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수사'를 은폐하려 한 혐의를 받는 변창훈(48) 서울고검 검사가 투신해 충격을 주고 있다. 병원으로 옮겨진 변창훈 검사는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변창훈 검사는 이날 오후 2시30분쯤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 건물 4층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변창훈 검사는 이날 오후 3시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 등과 함께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변창훈 검사는 이 법무법인에서 상담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변창훈 검사는 2013년 국정원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된 당시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응하기 위해 꾸린 '현안 TF' 구성원이었다. 그는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 심리전단 사무실을 만들고, 심리전단 요원들이 실체와 다른 진술을 하도록 지침을 제시하는 등 사건을 은폐한 혐의를 받아왔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변 검사를 비롯해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 서 전 2차장, 고모 전 국정원 종합분석국장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모두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재판에 대비해 국정원 내부에 만들어진 이른바 ‘현안 태스크포스(TF)’ 구성원들이다.
이번 사건으로 검찰은 크게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이 벌써부터 터져나오고 있다. 변 검사는 유서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자살 동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없다. 다만 변 검사는 대검 공안기획관을 역임하는 등 검찰 내 몇 안 되는, 그리고 갈수록 관련 분야 전문가가 줄어들고 있는 공안통이다. 그동안 공안 업무를 주로 맡아왔는데 이번에 거꾸로 자신이 공안팀으로부터 수사를 받게 된 상황에서 오는 자괴감과 압박감이 상당히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검찰 공안통은 다른 형사 분야 등과 달리 자존심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가관이 확고하고 보수적 성향에 업무 스타일도 대부분 꼼꼼한 편이다. 공안 사건은 피의자들이 진술을 자주 바꾸는 등 검찰이 다루기 상당히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정확한 법리 해석과 꼼꼼한 증거 없이는 유죄 판결을 이끌언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에 비해 투철한 국가관이나 사명감 없이는 공안 분야를 맡기를 꺼리는 검사들도 많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정치 학원 노동 재야 선거 대공 외사 사건 등이며, 대검찰청 공안부가 지휘 총괄한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 공안부는 전국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중요 사안인 경우에는 처리방침도 지시하는데, 각 과에서는 사안에 따라 업무를 분담해 처리한다. 그러나 이른바 공안검사는 1972년 제4공화국(유신체제) 이후 줄곧 학원 노동사건이 많은 지역에서 공안 경력을 쌓은 검사들이 주로 임명됨으로써 검찰에서 가장 각광받는 최고의 엘리트 보직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공안 조작 사건이 자주 발생하면서 993년 출범한 김영삼정부와 1998년 출범한 김대중정부 때는 인권을 중시하는 공안정책을 펴는 등 공안 기능을 축소하였으나, 실효는 거두지 못하였다.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정부에서는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공안검사로 이름을 떨치던 검사들을 보직 해임 또는 보직 변경하는 한편, 공안부의 기능을 축소하는 등 여러 개혁 정책을 펴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공안부 폐지론까지도 나왔었다.
그러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는 다시 공안부가 부상하게 된다. 특히 그 구성원들 가운데 일부는 ‘정권 수호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게 됐다. 이번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변 검사는 대구 심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1년 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했다. 군법무관을 거쳐 1997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부장검사로 승진한 이후에는 주요 검찰청에서 공안부장으로 경력을 쌓았다. 울산지검과 수원지검에서 각각 공안부장으로 근무했다. 2011~2012년에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으로 일했다. 2013~2015년에는 국가정보원에 파견나가 법률보좌관으로 일했고 대검찰청으로 복귀하고는 공안기획관으로 발탁됐다. 이후 서울북부지검 차장을 거쳐 올 8월부터는 서울고검에서 근무했다.
한편 지난달 31일에는 '댓글 수사 방해'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국정원 소속 변호사가 춘천시의 한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 사건 뒤 불과 일주일 만에 또 다시 변 검사가 투신자살하자 문재인 정부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등 2013년 '댓글 사건' 수사방해를 주도한 국정원 '현안 태스크포스(TF)'의 주요 구성원을 구속한 뒤 남은 국정원 수사에 속도를 내려고 했던 검찰의 수사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적폐청산' 밀어붙이기에 대한 속도조절론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영남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권의 초반 적폐청산 작업을 정치보복으로 인식하며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는 것을 감지한 측면도 있다.
더욱이 최근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정 드라이브가 야당 일변도로 적용되는 것도 여권에는 부담이다. 전 정권, 전전 정권 때려잡기 식의 일방적이고 편중된 공세라는 것이다. 여야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춰서 사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반발이 덜 심한데 너무 한쪽으로만 쏠려 적폐청산을 하다 보니 불만이 커지거나 이번 경우처럼 자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공기업 인사청탁 전면 수사같은 다른 이슈를 통해 여당에도 비리가 포착되면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적폐청산 수사 드라이브에도 공정성이라는 힘이 실리게 된다. 청와대가 전체적인 수사 정국에 대한 조율과 그 속도도 조절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