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건이 터질 때면 으레 따라다니는 망령같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관련인물의 자살이다. 특히 권력형 비리 사건은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데다 정권도 상당히 주목하는 경우라 수사도 압박이 심한 편이다.
결국 일이 터졌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비리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가운데 김인식 부사장이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김 부사장은 이날 오전 경남 사천시 KAI 직원숙소용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전 8시42분쯤 김 부사장이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것을 KAI 직원이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사장은 사흘간 이라크 출장을 갔다가 사건 전날인 20일 저녁 해당 아파트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파트에서는 술병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사망 현장에서 유서를 발견해 김 부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타살 혐의점은 없는 상태다.
3장 분량의 유서에는 "잘해보려고 했는데 누를 끼쳐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현장 검증을 실시하고 있다"며 "유서 내용을 바탕으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김 부사장은 최근 검찰의 KAI 비리혐의 수사와 직접 관련성이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현재까지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거나 소환통보를 받은 적도 없다.
한편 KAI 김인식 부사장은 공군 준장 출신으로 KAI에서 수출사업을 총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생인 김 부사장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제8전투비행단 통제기조종사, 합참의장 보좌관, 국방부 KFP사업단 주미사업실장, 항공사업단장 등을 지냈다.
준장으로 전역한 그는 2006년 KAI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주재사무소장으로 민간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수출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수출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라크 FA-50 경공격기 등의 수출을 성사한 인물로 전해졌다.
김 부사장은 최근 KAI에서 불거진 방산·경영 비리와 관련, 현재까지 검찰 조사를 받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칼끝이 방산 비리 전반을 향하고 있는 만큼 수출 업무 책임자로서 상당한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검찰 수사를 받아오던 하성용 전 사장이 전날 긴급체포된 데 이어 김 부사장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KAI 직원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KAI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통해 김 부사장 관련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너무 충격적"이라며 "관련 부서에서는 자세한 상황을 파악 중이다. 상당수 직원은 일손을 놓은 채 후속 뉴스를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 부사장은 검찰 수사를 받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며 "평소 인품이 좋은 분인데 극단적 선택을 해 당황스럽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부사장을 잘 안다는 한 직원은 "김 부사장이 하승용 전 사장과 친분이 두텁고 회사에 대한 애착심도 커서 최근 하 전 사장 긴급체포 등 영향으로 책임감을 느낀 것 같다"며 검찰 수사를 받지 않은 김 부사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을 추측했다.
그는 이어 "2개월여간 방산비리 수사로 회사와 지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제는 수사를 마무리하고 회사가 정상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난 2015년 해외사업본부장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당시 김인식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KAI는 미국 고등훈련기(T-X) 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수출 사업전략과 해외고객 대응체제를 일원화하겠다는 전략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KAI 관계자는 김인식 부사장 등 인사개편이 “한국형 전투기 KF-X 등 대형 사업을 조기에 안정화하고 수출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 설명한 바 있다.
김인식 부사장은 지난 2월 KAI 임원진들의 주식 매입에 적극 동참하며 애사심을 보이기도 했었다. 당시 김인식 부사장은 이달 15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KAI 1055주를 장내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입 규모는 5860만원이었다.
한편 민간 방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대한민국의 T-50 고등훈련기와 기동 헬기 수리온을 개발하며 주목 받았다. 2017년 현재 대한민국 최대 방산업체로, 줄여서 ‘카이(KAI)’ 또는 ‘한국항공’이라고 부른다.
더욱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김대중 정부 시절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자에 시달리던 항공사를 통폐합하는 일의 일환으로 1999년에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을 통합해 설립된 항공기 종합 개발 회사로 알려져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주요 사업으로 독자 개발 항공기 외에 항공기 부품, 헬기, 미사일, 인공위성 발사체,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고 다른 회사의 항공기에 대하여 개조, 정비, 성능 개량 사업 등이 손꼽힌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지분 26.75%)이며, 현대자동차 및 한화테크윈 2개 회사도 각각 5%, 1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자살한 김인식 부사장은 검찰에 아직 소환도 되지 않은 상태라 그 배경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 3~4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다. '미안하다'는 말이 있었던 것 외에는 아직 전해진 내용은 없다. 김 부사장이 회사 전체를 위해 스스로 '희생양'이 된 것인지, 아니면 본인에게 직접적인 수사 칼날이 옴에 따라 그 부담으로 자살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김 부사장의 자살로 검찰도 진행중인 수사에 대해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정치적으로도 야당이 쟁점을 삼을 수 있고, 사천 등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정권의 '탄압'에 대한 불만이 쏟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