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순씨는 지난 10월 12일 경찰에 출두하면서 "이혼하겠습니다. 김광석 씨하고. 모든 인연을 끊고 싶어요"라는 말을 던졌다. 죽은 사람인데 이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드물고 기이한 단어로 와닿는다.
서 씨는 김광석 일가와 얽힌 모든 악연을 끊고 싶다는 취지로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서씨가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면밀히 검토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 현행법상이나 일본에서도 숨진 배우자와의 이혼은 불가능하다. 이미 김씨의 사망으로 결혼 관계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 혼인이 해소되는 경우는 이혼을 하거나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한 경우(실종 선고 포함)가 해당된다는 것이다. 김광석이 이미 사망했으므로 이혼과 같은 법적 절차를 밟을 필요 없이 자동적으로 서씨의 결혼 관계는 종료됐다는 것이다.
다만 혼인에 의해 발생했던 인척 관계는 이혼과 달리 소멸하지 않는다.
서씨가 언급했던 일본의 '사후이혼'은 배우자가 사망한 뒤 그 시댁이나 처가 등과 절연을 원하는 사람은 '친인척 관계 종료 신고서'를 관공서에 내 인연을 끊을 수 있다.
사후이혼은 배우자가 죽은 뒤에 이혼한다는 뜻의 신조어로, 사망 뒤 배우자 가족들과의 인연을 끊어버리거나 배우자와 같은 묘에 안치되지 않는 것 등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 사후이혼이 확산되고 있다는 일본에서조차 법적으로 사망 후 이혼은 허용되지 않는다. 실제 법적인 이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사후 이혼은 법률적 정식 용어는 아니며 혼인으로 인해 발생한 배우자 가족과의 인척 관계를 정리하는 일본의 '인족(姻族)관계종료신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제도는 일본 내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최근 사후 이혼이란 유행어를 타고 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절차를 신청하면 사망한 배우자의 재산을 상속하거나 유족연금을 받으면서도 배우자 가족들의 동의와 관계없이 서류 제출만으로 이들과 법적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사후 이혼 사례가 많아지는 만큼 이에 대한 인식과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911건이던 인족관계종료신청은 2015년 2783건으로 늘어 5년 사이 약 45% 증가했다.

일본의 종합잡지 슈칸 포스트는 최근 인터넷판 기사에서 "지난 호에 게재한 '아내가 기뻐하는 사후 이혼 사례집'이 인터넷에 게재된 후 댓글란에 여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찬반을 표시하는 한 댓글에는 7000개의 답글이 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남성 독자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아내가 기뻐하는'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아이러니하게 정말로 아내들을 기쁘게 하는 기사가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대체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을 이유로 사후 이혼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서류를 제출하기 전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서 씨는 숨진 남편 가족에 대한 원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김 씨 가족은 장애아가 있어도 도와주지도 않고, 자기들은 식구들하고 알콩달콩 살면서 서연이(숨진 딸)한테 한 번도 따뜻한 밥을 챙겨준 적이 없다. 김광석 추모사업을 하고 남은 돈이 1억5000만 원밖에 없다는데 이 부분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서 씨의 심경고백은 작심한 듯 18분간 이어졌다. 그는 "혼자 내 이름으로 살고 싶다. 누구랑 결혼하고 그럴 일 없을 것이다. 이제는 개인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광석의 남은 재산도 (10년 전 숨진) 서연이를 위해 장애인복지재단에 다 기부할 생각"이라고 했다.
2007년 숨진 서연 양(당시 16세)에 대한 유기치사 혐의에 대해 서 씨는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아픈 딸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병원 기록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며 "한 치의 의혹도 없다. 만일 거짓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할복자살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고급 아파트가 있거나 저작권 수익이 100억~200억 원이라는 의혹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남긴 돈을 펑펑 쓰며 호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몰아갔다. 나도 사생활이 있는데 더 이상 사회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영화 '김광석'을 만들어 자살한 김 씨의 타살 의혹을 제기한 이상호 감독(전 MBC 기자)에 대해선 "20년 동안 쫓아다니며 사생활을 파헤친 사람을 어떻게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겠냐.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배급하고 그러는 모습에서 그분의 정신 상태가 정상인지 의심스럽다"고 성토했다. 이어 "그가 많은 사람에게 의혹을 제기해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똑같이 영화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되갚아 주겠다"고 말했다.
서해순씨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여러가지 이슈들을 던지고 있다. 한 유명인의 자살 미스터리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 저작권을 둘러싼 유족간의 갈등, 장애인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불안정한 삶 등 여러가지 문제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여기에 '사후이혼'이라는 생소한 단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김광석은 죽음은 사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사회를 음산하게 뒤덮고 있는 것 같다.
최수정 인턴기자 soojung@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