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은 물론 조선 철강 등 한국 주력 제조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덩치 큰 대기업마저도 `돌연사`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커지고 있다. 국내외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며 매출 타격이 심각해졌고 각종 정부 규제가 발목을 잡으며 미래 먹거리 확보는 요원해졌다. 자동차·조선 등 부실업종이 대거 구조조정 도마에 올랐는데 최근 미국발 통상전쟁까지 겹치면서 불황 공포는 더 커지는 분위기다.
단적인 예가 한국GM 공장, 현대중공업 조선소 등이 잇달아 폐쇄된 군산이다. 군산은 잇달아 폐업 폭탄을 맞고 지난달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64% 급감했다. 체불임금이 150억원에 달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0% 불어났다. 근로자 `엑소더스`로 지역 인구마저 급감했다. 지난해 이후 4월까지 3600명이 다른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군산 주민은 "1개 면이 통째로 없어졌다"고 푸념했다.
지난 25일 오후 찾은 군산 오식도동 한국GM 공장은 석 달 넘게 공장이 멈춘 탓인지 정문 근처에서 행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금요일 퇴근길 근로자들이 몰려 떠들썩했던 상권은 마비 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군산시 관계자는 "직원들이 대거 빠져나가며 오식도동에서 유일한 공동주택인 한성아파트에는 저녁에 불 켜진 집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인근 원룸 60%가 텅텅 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군산 산업단지 분위기가 워낙 을씨년스러워 가로등을 더 밝게 켜 놓으라고 지시해 놨을 정도"라고 전했다.
군산·광주·전주를 필두로 한 서남권 자동차 벨트는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서남권 벨트에서는 연간 자동차 59만8000대를 만들어 다른 주력 생산지인 영남권(184만6000대), 인천·경기(132만5000대)에 이은 3대 생산 거점으로 꼽힌다. 타이어·부품 등 배후 생산 기지도 집중됐다.
하지만 기업 경영 악화로 호남 경제 붕괴 신호탄이 되고 있다. 실제 올 들어 상용차를 생산하는 현대차 전주공장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은 업황 부진과 구조조정 여파로 공장을 자주 중단해야 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한국 차 생산량 400만대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제기된다. 한국은 2005~2015년 세계 차 생산 5위 아성을 지켰지만 지난해 생산(411만대)은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가라앉으며 7위 멕시코와 격차가 불과 4만대로 좁혀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올해 한국이 멕시코에 역전당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5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해양사업본부. 100만㎡에 달하는 거대한 야드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수주받은 해양플랜트 모듈 건조 작업 달랑 한 건만 이뤄지고 있다. 오는 7월 모듈을 모두 납품하고 나면 이곳 야드는 텅 빈다. 만성적인 조선업 불황에 현재 해양플랜트 수주 물량이 `제로`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업황 부진에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해양사업본부 야드 일부를 현대미포조선에 쪼개 팔았다. 지난달에는 세 번째 희망퇴직을 실시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 직원은 "불황에 중국이 저가 물량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플랜트를 따가고 있다"며 "수주를 성사시키기 위해 원가는 낮추고 생산성은 높여야 하는 이중고에 빠진 셈"이라고 한숨지었다.
수년간 이어진 불황과 구조조정에 `부자도시` 거제는 옛말이 됐다. 2015년 9만2164명(375개 업체)에 달했던 조선업계 근로자는 지난해 말에는 5만4136명(270개)으로 급감했다. 2년 새 4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마저 구조조정에 돌입하며 협력사들은 덩달아 위기를 맞았다. 협력사 관계자는 "일감 타격에 이제 하도급에서 하던 일을 원도급이 하면서 협력업체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며 "연봉이 반 토막 났지만 오히려 일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유정용 강관에 대해서도 수출 쿼터를 강제하며 악재가 가중됐다.
강관업체 관계자는 "이미 5월 생산량으로 우리 업체의 올해 쿼터는 다 소진했다"며 "당장 6~9월까지 생산하는 유정용 강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유정용 강관 국내 생산량은 83만t을 넘겼지만 최근 발표된 유정용 강관의 올해 미국 수출 쿼터는 55% 수준인 46만t에 불과하다. 포항은 극심한 경기 부진의 늪에 빠졌다. 현재 포항철강산단 내 가동 중인 304개 공장 가운데 올 들어서만 19개 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진명은 인턴기자 ballad@featuring.co.kr