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에 대한 재개 결정이 내려졌다. 시민 471명이 한달 동안 숙의하고 공론조사를 한 결과 '공사 재개' 59.5%로 '중단' 40.5%에 크게 앞섰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 1조 6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건설비가 이미 들어간 시설을 건설중단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과학’의 승리라는 해석도 있다.
19%라는 비교적 큰 차이로 공사재개 권고안이 내려지면서 향후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그렇게 크지는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원자력 ‘폐기’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이번 재개 권고가 정책수립과 추진을 되돌아보는 큰 계기가 될 것이다.
일단 권고안이 '건설재개'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문재인정부와 여당에게 정치적 타격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에 대한 속도조절이 불가피하고 건설일시중단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문제는 물론 사회적비용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0일 정부에 건설재개를 권고함에 따라 공론화 기간 중단했던 신고리 5, 6호기 공사가 조만간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공론화는 찬반이 첨예한 사안을 사회적 논의로 결정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3개월 동안의 공사 중단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공론화 기간인 3개월만큼 완공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20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공론화 기간 3개월 동안 일시중단으로 발생한 협력사 손실보상 비용은 약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비용은 자재와 장비 보관 등 현장 유지관리비용, 공사 지연이자, 사업관리를 위한 필수인력 인건비 등이다. 한수원은 협력사 손실보상 비용 10000억원을 총사업비 중 예비비(2782억원)에서 처리하기로 이사회에서 의결한 바 있다.
한수원은 앞으로 정확한 비용을 산정하고 협력사와 체결한 계약 조건에 따라 피해 보상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수원이 정부의 협조 요청에 따라 일시중단을 결정했지만, 이 비용을 정부에서 보상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앞서 한수원은 지난 7월 7일 ‘신고리 5, 6호기 건설 일시중단 관련 법률 검토’에서 “정부 정책에 협조하기 위해 이사회 결의에 따라 공사 일시중단을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손실보상 청구가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봤다.
신고리 5, 6호기 총 사업비는 약 8조6000억원이며 일시중단 전까지 약 1조6000억원이 집행됐다. 이런 경제적 비용 손실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명확한 입장과 보전대책이 필요하다. 건설비용 자체는 손실을 입었지만 사회적 갈등 이슈를 ‘숙의’ 과정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이익도 분명히 있다.
자유한국당은 호재를 만났다. 한국당은 그동안 공론화위원회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는 구성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졸속으로 중단 결정을 한다면 그 자체로 대통령으로서 국정책임을 방기한 무책임의 극치가 될 것이라고 비난해왔다. 특히 한국당은 원전 건설중단에 투입되는 비용문제, 전력수급상황 등을 명분으로 건설재개를 강력하게 밀어붙여 이번에 소기의 정치적 이득을 마련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번 권고안이 썩 불리한 것은 아니다. 일단 공론화위원회가 향후 원전정책에 대해 정부가 무조건 밀어붙일 경우 그 경제적 사회적 손실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갈등 요소를 무조건 경제적 이익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이번 공론화 과정을 통해 드러난 셈이다.
더구나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사 케이스가 아닌 전체 원전 유지 정책에 대해 설문한 결과, 참여단의 53%가 '원전을 축소하고 신재생 에너지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큰 틀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에너지 정책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이번 재개 권고안 결정을 배경으로 정치적 공세를 펼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한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국회를 통한 ‘대의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신고리 원전 건설같은 첨예한 사회갈등 이슈를 국회같은 합의된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다 담아낼 수가 없다. 대의를 받들어 정책을 추진하는 청와대로서도 무조건 밀어붙일 수 있는 이슈도 아니었다.
보수층에서는 이번 재개 권고를 빌미로 경제적 손실과 정책의 일관성 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실수’를 한 것이라고 공격한다. 일각에서는 공론화위원회라는 정체불명의 기구를 만들어서 정부가 무책임한 여론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그에 따른 ‘보이지 않는 비용’도 지불할 때가 있다. 눈에 띄는 경제적 손실만 손해가 아니다.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그 과정에서 극한 대립이 발생하고, 정부는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대한 유.무형의 비용이 더 크다고 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리 손해본 장사를 한 게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공론결정 과정에서 제시된 시민참여단 53.2%의 핵발전소 축소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핵발전소 안전성 강화, 신규 핵발전소 중단, 노후 핵발전소조기폐쇄 등 임기 내에 실질적으로 핵발전소를 축소하는 것이 시민참여단의 뜻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탈원전 에너지 정책에 대한 큰틀에서의 사회적 합의가 제시된 것은 장기 정책추진 과정에서 부담을 던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공론결정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사회갈등 아젠다에 대해 구성원들이 '숙의'를 통해 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무형의 신뢰 자산을 얻었다는 점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