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1일부터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중지하기로 했다. 또 핵실험이 이뤄졌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지하기로 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잇따라 예정된 가운데 의제로 나올 것으로 보이는 비핵화 합의에 대비한 조치로 분석된다. 실제 한반도 비핵화의 단초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은 20일 개최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통신은 결정서에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과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됐다고 밝혔다.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는 북한이 ‘투명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순차적으로 다 진행됐고 운반 타격 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이라며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덧붙였다.
결정서는 ‘체제 보장 시 비핵화’라는 북한의 기존 주장도 담았다. 결정서는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라며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폐기키로 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이 실시된 곳으로 북한 핵실험의 핵심지역이었다. 군 부대가 주둔한 1980년대 말부터 정비가 시작됐다. 앞서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달 초 풍계리 핵실험장에 배치한 군 부대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이번 전원회의에선 사회주의경제 건설을 골자로 한 결정서도 채택됐다.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할데 대하여’라는 결정서는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의 이런 대결단은 향후 남북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에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그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핵'을 포기하고 경제개방과 개혁을 그 자리에 치환시키는 대전환이 이뤄진다. 최근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가 거의 붕괴되고 장마당 등의 지하 자본주의 경제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사회적 변화를 더 이상 '핵'과 '공포통치'로는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에 대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보수층에서는 아직까지 북한의 변화에 대해 전혀 믿지 못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제 김정은 위원장은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동 및 조율도 끝났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 의제설정도 거의 마친 상태다. 과거의 북한 말바꾸기나 자세 급변은 주로 대남관계와 얽혀있을 때 한번씩 터진 것이라면, 이번처럼 다자간 관계가 얽혀있는 경우는 발 빼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이 치고 나가는 대 변화 정국에 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지금의 남북관계 정국은 그 누구도 예상못했던 급진적인 변화다. 이를 추동한 인물은 어쨌든 김정은 위원장이다. 그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놓았지만, 이제부터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수를 뛰어넘는 과감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 이 불투명한 주춧돌은, 먼 훗날 통일이 되었을 때 그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