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장에서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강원랜드 함승희 사장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함 사장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강원랜드는 현재 ‘채용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전ㆍ현직 국회의원과 의원실, 중앙정부 부처, 지자체장, 언론인, 지역토호세력 등 수백명의 인사들이 채용 청탁을 한 의혹 때문이다.
여기에 함 사장은 초호화 관용차 논란, 함 사장이 이끌어온 학술단체인 ‘포럼오래’ 회원들을 기용해 기업을 사조직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포럼오래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외곽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이날 국정감사장에서 정우택 원내대표는 강원랜드 채용 청탁자 중 민주당 의원도 있는지 질의했다. 현재까지 채용비리 의혹을 받는 의원으로 실명이 거론된 것은 대부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정 원내대표는 함 사장에게 “지난 9월 15일 강원랜드 직원이 한 방송 시사프로에서 인사문제에 대해 증언을 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유력실세가 여기 있다고 했는데 알고 있나”고 질문했고, 함 사장은 “방송을 못 듣고 사후에 보고는 받았다. 목소리만 나와 누군지 모르고 있다. 직원이 누군지 파악 중”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친박몫으로 강원랜드 대표로 간 함 사장으로선 문재인 정권에서 '훗날'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임기는 다음달 끝나지만 각종 비리혐의로 자칫 영어의 몸이 될 수도 있다. 함부로 민주당 의원을 발설했다간 밉보여 더 큰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 당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함 사장이 이날 정 원내대표의 질의에 꼬리를 빼며 두루뭉수리 넘어가려고 한 것도 이런 뒷배경이 숨어 있다. 일각에서는 함 사장이 곧 퇴임하기에 이날 국감에서 '말년병장'의 여유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저런 함 사장의 의도와 상황을 간파했는지, 정 원내대표는 초반에는 고분고분 질의를 하다가 이내 폭발하고 말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 있고, 다른 친박 의원들도 탄핵사태로 치도곤을 당하고 있는 판에, 혼자 살려고 자유한국당에 유리한 대답을 해주지 않는 함 의원이 얄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처음부터 마음속에 '칼 한자루'를 들고 국감장에서 조우한 것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의 공격은 매서웠다. 그는 함 사장이 핵심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어물쩍거리자, “한 달째 파악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아느냐 모르느냐 답변을 똑바로 해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이에 함 사장은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다음 질문 하시죠”라고 답을 넘겼다. 바로 이 부분이 뇌관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쓸데없는 질문 하지 말고 빨리 다음 질문이나 해봐"라고 들릴 만한 뉘앙스였다.
평소 점잖다는 말을 듣지만 상당히 강단있다는 평가를 듣는 정 원내대표.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는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다음 질문하시죠? 함 의원 국회의원 할 때 그따위로 국감 받았어요?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다음 질문하시죠 그게 무슨 태도야”라고 소리쳤고, 함 사장은 “지금 나한테 반말합니까?”라며 맞받았다. 정 원내대표의 호통에 전혀 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 원내대표는 “지금도 말대꾸 하잖아. 이러니깐 강원랜드가 비리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3년간 이런 문제를 해결 해야지 창피한줄 알아야 한다”며 “왕년에 나도 국회의원했으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가?”라며 함 사장에게 호통을 쳤다.
함 사장이 "답변을 드릴까요?"라고 대꾸하자 정 원내대표는 흥분한 목소리로 "듣지 않겠다"고 말을 끊었다.

산자위 장병완 위원장은 "함승희 사장이 불필요한 답변을 해 국정감사 진행에 바람직하지 못한 답변을 했다“며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국회의원은 무엇보다 선수가 중요하다. 나이 이력을 떠나 국회 등원이 최우선이다. 가끔 대권주자의 경우, 초선이라도 예우를 해주는 경우가 있지만 정치판에서 등원시기와 '선수'가 벼슬이다.
언뜻 보기에 느슨해보일 수도 있지만, 행사 때마다 의원들의 의전은 상당히 민감하게 취급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선수와 등원시기다.
또한 선수 등원시기가 차이나더라도 일단 '배지'라면 동류의식(한패의식)과 집단의식이 상당히 강하다. 의원출신 장관들이 인사청문회에서 그렇게 심하게 추궁을 당하지 않는 것도 그러한 '동류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 특히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원들은 그들만의 '선민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위계질서도 확실하고 그에 상응하는 동류의식으로 그들끼리 확실히 챙겨주는 게 있다.
