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공화주의 ‘뜬금포’를 날려 정치권에서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제2창당위원회에서 제기됐던 '공화주의(共和主義)'를 최근 다시 언급하며 "공화가치를 마음에 담고 중도개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저희 방향이란 생각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지난 10월 29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청년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재 여당은 민주, 제1야당은 자유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안 대표는 "양쪽 다 소중한 가치지만 공화가 빠져있으면 안된다"며 "공화가 즉 함께 잘 살자는 것 아니겠나. 한자로 보면 화자가 벼 화자에 입 구자이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함께 살아가는 그런 가치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도 우리가 다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자. 특히 지금 대한민국에 없어선 안될 중요한 가치 아니겠나"라며 "공화정신이 빠져있으면 민주라도 승자독식으로 잘못갈 수 있다. 자유도 공화가 빠져있으면 힘 있는 사람의 세계가 돼버린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당선 수락 선언 시 언급했던 '극중주의' 노선이 변경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저는 일관되게 중도개혁의 길을 말씀드렸다"며 "그건 이념적 노선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중도개혁이란 것은 좌우 이념에 매몰된 것을 뛰어넘어 경도되지 않고 해당 문제를 풀기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것을 뜻한다"며 "그래서 이념 중심 사고방식보다는 문제해결 중심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일관되게 공화,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도 안아주는 따뜻한 정신이 있어야만 대한민국 사회가 지속가능하다는 데 전 의견을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의 ‘공화주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뜨악한 반응이 많이 나오고 있다. 큰틀에서 볼 때 안 대표의 ‘공화주의’가 잘못 됐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품고 ‘공존’을 위한 최선을 길을 만드는 것이 여야가 주장하는 일관된 철학이다.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정치철학의 면을 볼 때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현재의 국민의당 상황과 안 대표의 위치를 볼 때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일관성이 없고 구체성도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안 대표는 극중주의를 표방해왔다. 이말과 공화주의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어떤 예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지 그 구체성이 모호하다. 자칫 구호의 남발이라는 비판을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조급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본인도 제대로 인식하고 정립하지 못한 공화주의 이념을 억지로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도 보인다.
안 대표는 2012년 대선을 앞둔 9월 19일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를 한 지도 5년이 됐다. 안철수 하면 떠오르는 메시지는 새정치다. 새로움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메시지에서 새로운 정치라는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구태 정치인들의 ‘구호 남발’과 이념과 정책을 둘러싼 기회주의적 행태에 대해 실망하고 떠나간 지지자들이 더 많다. 현재의 지지율에서 그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정치의 기본은 구체적이고 단순한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반복적으로’ 던지는 것이다. 김영삼 하면 민주화, 김대중 하면 햇볕정책, 노무현 하면 참여정치, 문재인 하면 소통 이렇게 특징적인 단어가 먼저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한다.
안철수를 떠올려 보자. 언뜻 떠오르는 게 없다. 물론 정치입문이 5년밖에 안 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목표로 정해놓고 그것에 수단을 억지로 대입시키다 보니 자주 그것들이 바뀌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박정희 정권 때 ‘새마을운동’이 그 뜻이 나빠서 국민들이 거부감을 느낀 게 아니다. 그 프레임을 만드는 의도가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공화주의란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안철수 대표가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을 말하는 의도가, 현재 직면한 우리 정치의 본질적 개혁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지지율 상승을 위해 이것저것 좋은 말만 찔러보는 것인지, 국민들도 헷갈리고 있다.
극중주의나 공화주의는 한국 정치에서 그렇게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물론 다당제를 가기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그 이념적 틀을 완성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책과 이념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몫이다.
공화주의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전통으로, 오랫동안 종교 이념 인종 갈등이 심했기 때문에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동의하는 모든 사람은 프랑스 시민으로 인정하고 평등하게 대해준다는 의미다. 필자는, 이 개념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떻게 적용될지 그 구체성이 상당히 모호하다고 본다.
사회적 강자나 약자도 평등하게 포용해야 한다는 것 정도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이 현실정치에 어떻게 적용될지 의구심이 든다. 프랑스의 사회적 전통과 우리 정치 현실과의 괴리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해 보이는데, 과연 이 논쟁이 현재 여야의 다분히 감정적인 정치대립 상황을 볼 때 얼마나 생산성이 있는 것이 될지 의심스럽다.
안철수 대표는 대중 정치인이다. 대중의 언어로 말을 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필자를 포함해서) 공화주의란 말을 사석에서 써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그 뜻을 정확하게 설명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설명 못한다고 해서 그게 현재의 정치문제와 얼마나 본질적인 맥이 닿아있을까.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