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미국 부통령 펜스의 행보에 대해 말들이 많다. 동맹국 올림픽을 축하하러 왔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리셉션에 와서 5분만에 자리를 뜨는 등 돌출행동을 보여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미사일 핵무기 개발로 북한과 ‘전쟁 직전’ 단계에까지 미국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올림픽 축하사절로서의 처신으로는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펜스 부통령은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사흘간의 일본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주일미군 요코다 공군기지에서 연설을 한 바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한 용감한 젊은이를 떠올립니다. 그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던 자신의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미군의 일원으로 바다를 건너 이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펜스 부통령이 당시 말한 지역은 한반도이고 지칭한 젊은이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던 아버지 에드워드 펜스(Edward Joseph Pence Jrㆍ1929~1988)다.
펜스 부통령은 주일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선친이 한국전에서 미군이 참가한 전투 중 가장 치열했다는 평가를 받는 철원 인근 ‘올드 브래디 전투’(Battle of Old Blady), ‘폭찹힐 전투’(Pork Chap Hill)의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펜스 부통령 선친의 구체적 전공이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펜스 부통령은 “선친이 미 육군 제45보병사단 일원으로 우리가 현재 서있는 곳에서 불과 몇 백마일 떨어진 한국 해안에 상륙했다”며 “그 용사는 고지를 탈환하고 수호하는 걸 도왔고 20차례 넘는 적의 반격을 격퇴했다”고 말했다. 또 “그 무공으로 청동훈장을 받았다”며 “선친은 떠났지만 훈장은 백악관 웨스트윙의 내 사무실 책상 위에 있다. 몇시간 후 나는 내 아버지가 방어하기 위해 싸웠던 그 나라로 간다”며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펜스 부통령이 한국을 향하며 주일미군 병사들 앞에서 집안내력을 밝힌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국전쟁 당시와 같이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는 메시지인 동시에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것이다.
전사에 따르면 당시 에드워드 펜스 소위가 소속됐던 45보병사단은 경기도 연천의 천덕산 일대 전투에 투입됐다. 1952년 5월부터 1953년 7월 휴전 직전까지 전투가 계속된 300m 고지전의 현장이다. 지역 형세가 돼지갈비살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 폭찹힐이란 이름이 붙었다. 대규모 중공군과 싸운 최대 격전지여서 당시 전투를 소재로 한 많은 책과 영화가 미국에서 나왔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북한 핵ㆍ미사일 사태에 대해 “미국은 평화적으로 북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길 원한다”면서도 북한에 대해 “감히 미군의 힘과 결의를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장병들에게 “우리 군은 준비된 상태고, 미국은 단호하다. 북한에 최대한의 압박을 지속할 것”이라며 “적들에게 모든 옵션은 테이블에 있으며 미군과 일본 자위대는 우리 국민과 우리 삶의 방식을 지킬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알게 하자”고 강조했다.
부친이 ‘적군’이었던 북한군과 싸워 훈장까지 탔던 집안 이력을 지닌 펜스 부통령. 그는 한국에 와서 1m 거리에 있던 김영남 김여정 북한 대표단 일행에게 결국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양측 모두 일종의 기싸움을 하며 먼저 인사하는 것을 꺼렸다.
평창 올림픽의 정신이 평화임에도 그것과는 거리가 먼 미국과 북한의 기싸움은 올림픽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다. 잔치는 잔치일 뿐, 우리에게는 여전히 넘어야 할 미국과 북한의 험난한 장애물이 남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혜로운 ‘운전’을 기대할 뿐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