 그런 기조실장에게 삼성은 버젓이 보고를 받고 있었다.


계열사 임원과의 문자에선 ‘윗선과 각별한 S사’라는 표현도 보였다. 신라면세점이 서울 면세점 신규 입찰에 참여한 것과 관련해 신라면세점 임원이 “윗선과는 각별한 S사가 여전히 부동해 낙찰이라 생각한다”고 장 전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임원은 “제일 중요한 키맨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을 달라고도 했다. 박 검사는 “어떻게 인허가 관계자와 접촉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는 내용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장 전 사장은 ‘메르스사태’가 한창이던 2015년 6월21일 “제가 전화를 드려도 되느냐. 메르스 관련해 의논 드리고 싶다”고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이 초기 메르스 대응에 실패한 것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지 이틀 후였다. 경제부총리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고 전화통화를 요청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최 부총리가 삼성과 '특수관계'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의례적인 문자 메시지가 아니라 그동안 쌓여온 '친분'의 두께를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장 전 사장의 휴대전화엔 △검찰청 고위 간부 인사 동향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인사 동향 △한국가스공사 임원 인사 동향 △대법관 관련 인사 내용 △법무부 감찰관 인사 검증 등의 문자메시지가 발견됐다.


취업 및 금전지원 청탁 등 민원 문자도 줄줄이 발견됐다. 특검은 장 전 사장 휴대전화에서 △전경련 임직원 아들의 취업 청탁 △삼성 계열사 취업 청탁 △사외이사 인선 청탁 △삼성 계열사 비상임고문직 임기 연장 청탁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간부 소개 청탁 △언론사 협찬·광고비 지급 유지 청탁 등이 적힌 문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삼성 현안이 VIP 말씀자료에 정확히 언급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측 피고인들이 ‘대통령 말씀자료’와 관련해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특검 측은 이를 반박하는 장 전 사장의 문자를 제시했다.


“장 선배님 불쑥 죄송합니다. 오늘 11시 BH 회동 관련 참고하세요.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미국 대기업 17곳 10만개 청년 일자리 창출. 안그래도 지금 VIP 에게 가장 중요한게 노동개혁인데 그에 대한 협조의 뜻을 밝히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후략)…”


‘미국 대기업 17곳의 10만 개 청년 일자리’ 언급은 청와대가 2015년 7월25일 이재용 부회장과 대통령 독대를 대비해 작성한 ‘삼성그룹 말씀자료’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 삼성그룹 말씀자료 각주 부분엔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JP모건, 스타벅스 등 17개 대기업이 2018년까지 청년층 10만개 일자리 제공’ ‘완전고용, 시간제고용, 인턴 직업훈련 등 이를 위해 8월13일 시카고에서 박람회 개최할 예정’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박주성 검사는 “피고인들은 말씀자료와 관련해 삼성그룹 현안을 청와대 쪽에 보내준 적이 없다고 하지만 문자내용과 말씀자료 각주 내용이 정확히 일치한다”며 “삼성이 말씀자료 내용을 사전에 청와대 측에 보내준 것에 대한 증거로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의 '힘'은 자신들의 현안을 대통령의 말씀에까지 녹여낼 정도로 막강했다.


삼성 측 변호인은 정부인사 관련 동향 문자에 대해 “발신인 대부분 장충기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거나 기자들로서, 단편적 정보를 전달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3년치 문자를 입수해 늦게 제출할 정도로 양이 많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렇게 많은 문자 중 제출 내용이 이런 내용”이라면서 “이 사건 공소 사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지 못한다. (문자가) 사건 막바지에 겨우 제출됐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밝혔다.


삼성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장충기 전 사장의 문자메시지는 삼성 로비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증거자료다. 검찰이 재판에 제출하지 못할 정도로 '미묘한' 자료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재판과정이나 간접적 루트를 통해서 얼마든지 공개될 수 있을 것이다. '내부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는지 삼성 미전실 간부의 한 메시지를 통해서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자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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