이번 국감에서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과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간의 '싸움'은 의원간 위계질서와 동류의식이 뒤엉켜 빚어진 해프닝으로 보인다. 정 원내대표가 "왕년에 나도 국회의원 했으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태도에요?"라고 대응한 부분이 이런 기류를 짐작케 한다.
두 사람의 싸움을 국회의원과 피감기관장간의 기싸움으로 볼 수도 있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사람 사이의 '정치사회적 경력'에서 오는 묘한 자존심 대결도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두 사람의 사회적 경력부터 보자. 함승희 사장은 1951년생으로 53년 정 원내대표보다 두 살이 많다. 나이는 함 사장 승.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의 경력도 함 사장이 큰소리 칠만하다.
함 사장은 1980년 22회 사시에 합격한 뒤 서울지검 특수부 등을 거쳐 92년에 대검 중수부 검사를 지냈다. 중수부 검사 시절 김종인 의원을 구속기소 하는 저력을 보여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변호사로 일하다 2000년 16대로 국회에 등원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1980년대 행정고시를 거쳐 1991년 경제기획원 법무담당관 등을 거치며 1 동안 정통 경제관료를 역임했다. 국회 등원은 함 사장보다 빠른 15대 국회 때였다. 하지만 그 전의 사회경력만으로 볼 때 '사시' 출신에 중수부 검사의 경력이 정 원내대표를 압도한다.
함 사장 때의 대검 중수부 검사는 정치인들에게도 저승사자라고 불릴 만큼 '갑'의 위치에 있었다. 함 사장이 나이로 보나, 중수부 검사로서의 자존심으로 보나 '지금 나한테 반말하느냐'고 바짝 대들 만하다.
하지만 국회 등원 뒤에는 정 원내대표가 이력이 크게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국회 등원이 한 기수 빠르다. 정 원내대표가 15대 때 충북 진천음성에서 첫 당선됐고 함 사장은 16대 때 서울 노원갑에서 처음 등원했다. 이후 정 원내대표는 비단길을 걸었다.
16대 의원을 지낸 뒤 해양수산부 장관, 충북도지사 등을 거친 뒤 다시 19, 20대 의원으로 활동중이다. 대선주자급이다.

반면 함 사장은 16대 의원을 거친 뒤 부침을 겪었다. 17대 때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했지만 26.7%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쳤다. 물론 정 원내대표가 당선이 비교적 쉬운 충북지역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함 사장은 서울의 치열한 지역구에서 낙선한 점도 있다. 그 뒤 함 사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17대 대선 후보 클린선거대책위원장으로 변신하며 첫 친박인연을 맺었다.
2008년에는 공천심사위원장까지 거치며 위상을 높여나갔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렇다할 정치적 이력이 없다가 2014년 박 전 대통령이 과거의 공헌을 생각해 대표적인 챙겨주기 자리인 강원랜드 사장에 임명된 것이다.
한때 당의 공천심사위원장까지 맡은 경력 치고는 자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저물어가는 함 사장에게 그것마저도 큰 '은혜'였는지 모른다.
이런 두 사람의 사회정치적 경력을 알고 국감 '싸움장'으로 다시 가보자. 정 원내대표는 선수도 훨씬 높고(4선), 정치적으로도 거물급이라 질의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함 사장도 4년 차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의정할동을 했고, 사회경력도 중수부 검사라는 자존심 때문에 쉽게 정 원내대표의 기선제압이나 호통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결국 사단이 벌어졌다. 함 사장의 답변 태도는 사실 문제가 있었다. 국감이라면 그 모든 과정을 줄줄이 꿰고 있는 정 원내대표도 '다음 질문 하라'는 답변을 처음 들어보았다고 했을 만큼, 오만한 태도의 답변이었다.
아마 두 사람이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질의응답을 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멸문된 집안의 자식들이라 그런지, 존중이나 배려보다 그냥 기분대로 국감에 임했던 것 같다.
함 사장으로서는 어찌됐든 현 정권의 눈치를 보아야 할 입장인 반면, 정 원내대표는 그런 함 사장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해마다 국감 스타가 탄생한다. 긍정적으로 이철희 의원같이 열심히 해서 스타로 부상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장제원 의원같이 분위기 딱 보고 내지르며 카메라 플래시 받는 방법을 잘 아는 정치인이 크게 주목받기도 한다.
하지만 정우택-함승희의 이번 대결은, 망한 집안의 자식들이 '이제 앞뒤 볼 것 없으니 어디 기분대로 한번 해보자'는 X싸움 같이 보여 볼썽사나웠다. 구치소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저런 참모들의 보좌를 받았으니 감옥으로 갈밖에.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