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성 담론'에 대한 무지를 당당하게 드러내 비난을 자초했다.
그는 지난 9월 19일 당 혁신위원회가 주최한 여성정책 관련 토크콘서트에서 “트렌스젠더는 들어봤는데 젠더폭력은 무슨 뜻이냐”고 물어 빈축을 샀다. 한국당의 젠더감수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에서 성평등 문제의 기본 개념인 ‘젠더(사회적 성)’ 뜻조차 알지 못하는 모습을 노출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홍 대표가 '알면서도 일부러 성 담론을 무시하기 위해 거짓으로 모른 척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평소 남녀평등같은 주제에 대해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온 홍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의도적으로 거부감을 표출했다는 의혹도 제기중이다.
홍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참석자들이 “집사람”, “지금은 여성우월 사회” 등 발언을 이어가면서 ‘마초에서 여성으로’라는 부제를 단 토론회가 ‘마초에서 다시 마초로’ 토론회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대표는 이날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여성계 인사들과의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 강월구 교수(강릉원주대학교 초빙교수)가 여성 인권과 젠더폭력 문제에 대해 발제를 마친 뒤 홍 대표는 발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젠더폭력이 뭔가”라고 물었다. 이어 “트랜스 젠더는 들어봤는데, 젠더폭력이라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재차 말했다.
강 교수가 “권력의 차이로 인한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생기는 성폭력, 데이트 폭력, 부부 강간 등의 폭력”이라고 설명을 덧붙이자, 이번엔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반박하고 나섰다. 류 위원장은 “우리사회는 성평등을 넘어서 오히려 여성이 우월적 지위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 들기 때문에 강 원장 얘기는 좀 지나치다”고 했다.
참석자들 사이 긴장감이 흘렀다. 사회를 맡은 박성희 혁신위원은 “발언이 아슬아슬하다”며 자제를 요구했다. 이인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부회장은 “본인 경험이 전체인 것으로 말하면 위험하다”, 채경옥 여기자협회장은 “당 대표는 젠더폭력이 뭐냐고 묻고 류석춘 위원장이 그에 부연설명 한 내용을 보니 자유한국당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채 회장은 그러면서 “한국당이 일반적으로 영남의 마초, 꼴통 이미지가 강한데 그런 것을 여과없이 자꾸 드러내는 것이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홍 대표가 몰라서 솔직하게 말했다고 보지만 그만큼 최대야당 대표하는 분이 이 이슈에 관심이 없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강효상 의원이 홍 대표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진 못했다. 강 의원은 “집사람이 젠더 문제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저도 몰랐을 것”이라며 수 차례 성차별적 용어인 ‘집사람’이라는 표현을 써 스스로 메시지를 약화했다.
홍 대표 역시 이후 한국당에 대한 여성계의 편견을 깨줄 것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집사람’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집에 가면 집사람 말을 거역해 적 없다. 시키는 대로 37년을 살았다”면서 “시키는대로 하고 사는데도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면 표현이 투박해 (오해를 받는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이에 대해 채 회장이 “사회 전체적인 여성의 지위와 젠더 평등을 자기 가정 문제로 가져가 ‘나는 얹혀 산다’고 하는 것이 전형적인 꼰대 발언”이라고 지적하자, “부정적으로 보면 한없이 부정적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홍 대표의 “버르장머리” 발언도 문제가 됐다. 홍 대표는 이날 한국당이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에 대한 입법보조원 기회를 주는 데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의원들 버르장머리를 반드시 고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강월구 교수는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니 말이 인격인데 여기에서도 가부장적인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라며 “의원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데 대등한 관계에서 평등하게 소통해야지 ‘내가 맞으니 나머지는 따라와’라는 인식이면 가정에서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홍 대표는 이날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성, 청년들의 50% 공천을 목표로 하겠다”는 등 발언을 내놨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당의 ‘마초’ 이미지를 오히려 강화하는 데 그쳤다.
이날 홍 대표는 앞서 첫 발제 강연을 듣던 중 5~7분간 눈을 감고 공개적으로 졸기도 했다. 홍 대표 앞에는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카메라 10여 대가 녹화 중인 상황이었다. 일부 카메라 기자들은 촬영 중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고, 한 취재기자는 "(홍 대표가) 꿀잠 주무시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4일 예고 없이 연세대 사회학과 수업에 1일 특강 연사로 나타난 홍 대표는 "홍 대표가 부인에게 '줄포 촌년'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한 정당 대표가 부인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나"란 지적에 "(제가) 경남 출신인데 경상도에선 그걸 여성 비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친근한 말"이라고 답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그렇지 않아도 보수 일변도의 색채가 짙게 깔려 젊은층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는 게 당의 현실이다. 이번 여성 토론회도 홍 대표의 평소 남녀차별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야당의 당 대표가 여성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은, 여성계와의 접점찾기라는 1차적 당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멋대로 발언을 하고, 토론회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꼰대 언행으로 오히려 당의 이미지를 '늙고 꽉 막힌 당'으로 만들어 놓아버렸다. 홍 대표의 기행이 어디까지일지, 당 내부에서도 한숨 소리가 절로 새 나오고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