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4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 5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예상보다 빨리 특사단 구성을 완료한 청와대는 즉각 이들을 평양으로 출발시킬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처럼 대북 특사 파견을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는 것은, 특사 파견에 대해 북한·미국과 협의가 빠르게 진행된 데다 미국과 북한이 대화 조건을 둘러싸고 여전히 이견을 노출시키고 있어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기까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도 정부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4일 브리핑에서 “대북특별사절단은 정 실장이 수석(단장)이며 단원은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청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라고 말했다. 특사단은 청와대 2명, 국정원 2명, 통일부 1명으로 구성됐다.
특사단을 이끄는 정 실장은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주도하는 등 문재인 정부 초기 대외정책을 책임져왔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남했을 때 2시간가량 오찬을 함께하며 핵 문제와 대외전략을 폭넓게 논의했다.
정 실장은 평양을 다녀온 뒤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북한과의 논의 내용을 공유할 예정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밤 문 대통령으로부터 특사 파견 계획을 듣고 “알았다. 북한에 특사단이 가면 거기서 있었던 일에 대해 우리에게 잘 공유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에 이번 특사단 구성과 특사단장을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장관급 인사 2명을 동시에 포함시켰고,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이례적으로 합류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특사단장에 임명했다. 실무진을 빼면 5명에 불과한 사절단이지만 그 면면에는 한반도의 현 정세와 문 대통령의 고심이 녹아 있다.
특사단은 국가안보 책임자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수석을 맡고 정보당국 수장인 서훈 국가정보원장, 국내 상황관리를 전담하는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으로 구성됐다. 남북 및 북·미 대화를 책임지는 ‘미니 청와대’가 방북하는 셈이다.
이는 남북 및 북·미 대화를 동시에 진전시키기 위한 구성으로 해석된다. 정 실장은 문재인정부의 대미 관계를 주도하는 핵심 참모이고, 서 원장은 북한에 정통한 정보수장이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이 북·미 대화를, 서 원장과 천 차관이 남북 대화를 각각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특사단의 제1 과제는 무엇보다 실낱같은 북·미 대화 가능성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불과 지난해 말만 해도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설이 확대됐던 만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서도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의전서열상 서 원장보다 아래인 정 실장이 수석을 맡은 것도 북·미 대화의 중요성을 감안한 것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특사단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 여건 조성, 남북 교류활성화 등 남북관계 개선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며 “6일 오후 귀환한 뒤 미국을 방문해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중·일과도 긴밀히 협의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사단장 정의용’ 카드는 방북 이후 방미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입장을 미국 측에 설명하고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설득하는 과정에는 정의용 실장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백악관 핵심라인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인물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대북 특사단은 북·미 대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전달하고 그쪽 최고위급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복심인 윤 실장의 파견도 주목된다. 당초 유력한 특사 후보였던 임종석 비서실장 대신 문 대통령의 의중을 북한에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상황실장으로서 국내 대북 정서의 흐름도 꿰뚫고 있는 만큼 논의 진행 과정에서 여론의 ‘안테나’ 역할도 겸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영찬 수석은 브리핑에서 “정 실장을 수석특별사절로 하는 특사단이 5일 서해직항로를 이용해 특별기 편으로 평양을 1박2일간 방문한다”며 “북측 고위급 관계자들과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대화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사단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확정된 바는 없지만 문 대통령이 북한의 김여정 대남 특사를 접견한 만큼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특사단의 방북은 기존의 특사단이 남북관계 전문가로만 꾸려진 ‘국내용’이었던 것에 비해 대미관계 핵심실세 인사를 추가시켜 그 규모를 ‘국제용’으로 확대시킨 게 눈에 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북미관계의 전향적인 발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대해서도 예상이 엇갈린다. 야당은 북핵 개발을 위한 시간만 벌어줄 뿐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것이라며 독설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이번 특사단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북미대화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가시적 성과를 낼 경우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교류와 협력의 단계로 접어들 전망이다.
특사단은 남북관계의 천재일우 기회를 살려낼 책임과 의무가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