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에 한바탕 전운이 몰아치고 있다. 당 윤리위는 10월 20일 여의도 당사에서 윤리위를 열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 최경환 의원에 대해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7개월여 만에 한국당이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절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탄핵정국과의 절연이라기보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앞둔 임시변통 길닦기 성격이 짙다. 당연히 야당의 필수 항목인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가 빠져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잘 한 게 없지만, 현재의 홍준표 대표도 봐줄 게 별로 없다는 뜻이다. 사안마다 즉흥적인 대처로 보수통합의 길을 오히려 더 멀게 하고 있는 게 바로 홍 대표라는 인식이 강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잘’ 생각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당 체질 개선은 해야 하지만, 서청원 최경환이 누구인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베테랑들이다. 홍준표 내공으로 쉽게 제압할 인물들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 쉽게 출당이 가능하겠지만, 그 두 거물은 아니다.
1차적으로 당 밑바닥에서부터 명분을 축적해 힘을 모은 뒤 한칼에 일합을 겨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시기가 과연 그럴 때일까? 회의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서슬이 퍼래서 태극기 부대들을 선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압박을 자유한국당 내 친박의원들도 느낄 것이다. 서청원 최경환 의원이 홍 대표에 본격적으로 저항할 경우 세 싸움이 만만치 않다.
이번 친박계 내쫓기 프로젝트도 그리 잘 될 것 같지 않다. 당 내홍만 격화시켜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당 이미지만 더 누더기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일단 홍 대표는 친박 거물들을 몰아낼 맷집이 안 된다. 그를 코너에서 지원해줄 자파 세력이 별로 없다. 강력하게 밀어붙이는-친노세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친위대도 없다.
절차상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윤리위에서 탈당 권유를 받은 뒤 열흘 내 탈당하지 않으면 열흘 뒤 자동 제명된다. 현역의원의 경우 의총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아내야 한다.
친박들은 박 전 대통령은 출당을 막을 길이 현실적으로 없지만, 서·최 의원에 대해서는 표 대결 시 실력행사를 시도해 오히려 홍 대표의 당내 입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의원은 "서·최 의원에게 돌을 던질 의원이 재적 의원의 ⅔ 이상이 돼야 한다는 말"이라며 "홍 대표도 표 계산을 해보면 의원들을 모으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런 상황까지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제명하려면 의원총회에서의 표 대결이 불가피한 서·최 의원에 대해선, 친박 의원들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반발하는 상황이다.
한 의원은 "지도부가 서·최 의원에 대한 실질적 제명 절차까지 밟기 시작하면 당이 분당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며 "바른정당 의원 9명 받으려다 이쪽에서 20∼30명을 잃을 수 있다. 홍 대표는 손익계산을 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런 당내 세력분포 때문에 최경환 의원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는 최 의원은 윤리위 결정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변호사도 없이 외로이 투쟁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강제 출당 요구는 유죄를 인정하라는 정치적 패륜행위이고 배신행위"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징계에 대해서도 '코미디'로 규정하며 "부당한 징계결정에 대해 절대 승복할 수 없으며 더더욱 당을 떠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더구나 홍 대표에 대해서도 "권력욕에 사로잡혀 당을 사당화하는 홍 대표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전 대통령과 서청원 의원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서 의원의 경우 지금까지의 입장 등을 종합해볼 때 두 사람 모두 윤리위 결정에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앞서 지도부가 여러 루트로 자진탈당 의사를 타진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당의 연락을 거부하고 있다. 스스로 나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정치권에서는 홍 대표의 ‘친박 청산’에 대해 도대체 정치적 전략은 있는지 되물을 정도로 중구난방식 대처를 비판하고 있다.
일단 명분 축적이 없었다. 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의 의사를 확인하려는 지도부의 노력이 부족했다며 절차적 명분을 문제로 삼고 있다. 홍 대표 입장에서는 빨리 바른정당과 합쳐야 한다는 게 지상목표이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나 친박의원들은 그냥 조용히 나가주기만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친박 의원들은 공개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정갑윤·김진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대출·이장우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각각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계 강행을 중단하라고 지도부에 촉구했다.
홍 대표는 욕심만 앞서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움직임에 마음만 급해졌고, 친박 출당은 저절로 이뤄질 줄 알았다. 윤리위 의결도 졸속으로 이뤄졌다. 최근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논의가 불거지자 급하게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급해진 홍준표 대표가 친박 청산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밀한 전략이 없이 조자룡 헌칼 쓰듯 마구잡이로 아무나 걸려라는 식이 되는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재판을 거부하고 사실상의 장외투쟁에 들어간 것과 맞물린다. 서둘러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끊지 않으면 그의 ‘몽니’가 당 전체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홍 대표 지도력으로는 친박청산은 어림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 출당 논의는 자유한국당 혁신위 초창기부터 논의되던 사안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현역의원 주류를 이루고 있는 친박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관련 논의는 흐지부지 된 바 있다.
또한 홍준표 대표는 지난 5·9대선 당시의 친박청산 실패의 정치적 원죄도 갖고 있다. 홍 대표는 대선 당시 보수 결집을 시도하기 위해 친박 핵심들의 징계를 무더기로 풀어줬다.
지난 5월 4일 경북 안동 유세에서 홍준표 대표는 "친박 중에 국정농단 문제가 있었는데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정갑윤 의원 등을 용서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이 시간에 당 지도부에 (징계 해제를) 요청하겠다"면서 "바른정당에서 다시 들어오려는 사람도 다 용서하자"고 밝혔다.

홍 대표는 대선용으로 이미 친박계들을 써먹었다. 그들에게 면피를 해준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자르겠다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위다. 정치적 배신이다.
현재 홍준표 대표의 ‘친박청산’ 전략에 당과 국민을 향한 진정성 있는 호소나 열의는 없다. 그저 내년 지방선거 선전을 통한 대표 생명 연장 욕심에만 빠져 명분 없는 바른정당과의 통합 계산에만 빠져 있다.
홍 대표는 사심을 깨끗이 포기하고 똑똑한 차세대 주자가 클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야 한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