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당 분당이 가시화되고 있다. 박지원 전 대표가 가장 먼저 ‘움직이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정치적 후각은 단연 정치권 톱 클래스다. ‘쫓겨나는 것’과 ‘제 발로 나가는 것’은 천지차이다. 내침을 당하는 인상을 주기 전에, 선제공격을 하고 나섰다.
박 전 대표는 최근 CBS 라디오에 출연, 진행자가 탈당, 이탈 의지를 밝힌 것이냐고 질문하자 "그렇게 몰아가면 아주 곤란하다"면서도 "제 생각을 들키는 기분"이라고 언급했다. ‘당원’이라면 금기시되는 용어인 ‘탈당’이라는 단어에 대해 직접적으로 ‘찬성’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가장 강력한 탈당 시그널이다.
특히 박 전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와 지역위원장 일괄사퇴 문제를 왜 의원총회에서 소통 한 번 없이 밀어붙이느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이게 올바른 정당이 되겠느냐"며 "이런 일을 하더라도 국정감사가 끝나고 토론해서 해 나갈 수 있는 것이지, 이렇게 드라이브를 걸면 문제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또한 박 전 대표는 "민주세력이 집권을 해야 한다, 햇볕정책을 계승·발전해야 한다, 호남 차별이 없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이 세가지 목표에서 만약 하나라도 일탈하는 것이 생기면 제가 움직이는 것에는 굉장히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탈당’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많은 의원들이 저와 생각을 함께하고 있다. 천정배, 정동영, 최경환, 유성엽 의원이 소통방에 그런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고 전했다.
이는 당 지도부가 통합 논의를 이대로 밀어붙일 경우 박 전 대표를 비롯한 당내 일부 중진들의 탈당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전 대표는 "제게 개별적으로 의사 표현을 한 분도 많다"면서도 "대결적이나 분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어떻게든 서로 소통해 당이 굳건하게 나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에 반대하는 의원이 5명 정도라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단언하면서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합당하더라도 5∼7석 정도가 올지 모르겠다. 이것을 알고는 찬성하던 의원들 수가 많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통합 전제조건으로 박 전 대표의 출당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가 부인한 것과 관련해서는 "군불은 때지 않았다는데 연기는 나고 있다"며 "(유 의원이) 그 전부터 햇볕정책이나 호남 세력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한다는 얘기는 쭉 회자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슬퍼하는 것은 햇볕정책과 호남과는 함께할 수 없다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통합론과 관련해 "절대 반대한다, 안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겠다. 정치는 생물이라니 신중하게 접근하자"면서도 "물론 전격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 당내 분위기로는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도 국민의당에 손을 내밀고 있는 데 대해서는 "과거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소통합이나 영입, 대통합을 할 때에도 DJ화(化)했지 DJ가 JP(김종필)화 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일단 박지원 전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만의 가이드라인이 있다. 햇볕정책 폐기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앞서 제시한 3가지 원칙을 바른정당 입당파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종의 입당 조건이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는 바른정당 유입자를 늘이기 위해 햇볕정책 폐기 카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 대선에서 범보수층 대선후보 자리를 노리고 노선 변경을 시도하려는 의도다. 국민의당의 트레이드마크인 햇볕정책 폐기는 차기 대선을 위한 노선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박 전 대표의 존재 이유도 없어진다.
햇볕정책은 박 전 대표가 사수할 마지노선이다. 안 대표가 계속 이의 폐기를 요구할 경우, 박 전 대표는 다른 호남중진들을 이끌고 전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아직 때를 보고 있지만, 안 대표가 예상 외로 빠른 행보를 보이자 3대 원칙을 내세우며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바른정당 분열이 11월까지 이뤄지고 원내교섭단체를 상실하면 총선 민의대로 다시 3당체제가 될 것"이라면서 "국민의당이 단결하고 중도적 입장에서 선도정당 역할을 하면 국민으로부터 다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바른정당 입당파 의원들이 10명 안쪽으로 그 세력이 미미할 경우 그 효과가 큰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통합’보다는 ‘자강’이 낫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안철수 대표와의 간격이 발생한다. 안 대표는 이번 통합사태를 ‘호남 중진 정리하기’ 차원에서, 대선을 내다본 범보수층 통합의 첫 단계로 인식하고 있다. 박 전 대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다.
이렇게 안철수 박지원 두 기차는 양보없이 마주달리고 있다. 결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상보다 빨리 국민의당 분당 열차는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그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