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140만원 vs 세부 129만원…"호갱되느니 해외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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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140만원 vs 세부 129만원…"호갱되느니 해외로 나갑니다"
  • 성기노
  • 승인 2017.07.2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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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올여름 휴가철 성수기(7월 15일~8월 15일)에 전체 인천공항 이용객이 전년 대비 3.4% 증가한 684만명, 출국자는 1.2% 증가한 281만명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역대 최대치였던 작년의 277만명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29일엔 출국 기준으로 역대 일일 최대치인 10만4336명이 공항을 이용한다"며 "총 600여 명의 특별근무인원을 배치하고 주차공간 부족 문제도 심각할 것으로 예상돼 임시주차공간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해외 바캉스족이 급증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국내 여행 상품의 높은 가격 탓에 싼 패키지의 해외여행으로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년 새 대중화된 저가항공의 영향으로 해외여행 비용은 대폭 줄어든 반면, 국내 피서 비용은 여름철 바가지요금 탓에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커(중국 관광객)들이 줄어서 장사 안 된다며 국내 여행업체들은 아우성이라고 하는데, 정작 여행상품은 더 비싸졌고 휴가지 바가지 요금도 더 심해져서 국내 여행객들이 해외로 몰리고 있다.


3년 전 공공기관에서 취업한 직장인 김 모씨(28)는 올여름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김씨가 올해 국내 여행 대신 해외를 선택한 이유는 바가지요금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휴가지를 부산으로 정했다가 평소 숙박비가 5만원 남짓인 부산 해운대 근처 한 모텔에 묵기 위해 20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 했다. 그나마 주변 숙박업소들 중 가장 싼 요금을 부른 곳이었다.


한번 낭패를 경험한 김씨는 올해는 두 달 전 숙소를 예약하려 했지만 피서지 주변 펜션들이 숙박비로 평소의 3배가량을 요구했다. 결국 김씨는 여름철 바가지요금의 '호갱(호구 고객)'이 되는 게 싫어 동남아 간판급 휴양지인 필리핀 세부행을 택했다.


최근 '최저가 비교 사이트' 등을 통해 부산 해운대, 베트남 다낭, 필리핀 세부 등 3곳의 휴가비 견적서를 뽑아보면 동남아로 가는 게 국내와 엇비슷하거나 국내보다 오히려 더 싼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해운대를 2인 기준으로 3박4일 다녀올 경우 숙박비(펜션·중저가 호텔 기준), KTX 왕복 탑승권, 식사, 여가비 등을 포함해 128만~140만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필리핀 세부와 베트남 다낭의 경우 각각 111만~129만원, 123만~140만원으로 오히려 더 낮게 나왔다. 휴가철 최성수기인 8월 초·중순 필리핀 세부·보라카이, 베트남 다낭 등 동남아 주요 관광지행 항공권 최저가는 예약 시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6~7월 중 예약할 경우 23만~30만원 수준이었다.


바가지요금이 제일 극성을 부리는 분야는 역시 숙박이다. 필리핀·베트남에선 2인 기준 1박에 5만~15만원이면 4~5성급 고급 리조트나 호텔도 이용할 수 있었다. 반면 부산 해운대 인근 5개 펜션을 점검해보니 비성수기에 10만~14만원이던 2인 기준 방이 8월 초부터 시작되는 성수기에는 22만~38만원까지 올랐다. 인근 호텔들도 평소 10만~26만원 수준이던 방이 32만~45만원에 예약되고 있었다. 모텔도 1박에 20만원을 주고도 예약이 힘들었다.


숙박비뿐만 아니다. 엄연히 불법으로 규정된 계곡·해수욕장의 '자릿세'는 한번 부당하게 뜯기고 나면 울분이 치솟는다고 피서객들은 입을 모았다.


울산 지역 모 유명 계곡으로 2박3일 휴가를 다녀온 구영출 씨(가명·45)는 "계곡 옆 평상을 대여했는데 하루 대여비가 15만원을 훌쩍 넘었다"며 "불법인 걸 알면서도 당장 답답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낼 수밖에 없지 않냐"고 말했다. '계곡 평상'은 현행 하천법 95조 규정에 따라 하천의 흐름을 막는 행위로 불법 점유에 해당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주인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자릿세를 요구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오히려 당황할 때가 많다. '당신들 없어도 손님들 많다'는 배짱 심리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휴가지에서 기분을 망치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중국 사드 보복 후 관광객 급감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 중인 정부도 '바가지요금'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다가올 평창올림픽 기간에도 일부 신축 오피스텔과 펜션은 이미 1박에 40만~50만원에 예약을 받고 있고, 2.5성급 호텔의 경우 최고 80만원까지 오른 가격으로 예약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국내 여행상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물가가 임금에 비해 너무 많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업체들도 일단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일단 정부의 물가대책이 실패한 측면이 크다. 소득은 정체되는데 물가만 오르니 여행 상품도 자연히 폭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행업체들도 문제다. 가장 손 쉬운 방법이 가격을 '그냥' 올리는 것이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비용을 절감할 방법을 찾아 '싼 가격'에 공급하면 이용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는데, 업체들의 영업 방법도 너무 구태의연하다.


국내 여행업체들은 유커들의 '쇄도'로 경쟁력 강화 이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편안하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중국 특수도 없다. 동남아로 타깃을 바꾸고 있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사실 시장은 국내 내수에 있다. 하지만 당장 제주도에만 가봐도 터무니 없는 높은 가격에 국내 관광객들도 혀를 내두른다. 제주도의 물가 자체가 육지운송비 등으로 높기 때문에 웬만해선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별로 없다.


휴가지의 바가지도 오래된 한국의 '전통'(?)이다. 손님이 조금만 몰린다 싶으면 이번 기회에 한몫봐야 한다는 주인들의 이기적인 심리가 발동해, 그냥 무턱대고 가격부터 올리고 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영업방식은 없다. 한국이 반도체 철강 조선 등이 선진국 이상의 기술력을 가지고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유독 여행업만큼은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행은 감동과 이미지를 파는 상품이다. 돈에 휘둘려 관광객들의 기분을 잡치게 만들면, 그 상품은 갈수록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왜, 한국인들이 낯설고 물선 해외로 나가는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나는지 국내 여행업자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온라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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