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에 이어 민생과 치안을 담당하는 ‘공룡 조직’ 경찰까지 민의를 왜곡하는 여론 조작에 나선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경찰은 시민들과 밀착해 활동하면서 정보 취득과 신원 확인, 치안 활동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댓글 조작의 참상이 정보기관과 군에 비해 더 광범위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겨레>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이철희·이재정 의원실(더불어민주당)과의 협조 체제 아래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가 ‘댓글 작전’을 시작한 시기는 2011년부터"라고 보도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2009년부터, 군 사이버사령부가 2010년부터 온라인 여론 조작 작업을 시작하자 경찰이 뒤늦게 이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댓글 작전이 시작된 2011년부터 보안사이버수사대의 몸집을 키운 점 역시 앞선 국정원·군의 댓글 조작 행태와 유사하다. 이재정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0~2015년 보안사이버수사대 직원 현황을 보면 2010년 2월 기준으로 보안사이버수사대 인원은 총 11명이었다. 하지만 2011년 2월에는 13명, 2012년 2월에는 20명으로 늘어났다.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의 계급 역시 2010년 경감에서 2011년 경정으로 상향된다.
당시 보안사이버수사대는 포털사이트 뉴스 등 특정 게시글에 대한 대응 지시가 내려오면 해당 내용과 관련해 댓글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과정에 전국의 보안사이버요원 100여명 등을 동원할 계획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이 구체적으로 어떤 댓글을 달며 여론전을 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군이 2011~2012년 사이 4대강 사업, 세종시 이전, 제주해군기지 사업, 용산참사 등에 대해 댓글 활동을 벌인 점에 비춰, 경찰 역시 비슷한 주제의 댓글 공작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2011년 당시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을 맡았던 김아무개 총경은“(2011년) 댓글 대응을 한 것이 아니라 경찰청 전체적으로 유언비어가 난립하던 상황이라 그런 유언비어가 있는 경우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며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해 관련 자료만 게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총경은 ‘관련 자료를 게시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억은 안 나는데 게시글을 올렸다”고만 했다. 김 총경은 또 ‘경찰이라는 사실을 밝혔느냐’는 질문에 “밝힐 수도 있고…”라고 말을 흐렸다. 치안 기관인 경찰이 댓글 조작에 나선 정황이 새로 드러나면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당시 보안사이버수사대에서 근무한 경찰 대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는 “일상 업무를 했을 뿐 댓글을 단 적은 없다”고 답했다. 경찰청 진상조사팀 등 경찰 내부에만 맡길 경우, 진술 짜맞추기나 발뺌 등의 내부 담합과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 역시 댓글 조작 등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경찰청 산하에 대공수사처를 신설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는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방안에도 변수가 생긴 셈이 됐다. 경찰개혁위원회 소속 한 위원은 “경찰이 국정원과 군에 이어 댓글 작전에 가담했다면 이는 엄청난 범죄행위의 공범이 된 셈이다. 먼저 철저한 수사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가 댓글 조작에 나선 것은 당시 경찰 지휘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로 보인다. 향후 검찰 수사 등에서 ‘윗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인다.
2011년 당시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내부에선 댓글 조작에 나서는 것이 정당한지를 두고 내부 논란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런 논란을 잠재운 것은 경찰청 수뇌부의 지시였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진상조사팀은 “경찰청 보안국장의 지시에 따라” 댓글 조작에 나섰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댓글 조작이 시작된 2011년 이후 보안사이버수사대의 권한·조직이 강화된 점도 인사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경찰 수뇌부가 댓글 조작의 ‘뒷배’였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향후 검찰 수사 등에서는 당시 경찰 지휘부 가운데 어디까지 ‘댓글 조작’에 개입했는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의 댓글 조작 정황이 드러난 2011~2012년 당시 경찰청장은 ‘조현오-김기용’ 전 청장이 이어 맡았다. 이들의 지휘 아래 보안사이버수사대를 직접 관할한 보안국장은 ‘황성찬-김용판’으로 이어진다.
경찰청 진상조사팀은 황성찬 전 경찰대학장이 직접 댓글 조작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임 보안국장으로 부임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직 시기까지 댓글 조작은 이어진다. 특히 김용판 전 청장이 댓글 조작을 인지했는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김 전 청장은 경찰청 보안국장 재임 직후인 2012년 5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하며, 이후 경찰의 국정원 댓글 조작 수사 때 외압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이에 대해 황성찬 전 경찰대학장은 “여론 작업을 한 적은 전혀 없다. 북한에 대한 대응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내가 아는 한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대응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용판 전 청장은 “나는 댓글을 달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 (이미 보안국 자체적인) 기본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댓글 달라는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