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해설가로 활동 중인 양준혁씨가 10억원대 사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9월 18일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월말~7월초 양씨가 사기 피해를 입었다며 고소장을 제출한 사건과 관련, 중요경제범죄조사단에서 사업가 정모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2014년 강남의 한 스포츠게임업체에 10억원을 투자한 양씨에게 잘 나가는 회사의 전환사채와 맞바꾸는 계약을 맺자고 제안했다.
정씨는 양씨에게 “당신은 해당 업체에 10억원을 투자했고, 나는 이 업체에 10억원의 빚을 졌으니 서로 상계 처리하자”며 대신 자신이 소유한 다른 회사의 전환사채 10억원 어치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전환사채는 나중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으로 양씨는 정씨가 소개한 회사의 주가가 뛰고 있다는 말을 믿고 계약했으나 정씨는 해당 주식을 보유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정씨가 양씨에게 전환사채를 줄 생각과 능력이 없었다고 보고 정씨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런데, 유명인 양준혁씨가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사기를 당한 것일까. 그것도 10억원이라는 거액을 순식간에 날린 데에는 '전환사채'라는 달콤한 유혹이 자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생명은 투자를 받는 일이다. 개인 돈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업이 일을 해 이윤을 내려면 먼저 투자를 받아야 한다. 창업자가 직접 자본금을 투자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릴 수도 있다. 투자상품으로 분류하자면 전자가 주식, 후자는 채권이나 은행대출(loan)이다.
기업이 자금을 융통하는 큰 수단 2가지가 바로 주식과 채권이다. 자본시장은 이들 두 가지 상품의 거래시장을 말한다. 그런데 주식과 채권의 특징을 모두 가진 `야누스'가 있다.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CB)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양준혁씨도 바로 이 전환사채의 '늪'에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환사채는 왜 그렇게 달콤한 유혹이 될까.
전환사채는 '채권 +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옵션)' CB를 짧게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처음 기업이 이를 발행할 땐 보통의 회사채와 똑같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 주식전환권이 발동하면 투자자가 원할 때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주가상승에 따른 차익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일단 주식전환권을 행사하면 그 다음부터는 채권이 아닌 일반 주식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전환사채는 주식과 채권의 회색지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회사의 전망이 좋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지금은 비록 회사채로 있지만, 그 회사의 기술력이나 영업능력이 뛰어나 앞으로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시장의 '확신'이 있어야 그것이 주식으로 전환되었을 때 차익을 남길 수 있다.
CB는 한 단계 도약을 노리지만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채권과 주식의 장점을 모두 취하려는 투자자들에게 폭넓게 이용된다. 왜 그럴까? 우선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CB는 자금을 끌어 모으는 비용, 즉 이자비용은 줄이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식전환권리를 주기 때문에 CB의 이자수준은 일반 채권에 비해 낮다. 그럼에도 나중에 주식을 현금화할 때의 '한방'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다.
현재 재무상태가 취약하지만 연구개발이나 혁신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하려는 기업, 거래실적이 적어 자금조달조건이 좋지 않지만 미래를 자신하는 중소기업에게 CB는 자본금확충이나, 채권발행을 대신할 좋은 대안이다.
좋은 의도는 아니지만 기업들 중에는 CB 발행 시 투자자에게 전환권 행사가액을 낮게 정해, 유상증자에 비해 전환사채를 이용하는 것이 자금조달 측면에서 손쉽다는 것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해당기업의 주식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은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CB는 채권과 주식의 투자이득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옵션을 준다. 일반채권보다 다소 낮지만 일정한 이자소득이 보장되는데다 기업의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할 경우 전환권을 행사해 주식매각차익을 노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회사의 경영구조를 개선해 수익을 노리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중에서는 CB를 이용한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초기 채권으로 투자한 금액을 경영개선 과정을 보아가며 주식으로 전환해 회사의 자본건전성을 높여주면서, 펀드의 수익도 높여가는 의중인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번의 양준혁씨 경우처럼 아예 전환사채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해서 속이는 경우는 좀 드물다. 그것보다는 회사의 전망이 밝지 않은데, 마치 거대한 수익을 올릴 것처럼 유인해 전환사채를 사게한 뒤, 일종의 '먹튀'를 하는 것이다.
회사의 성장 잠재력이나 가치, 매출액 등을 뻥튀기하는 '기술'만 있으면 이런 '사기'는 쉽게 이뤄질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전환사채는 투자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내지르는 일종의 '베팅'인 셈이다. 그래서 투자자의 책임과 정밀한 기업분석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임석우 인턴기자 rainstone@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