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된 지 78년 넘은 책이 미국의 한 도서관에 반납됐다.
미국 WPRI 방송은 매사추세츠의 애틀버로 공립 도서관 책 한 권이 78년 10개월 만에 돌아오게 된 사연을 22일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한 남성은 이 주 초 친구네 지하실 청소를 돕다가 우연히 책을 발견했다며 19세기 미국 작가 티모시 세이 아서가 쓴 '더 영 레이디 엣홈 (The Young Lady at Home)'이라는 책 한 권을 도서관으로 들고 왔다.
에이미 리링거 부관장은 "책에는 우리 도서관 도장이 찍혀 있었고, 대출 카드상 반납일은 1938년 11월 21일로 돼 있었다"며 "안타깝게도 책 상태는 책장에 꽂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나쁘다"고 전했다.
도서관 연체료 규정에 따르면 78년 10개월간 연체료는 모두 2800달러 (한화 약 318만원)로 전해졌다.
도서관 측은 미국 경제의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절 대출자가 반납을 깜빡한 것으로 보고 벌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다.
리링거 부관장은 "도서관에서 15년간 일하며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르고 반납된 책은 처음"이면서 "도서관 책은 모두의 것이라는 점을 존중하고 반납한 건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도서관 책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갖다줘야 다른 '우리'들이 또 그것을 볼 수 있다. 공공재다. 같이 나누는 것이다.
굳이 비교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국인의 '우리들 책'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최근 한국 주요도시 지하철에 비치해둔 '무료 도서관'들 가운데 문을 닫은 곳이 많다고 한다. 지하철 도서관의 책이 잇따라 분실되면서 아예 폐쇄를 하는 것이다. 관련 기관들이 책 분실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한다. 사라진 책을 대신해 새로 기증받은 책을 책장에 채워넣고 있지만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1월부터 경의중앙선에서는 지하철 도서관인 '독서바람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열차 안에서 탑승객이 스마트폰을 보기보다 독서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열차 객실 1량에 테마 서가를 설치, 도서관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출범 7개월 만에 비치됐던 500여권의 책 가운데 80여권이 사라져 추가로 기증받은 책 100권으로 공백을 메웠다. 대구시도 지난해 3월 중순부터 대구동부도서관을 통해 아양교역에서 시민행복문고를 운영 중이지만 역시 책 800여권 중에 120여권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방정환재단이 서울 지하철 3호선 교대역 한 켠에서 관리 중인 시민기부 도서관 작은물결공유서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재단 관계자는 "요즘도 한 달에 수십권이 사라지고 있다. 하도 분실이 많아 도서관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가 없는 시간에는 어린이칸을 제외하면 모두 닫아놓는 데도 이렇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메트로 차원에서 운영했던 역내 양심도서관은 아예 폐쇄된 곳도 많다. 메트로에 따르면 구의 문래 녹번 금호역을 제외한 나머지 역에서는 모두 도서관이 문을 닫았고 남아 있는 곳도 운영권이 메트로가 아닌 지역 교회 단체로 넘어간 상태다. 메트로 관계자는 "양심도서관은 책 분실이 많은데다 기증도서로만 책장을 채우다 보니 신간이 아닌 경우가 많아 활성화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병혁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 결여와 나 자신만의 이익을 강조하는 교육이 결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지하철역 같은 공공장소에 비치한 책이 많이 없어지는데 요즘 우리 사회에는 도덕의식, 시민의식 같은 것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며 “내 것이 아닌 공공의 것은 주인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갖다 쓰고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흔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며 “가정이나 학교에서 나 자신만을 생각하도록 가르치면서 우리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으로,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제는 공공기관의 무료 책에다 '훔친 책'이라고 써놔야할지도 모르겠다. 목욕탕의 한 주인이 수건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수건에다 크게 '훔친 수건'이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부끄럽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