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부품을 비밀리에 실어날랐던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순양함이 침몰 72년 만에 발견됐다고 CNN 방송과 dpa 통신 등이 보도했다.
민간 탐사대를 이끈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은 1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 "필리핀해 해저 5천500m 아래에서 인디애나폴리스함 잔해의 위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앨런을 포함해 모두 13명으로 구성된 탐사팀은 해저 6천m까지 잠수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해양조사선 '페트렐' 호를 이용해 북태평양 바다 밑바닥에서 잔해를 찾아냈다.
인디애나폴리스함은 미국 해군 사상 최대의 비극 스토리를 가진 함정이다. 인디애나는 1930년대 취역한 중순양함으로 1945년 7월 30일 2,000명에 가까운 승조원을 태우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B-29가 대기중인 티니안 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기 보름 전의 일이었다.
특히 여기에는 '리틀보이'(히로시마 원폭의 별명, 나가사키는 팻맨이었음)의 재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싣고 있었다. 극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인디애나폴리스는 단독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당시 함대를 지휘하는 맥베이 대령은 여러번 호위함을 요청했지만 지휘부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무사히 원자폭탄을 실어나른후 다음 작전을 위해 필리핀 레이터섬으로 이동을 시작하는데 역시나 상부에서는 호위함을 붙여주지 않고 단독으로 항해하게 된다. 사실 극비로 진행된 임무를 완수했으니 호위함을 붙여주어야 하는데 상부가 방관한 것이다.
그리고 새벽에 일본은 이를 발견하고 어뢰를 인디애나폴리스에 명중시켜 단 12분만에 침몰시켜 버린다. 인디애나호는 침몰직후 바로 구조신호를 보냈고 즉시 퇴함명령을 내려 대부분의 승조원이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바로 이 다음에 있었다. 4일동안 탈출한 승조원 구조를 하지 않아 약 30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배에서 탈출했을 때는 약 900명정도 생존자가 있었는데 4일이 지나도 그들을 구조하러 가지 않아 생존자들은 배위에 떠서 탈진하거나 상어에게 공격당하는 등의 이유로 300명 정도만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침몰직후 구조신호를 감지했는데 수신소의 당직사관은 술에 취해 자고 있었고 다른 수신소 당직사관은 카드게임을 하느라 신호를 무시했다고 한다. 다른 수신소는 일본해군의 책략으로 판단해 구조신호 자체를 무시했다고 한다.
4일동안 바다에 떠 있던 생존자들은 다른 것도 아닌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 죽어갔다. 피를 흘리는 부상병들이 근처의 상어들을 부른 것이다. 생존자들은 부상병과 시체를 멀리 떼놓기도 했지만 이들을 모두 먹어치운 상어들은 근처에 또 다른 만만한 먹이가 있음을 알게 됐고 대부분 잡아먹어 버렸다. 며칠 후 우연히 지나가던 미군 비행기가 그들을 발견해 구조대를 불렀을 때, 생존자는 단 316명이었다. 과거 임팔 전투 때 일본군이 바다악어 집단 서식지에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한 부대가 악어 떼들에게 통째로 잡아먹힌 이래 최악의 참사였다.
이 사건으로 전쟁 승리를 앞둔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전쟁 승리를 만끽하던 차에 일본군도 아니고 바다의 상어떼 먹이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다는 소식에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함장 맥베이는 군법회의에 회부돼 ‘회피기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 뒤 맥베이는 원상복귀해 제독으로 승진해 소장으로 군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전역 후에도 수백명의 젊은이들을 상어밥으로 만들었다는 대중의 비난과 유족들의 원성은 그를 계속 괴롭혔고 결국 맥베이는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은 미 합중국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어 있다. 미국이 72년만에 이역만리 필리핀의 심해 5,500m 수심에서도 기를 쓰고 찾으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생존자는 22명이다. 미 해군 사상 최대 비극의 주인공인 인디애나폴리스함을 찾아낸 탐사팀은 생존자와 유가족에 공을 돌렸다.
앨런은 성명에서 "2차 세계대전을 끝내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인디애나폴리스함의 발견을 통해 그 배에 있던 용감한 사람들과 가족의 명예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참혹한 환경을 견뎌낸 그들의 용기와 인내, 희생에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72년이 지나도 먼 바다에서 참사의 근원을 끝까지 찾아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는 침몰했다. 과연 이 참사의 기록은 언제까지 우리의 기억속에 존재하고 있을까.
온라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